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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초짜는 누구나 순수하다


사람들은 선하다. 나는 순자의 성악설보다 맹자의 성선설을 믿는다. 아니 그러고 싶다.
분명히 환경에 따라 인성은 달라지며 개인적인 변화에는 그만한 설득력 있는 환경적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환경이 그만큼 중요하며 동일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는 한 결코 타인을 함부로 단정 지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누구에게나 변질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초짜 시절에는 다 순진하다. 대학 신입생도 군 신병도 그럴것이며 조직 폭력배 신입들도 처음에는 순수한 싸나이 의리도 똘똘 뭉쳐서 시작 되겠지... 당연히 갓 의사가운 입은 초짜 의사들도 다 히포크라테스의 깨끗한 정신으로 무장하고 시작한다. 몸이 부서지도록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현실을 알게 되어가면서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긴박한 순간이 연속되는 멋진 (?) 전공보다 수입과 삶이 윤택해지는  지루한 (?) 전공으로 선호하게 된다.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무한의 긴장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월급장이 의사시절에는 어짜피 월급은 나오는 것이기에 병원 물품 아끼지 않고 환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낌없이  쓰고

응급실로 찾아온 환자도 간단한 경우는 그냥 무료로 치료 해 주면서 대단한 사람이 된 양 우쭐거린다.

그러다 직접 개업하게 되면 제 2의 존재로 변신한다. 가능한 모든 소모품들을 최대한 아끼게 되고 공짜 치료는 처음부터 아예 없다. 자기 주관대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멋진 장점이 있으면서도 무한 경쟁의 병원 운영을 위한 경영인이 또한 되어야하는 두가지 상반된점을 다 성공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존경하고 멘토로 모시는 여수 애양 병원의 김인권 원장님도 원장 직책 맡으시고나서 많이 변했다고 직원들이 푸념하는것 많이 들었다.  그분과 나를 비교한다는 것이 좀 어불성설이지만 그런 천사분도 변하니 나같은 평민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듯 싶다.

 

                                                                        ( 영천에서 유격 훈련하던 시절 )


이렇듯 사람들은 초기에는 대부분 착하다. 단 자신이 손해 볼 수 있는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교회 생활 열심히 하면서도 가족을 위한 기도가 우선이고 절에가서 하는 수많은 기원도 다 가족을 위한 것이다.

본인을 포기하고 가족만을 위한 기원을 하는 신앙인이면 그나마  선하고 착하다 . 그런 사람에겐 내 모든 것을 다 주겠다. 진심.
과연 자신에게 피해가가는 것을 감수하고 이타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될까?
젊은 혈기에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치듯이 데모하던 사람들도 성인이 되어서는 그 분노의 대상이던 미국을 상대로 사업하고 자녀들도 그곳으로 유학 보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누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사람이란 아니 동물이란 원래 그런것이다.
영화 <로드 투 퍼디션(2002)>에서 ‘죽음의 천사’ 라고 불리는 ‘마이클 설리반’ (톰 행크스분). 마피아 보스의 양아들이기도 한 그는 조직의

일원으로 중요한 임무를 맡고 보스의 신임을 얻고 있다. 어느날 보스의 친아들 ‘코너’와 함께 라이벌 조직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하러 갔는데 ‘코너’가 보스의 명령을 어기고 돌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보스의 아들인데 결국 보스는 친아들보다 오히려 양아들은 처치하려한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그러니 공과 사를 분명히 구별하여 일벌 백계를 실천한 '읍참마속'의 제갈공명이나  패전 책임을 물어 아들을 사지로 다시 보내 장렬하게 전사시킨 신라의 김유신 장군 리더십이 더더욱 빛나는 것이다.


육신이 약하면 하찮은 병균마저 달려들고 입지가 약하면 하찮은 인간마저 덤벼든다.

일이 풀릴때는 어중이 떠중이가 다 모이지만, 일이 꼬이면 갑돌이 갑순이도 다 떠나가는 법이다.
상대를 이해하려 하면서도 짓는 죄가 생기면 노력으로 또 풀어가는 것이 삶이다.


