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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두 번의 26년 (3)



얼마전 정형외과 의사인 내가 어깨 통증으로 고생하다 2개월 만에 회복되었다. 관절통증 환자를 수 없이 봐왔지만 직접 아파보니 보통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어깨 아픈 환자가 와서 ‘이렇게 하면 아파요.’ 라고 하면서 어깨를 억지로 틀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저런 이상한 자세를 취할 일이 과연 있을까? 그런 자세를 안 취하면 되지 않나?’ 그런데 막상 내가 아파보니 어떤 이상한 자세에만

통증이 있더라고 항상 신경이 쓰여서 어깨를 잘 사용할 수 가 없다. 평범한 일상행동을 하면서도 어느 순간 갑자기 아플 수 있으니 오히려 모든 자세에 제한이 생긴다.

   

                                           

그 이후로 수술이 필요 없는 경미한 어깨 통증 환자에 대해서도 연민의 정이 커지면서 진찰시 진지해졌다. 허리 아파 보고나서야 목욕탕 속의

수압 분수기가 허리 통증 치료에 좋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는 환자들의 기타 민간 요법 질문에도 진지하게 대화한다. 경험은 확실히 중요한

것이며 환자는 제일 좋은 의학 교과서니 말이다. 이제는 환자들에게 들은 민간요법도 무조건 무시하지 않는다. (코 막히는 내 막내 딸에게 대파 조각을 잘라 콧구멍에 끼워주니 시원하게 뚫린다.) 의사가 몸이 아파본 후에야 그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니 아픈 환자를 위해 일해야 하는 의사가 지나치게 건강한 것도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고기고 먹어본 사람이 잘 먹듯이 아파본 사람만이 그 통증의 환자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진심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솔직히 암치료까지 진심을 느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렇듯 병원 안에서만 살아가는 의료인들은 생활 범위가 협소하기에 어쩔 수 없이 아픈 환자를 통해서 사회생활을 하며 성숙되어가는 것 같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지만 또한 환자를 통해서 분명히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수 많은 환자분들이 나를 키워줬기에 어느 한분 한분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내게 처음 구강대구강의 인공호흡을 하게 했던 할아버지 환자부터 수술 후 합병증으로 돌아가신 환자의 보호자까지 많은 분들이 나의 삶을 다양한 방법으로 풍요롭게 해주셨다. 감사 선물도 많이 받아보고 서초동 대검찰청에도 3번이나 가봤으니 모든 것이 다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  황산 백운정에서 본 일몰 )


오후의 하늘이 맑아야 저녁노을이 아름다울 수 있는 법이다.
모든 아름다움에는 다 이유가 있으며 다양한 환자들의 상황을 알면 또한 대부분 다 아름답게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누구에게나 합당한 이유는 다 있다. 함부로 단정 짓지 말자.
오늘도 그런 작품 만들어보고자 따뜻한 모닝커피 한잔으로 진료실에서 스탠바이 한다. 나를 가르쳐주고 일깨워 주는 고마운 환자들을 위해 의료인으로서 미천하지만 나의 최선을 다하여 치료하고 그분들에게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귀하게 보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의 석양도 자식들에 자랑할 정도는 되지 않을까?

 법정 스님께서 ‘ 참다운 삶이란 욕구를 충족시키는 생활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다.’
라고 하셨다.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는 나의 사소한 일상을 밝은 목소리로 시작한다.


“ 아이고 ~ 오랜만이네요.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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