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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두 번의 26년 (2)


나 역시 눌변인 사람이지만 보통 환자들을 대하다보면 중언부언하면서 핵심을 잘 표현 못하는 분들이 많다. 다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짧은 시간에 많이 환자를 보려고 환자의 말을 적당한선(?)에서 딱딱 끊는 잘못된 버릇이 몸에 밴 의료인으로서의 나 자신이다. 진료하다 보면 먼저 C/C ( chief complaint ;주요 문제점)를 들어야하는 진료 버릇이 생겨서 심지어 가족 간의 대화에도

긴 자초지종을 들을 인내심이 부족해졌다. ‘ 다 알겠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
잘 들어주는 의료인이 잘 치료하는 의사보다 명의라 했는데 참 고치기 힘들다. 내가 앞으로 고쳐야할 평생의 과제다 싶다.



간혹 곁에만 있기에도 안타까운 환자들이 있다. 일년 내내 혼신을 다해 준비하던 체육대학 입시 바로 며칠을 앞두고 손가락 골절 되어버린

수험생, 결혼 앞두고 무릎 인대 파열로 다리 석고하고 결혼식 후 동남아 신혼여행을 가야할 신랑, 큰 각오로 은행 융자 얻어 음식점을

시작하자마자 팔이 골절 되어버린 아주머니, 난소암 말기의 시한부 삶을 사는 동생을 간병하느라 몸과 마음고생이 심한 루프스 환자 50대 언니, 결혼 후 5년 만에 남편 사별하고 어린 5남매를 홀로 키우느라 허리 관절염이 심해진 아주머니. 고교 졸업 40주년기념 동창 부부 동반 해외여행을 앞두고 총괄한 총무가 바로 전날의 허리 골절로 못 가게 되는 등 시간은 결국 다 지나간다지만 살다보면 참 답답한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그래도 이분들은 언젠가는 해결 될 줄 수 있지만 의사의 한계를 매정하게 깨닫게 해주는 분들도 너무나 많다. 손주 목마 태우다 계단 3개를 헛디뎌서 발생된 목관절 탈구로 사지전체 마비된 할아버지, 등산 후 놀이터 운동기구를 사용하면서 윗몸 일으키기 하다가 부실한 기구에서 발이 빠지는 바람에 목을 다쳐 평생 휠체어 신세 된 꽃 중년, 30대 장애인 아들을 보살피느라 힘겨워하는 암환자 어머니, 친구가 태워주는 오토바이 잠깐 동석했다가 두 다리 절단된 착한 모범생 반장, 늦은 퇴근길에 택시 사고로 허리 골절되어 하지 마비된 30대 미혼의 팀장 아가씨 등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도 여럿 있으니 그에 비하면 살아가면서 패자부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면서도 그런 황당한 상황을 현명하게 자존심을 지키면서 이겨가는 삶의 태도는 참으로 각양각색이며 더러는 존경심을 느끼게 한다.
(큰 시련에도 긍정적인 사고로 열심히 웃으며 살아가는 환자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  설리반과 헬렌 켈러 )


진료실에 인상쓰면서 들어와 인사할 줄 모르는 이들이나 핸폰 전화를 하면서 당당하게 들어오는 환자들을 보면 이젠 화날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사는 수준의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그냥 넘어간다. 그런 이들은 어디서나 그렇게 살아갈 것이니 내가 뭐라 조언을 할 필요도 없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대로 대접을 받는 법이니까 말이다. 또한 나 역시 의료인으로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들에게 온 정신을 쏟아야지 환자를 앞에 두고 관계없는 사소한 개인적인 표현을 하거나 불성실한 답변을 하는 것은 절대 삼가한다. 귀한 시간을 내서 내원한 환자들을 볼 때 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조심하고 최선을 다하고자 단단히 각오를 다진다.

 

                                                                            ( 자원 봉사하는 안면 장애인)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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