인전위과 (人前爲過)    어쩌다가 못된짓을 했더라도
이선멸지 (以善滅之)    착한 행동으로 덮어버린다면
시조세간 (是照世間)    그는 능히 이 세상을 비추리라
여월운소 (如月雲消)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 법구경 -

 

                                                                            ( 고층에서 본 시원한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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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설 ( 2013.1.18)

장발장은 100% 희생자인가?
초등학교 시절, '장발장'과 '레미제라블'이 같은 작품임을 아는 데 한참이 걸렸다. '장발장'이 한국 이름이 아니라 프랑스 이름 '장(Jean)'에 성이 '발장(Valjean)'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레미 제라블'이 아니라 '레 미제라블(Les Mis�[rables)'이란 것도 후에 알았다.

그리고 이 책이 완역하면 23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라는 것은 최근에야 알았다.'독자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치고

억울하게 19년간이나 옥살이를 했다'.

이 문장에는 오류가 있을까, 없을까.막노동으로 살아가던 장발장이 빵을 훔친 것은 누이의 일곱 아이에게 먹일 빵이 없어서였다. 그는 총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이게 불리하게 작용해 '야간에 가택에 침입해 절도 행위를 한 혐의'로 5년형을 받았다. 죄수번호 '24601번'장발장은 수감 4년째 탈옥했고 이틀 만에 잡혔다. 이걸로 3년이 추가됐다. 6년째 또 탈옥했고 잡히면서 강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5년이 더 추가됐다. 10년째 또 탈옥하다가 3년 추가, 13년째 또 탈옥해 3년을 추가했다. 이렇게 해서 도합 19년이다.작가 빅토르 위고는 죄에 비해 징벌이 과도했기 때문에 '범죄자의 잘못을 억압으로 바꾸고, 죄인을 희생자로, 채무자를 채권자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썼다.

여기까지 읽으면 "그깟 빵 한 덩이 훔친 죄는 그냥 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면, 한밤중에 총 든 남자가 자기 집 유리를 깨는 걸 목격한 빵집 주인의 불안은 누가 해소해줄까. 탈옥 누범에게 형을 추가하지 않으면 누가 얌전히 감옥에서 형기를 채울까.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썼다. '장발장은 자기가 받은 징벌은 사실 부당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불공정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대부분 '장발장의 죄는 빵 한 조각을 훔친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우리 편' 장발장이 무고할수록 저쪽 권력의 폭압성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성을 잠재워놔야 피가 빨리 끓는다.이런 사고 패턴은 흔하다. 얼마 전 인터넷에 '4만원 훔쳐 징역 1년 6개월, 현대판 장발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예상대로 '있는 자들은 몇억을 해먹어도 집행유예로 나온다' '법이 썩었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9년 전 그의 첫 절도는 70만원 벌금형에 불과했다. 그러나 집행유예 기간 중 또 절도를 했고, 경찰 행세를 하며 돈을 뺏는 등 범죄 두 번에 이어, 이번에도 잠자는 이의 찜질방 열쇠를 빼내 옷장에서 돈을 훔쳤다는 구체적인 범죄 사실과 이에 대한 징벌의 균형 여부를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아직도 관련자들의 농성이 이어지는 용산 참사, 쌍용차 문제를 대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한쪽은 '우리는 완전한 약자'라고 주장하면서 '명예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위법·불법성과 타인에 대한 공격은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에 '약자 마케팅' 전문 정치인들이 끼어든다. 다른 쪽도 오직 상대의 '불법성'에 주목할 뿐 '사람'을 보려 하지 않는다.

두 주장이 평행을 이루며 국민도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려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

용산과 쌍용차 사건의 발단부터 현재까지 '팩트'를 챙겨본 장관과 정치인·경찰은 몇이나 될까. '레미제라블' 완역본보다 더 필요한 건 '구호'만 남은 사건에 관한 객관적 백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18/2013011802332.html

                                                                      ( 당시에는 이것이 진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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