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는 공급을 낳지만, 반대로 공급도 수요를 창출한다. 세이의 법칙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곳이 법률 시장이다. 사법고시 인원은 2009년 천명을 유지하다, 로스쿨 제도로 바뀌면서 매년 2천 명의 로스쿨 입학생과 대략 1700명의 신규 법조인이 배출되고 있다. 법조인(사실상 대부분 변호사)이 거의 두 배가 되면서, 선발의 공정성을 떠나서 많은 이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고 필요시에 더 많은 법적인 도움을 더욱 싸게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리고 15년 가까이 지났다. 변호사들이 두 배 이상 늘어났으니 사회는 더 공정해지고 우리는 필요할 때 우리는 법률적인 도움을 더 싸게 받을 수 있는가?아니다. 예전에는 적당히 좋게좋게 넘어갔던 문제마저 걸핏하면 법률적 문제로 번졌다. 변호사들이 새롭게 개척한 시장은 학교였다. 학교에서 아이들 사이의 대수롭지 않은 다툼은 예전이면 서로 억지로라도 웃으며 악수하고 당일 학교에서 끝났지만, 이제는 길고 긴 민형사상 다툼으로 이어졌다. 싸운 아이와 학부모뿐 아니라, 학교와 선생님까지 관리 소홀 등으로 재판에 시달리게 되었다.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이고 학교와 선생까지 심지어 국가까지 법률적인 문제에 돈과 시간, 거기다 에너지를 낭비하는 가운데 웃는 건 일부 학폭전문 변호사뿐이었다. 소송이 남발하는 가운데 학교 현장은 지옥이 되었다.
일부 변호사들은 미국처럼 엠뷸런스를 쫓아다니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이를 엠뷸런스 체이서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법상으로 브로커를 고용하는 것이 금지지만 인터넷만 검색만 해봐도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들이 넘쳐난다. 결과가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소송이다. 의사와 환자, 병원과 보호자 간의 길고 긴 민형사상의 고소와 재판 끝에 남는 건 상처와 불신, 그리고 의사들의 필수과 기피 현상뿐이다.
변호사가 2배 가까이 늘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었는가? 변호사가 늘어난 덕분에 우리는 필요할 때 더 싼 값에 정의로운 변호사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되었는가? 아니면 각종 민형사상 소송에 더 많이 시달리며 오히려 세상이 더 각막하고 살기 어려운 곳이 되었는가? 변호사가 늘어서 이득을 본 것은 정원 확대와 함께 로스쿨 도입으로 원래는 변호사가 되지 못했지만 운 좋게 변호사가 된 이들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여 불필요한 소송을 남발하라고 부추기는 극소수의 변호사뿐이다. 극소수의 변호사들은 세상을 불신과 소송의 지옥으로 만드는 대신, 자신들은 돈의 천국을 누렸다.
(한의원에서 봉침을 맞고, 쇼크에 빠진 환자를 도왔다가 9억 소송에 걸린 의사 사건의 결말은 이렇다. 5년 만에 의사는 무죄를 선고 받았고, 그 후로 의사들은 혹시나 같은 소송에 걸릴까봐 비행기에 타면 즉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30% 이상 늘린다고 한다. 그럼 그렇게 늘어난 의사는 무엇을 하게 될까? 대부분 미용을 할 것이고, 일부 극소수의 양심 없는 이들은 효과 없는 영양제를 팔거나 사람에게 득보다는 해가 되는 짓을 할 것이다. 지금도 텔레비전을 보면,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이 몇 푼의 돈에 양심을 팔고 있는데, 이런 이들이 더욱 늘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대부분의 변호사나 의사는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고 정직하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온 웅덩이를 흐리듯, 항상 전체 직업군을 욕 먹게 하는 건 극소수이다. 하지만 자격 미달의 사람이 갑자기 늘면, 안타깝게도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들이 급격하게 늘게 된다.
천재는 겪지 않고도 아는 이고
범인은 겪고 나서 깨닫는 이며
바보는 겪고서도 모르는 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미 로스쿨에서 한 차례 겪었다. 그런데 똑같은 실수를 하려고 한다. 이 정도면 사기꾼도 사기꾼이지만, 속는 이에게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페친글 펌
'보관용 기록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도소 담벼락을 걷다 (0) | 2023.11.26 |
---|---|
무제 (0) | 2023.11.24 |
내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세상 일… (2) | 2023.11.21 |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국민은 국회를 탄핵하고 싶다 (0) | 2023.11.17 |
우크라軍 전술 짜주고, 하마스 땅굴 탐지… 전쟁 뒤흔드는 ‘절대 반지’? (2) | 2023.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