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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호텔 패키지 일박 (1)

성탄절이라 막내 수진이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26일 성탄 다음날에 우리나라 최고급 호텔에 하루 투숙했다. 선물로 얻은

호텔 숙박 티켓으로 몇 달전 예약한 것이라 깜빡 잊고 있었는데 아내가 다시 알려줬다. 오랜만에 호텔에서 잔다는 기대감으로 토요일 오전 근무를 기분 좋게 했다. 그날따라 환자가 밀려서 30분이나 늦게 마감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왜? 호텔 가니까.

내가 비교적 여행을 많이는 했지만 대부분 패키지로 갔기 때문에 호텔 경험은 저렴한 것 뿐 이었다. 여행은 숙소에서 쉬면서 주변의 주민들

일상을 보는 것이 묘미인데 항상 우리나라 패키지는 밤늦게 도착해서 다음날 새벽에 떠나는 강행군이라 숙소가 좋을 필요가 없었다. 개인

시간을 즐기기 위한 자유 여행을 하려면 모든 것을 내가 다 준비해야하는데 성격상 아니니 어쩔 수 없이 패키지를 자주 애용하게 된다.

20여년 전 내 스승님께서 네 명 가족 서유럽 여행을 다녀오셨는데 1000만원의 비용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고 하셔서 많이 부러워했었다. 그런데 지금도 네 명 가족의 서유럽여행 비용은 대강 비슷하니 물가 상승을 생각하면 여행비는 오히려 더 싸진 것이다.( 물론 그 내용면에서는 잘 모르겠다. 나 역시 한번 밖에 안가봤으니 말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니 비용이 저렴한 만큼 불편은 감수해야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렇다고 고급 패키지 또한 내 취향은 아니다. 식사 내용과 교통편을 upgrade 시켜서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올린 듯 하고 다녀온 친구의 이야기로는 거의 다 60대 이상의 분들이라 분위기가 차분하다 못해 좀  식어버린 죽같다고 한다. 또한 본인들도 큰 마음 먹고 갔는데 가서 단지 젊다는 이유로(상대적으로) 거의 짐꾼 노릇을 해야했단다. 하긴 같은 손님이라도 연장자분들과 같이 행동했다간 아마 <젊은 사람이 버릇없다>는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사실 세월의 계급은 지혜 섞인 연륜으로 얻어지는 것인데 밥그릇 수로만 따지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별칭은 자랑할 것이 절대 못되는 수치스런 역사일 뿐인데 그저 나이만 가지고 위세 부리는 사람들이 아직은 있다. (물론 나 역시 그렇게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 해야할 것이다.)

호텔은 최근에 리모델링해서 참 좋았다. 로비의 장식도 좋았고 직원들의 교육도 참 잘되어있었다. 화장실이며 벽걸이 TV며 (리모콘이 마우스역할을 한다.) 모든 것이 최신식으로 전반적으로 다 좋았다. 그런데 모든 기계의 작동법에 글씨는 써져있지 않고 그림만 있거나 아예 그림도 없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저렇게 만져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전화기도 쓰다보니 스피커폰으로만 사용하게 되었다. 수화기로는 소리가 전혀 전달이 안 되니 말이다. 나도 작동법을 잘 모르겠던데 (아내도 마찬가지 ) 노인 분들이 이것을 사용하실 수 있을지 궁굼했다.

                                                             ( 아름다운 인생도 하루하루가 모여서 이루어진다)


침대에 누워서 보이는 남산 타워  전경이 참 좋았다. 초등학교 6학년때 저곳 앞에서 그림대회에 참가해서 가작상을 받았었다.( 동생은 대상을 받음 ) 동국대 옆에 보이는 장충동 야구장은 내가 여의도 초등학교 야구부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없이 시합하러 오던 곳이었다. (그때 코치님이 결혼하시고 우릴 신혼 집에 초대했었는데 지금은 70 되셨겠다.) 우리팀은 거의 프로급과 싸우는 오합지졸 아마추어라 패전의 연속이었지만 항상 여의도에서 37 번 버스타고 시합장에 비장한 각오로 갔었다. 지금도 리틀 야구단 아이들이 시합을 하고 있다. 저 중에도 오합지졸이 있을거다.

점점 어둠이 쌓이면서 펼쳐지는 야경은 운치를 더한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가로등은 천국으로 가는 한줄기 오솔길 같고 물이 좋다는(?) 반얀트리 호텔의 아련한 불빛은 나를 유혹한다. 수없이 옷을 갈아입는 남산 타워의 네온싸인은 작은 체구로 유혹하는 듯 애처롭기만 하다. 오전부터 이상 기운이 있었는데 저녁에 되니 온몸이 쑤시기 시작한다. 아내와 수진이는 이미 10시경에 꿈나라로 갔고 혼자서라도 분위기를 만끽하려고 야경을 보며 와인을 마시는데 와인이 맛없을 정도로 내 컨디션이 이상해서 그냥 불꺼버렸다. 11시도 되지 전에. 그것도 제일 좋은 호텔의 멋진 야경을 눈앞에 두고서...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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