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에피소드 1
사회속에서 어깨 부딪히며 살다보면 많은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직업상 그런 상황이면 더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황당한 일들도 억울하게 당할 수 있지만 간혹 나를 감동시켜주는 은인을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 극명한 장단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대인관계의 구차스런 일들을 피하고 싶으면 등지고 산속에서 수양을 하거나 사람을 직접 대하지 않는 분야에 종사하는 것이 좋지만 그러면
그만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갈 기회를 놓치는 것이니 삶의 풍요로움에 있어서 일장일단이 있다. 결국 옳고 그름 없이 삶은 각자의 취향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간혹 내원하시던 애기 엄마가 어두운 얼굴로 진료실에 들어왔다.
“ 이럴 것 같아서 그날 안하려했는데...”
말꼬리 흐리면서도 구겨진 미간으로 뱉어내는 말 속에는 비수가 섞여있어 일이 터졌다는 느낌을 가슴 아프게 느낄 수 있었다.
“ 우리애기 이마 어떻게 할거에요?”
다짜고짜 옆에서 긴장하면서 따라온 여자아이 이마를 보여준다. 평소 남자아이도 병원 문턱만 들어서도 우는데 이 여자아이는 내 앞에서도
자제력을 발휘하고 눈가에 물기만 유지한다. 우는 아이에 질색하는 내게는 마음에 쏙 드는 아이인데 하얗고 이쁜 이마의 정 중앙에 최근의
작은 상처가 보인다. 아빠의 마음이 참 아플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피부 아래 나일롱 실밥 조각이 남아있다. 문신한것 처럼 말이다.
-아뿔싸-
나는 부원장을 두고 같이 일하고 있다. 같은 정형외과 전문의로 착하고 성실한 좋은 후배다. 신부를 멀리 지방에 두고 서울에서 근무하는 착실한 의사인데 종합병원에서만 근무해서 개인병원의 생리를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 환자가 계획된 내 진료날에 오질 않고 하루 앞당겨서 오면 그냥 처리해도 될 일을 다음에 내 진료날 다시 오라고 보내던지, 방사선 오더도 씨리즈로 마구 내는 등 아직 개업마인드가 없는 열혈의사이다.
그 엄마는 부원장 외래 날에 와서 망설이다가 그냥 실밥을 뽑았다고 한다. 한 바늘을 다른 병원에서 봉합했는데 실밥 뽑는 것이니 평소 다니던 가까운 곳에서 하고자 온 것이다. 그런데 내가 없어서 망설이다가 다시 오기 귀찮아 부원장에게 진료 받은 것이 이런 일을 만들었다는
짜증 섞인 푸념이다. 본인의 결정이니 할 수는 없지만 실밥을 남겨놔서 이마에 문신을 한 것처럼 만들어 놓은 것도 의사로서 큰 실수다.
사실 다른 병원에 잘못 꿰매서 매듭만 보이던지 치료를 잘못해서 딱지가 심하면 실 뽑을때 잘 보이지않아서 느낌으롤 뽑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일부 실 조각이 피부 아래 남을 수 있는데 대부분 상관없이 넘어간다.외부에서 보이지도 않고 몸에 해롭지도 않다. 하지만 이렇게 피부 아래로 실이 남아 피부 밖으로 보이게 되는 경우는 -그것도 얼굴 - 분명히 의사가 잘못한것이다.
사실 실수의 정도를 수치로 정형화 한다면 이런 것은 작은 것이다. 수술 후 생기는 합병증의 황당함은 얼마나 높은 수치겠는가? 하지만 사소한 일로 치부하다 생기는 이런 일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수치가 오히려 더 높을 것이고 의료진도 할 말을 잃게 된다.
분명히 큰 합병증 없이 처리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때 까지의 허탈함을 이루 말 할 수 없다.
결국 화난 엄마를 안정 시키고 아이를 테이블에 눞힌 후 문제를 해결하려 하니 이제야 상황을 깨달은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를 잠시 치료실 밖으로 나가시게 하려니 아이는 거의 발작 수준으로 울어서 그냥 옆에서 손 잡아주게 했다. 불을 비추고 이마를 보니 1cm도 안되는 상처밑에 파란 실이 있다. 그런데 하필 이마의 정 중앙이다. 뽀얗고 투명한 이쁜 피부가 더욱 잘 보이게 한다. 뒷골이 땅긴다. 일단 일부를 바늘로 따서 보이는 실의 끝을 잡아당겨보려하는데 엄마가 한마디 한다.
“ 또 이마에 상처내요! ”
(그럼 이마에 상처 안내고 어떻게 실을 뽑아요!) 라고 말을 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 그저 묵묵히 시도해보는 방법뿐.
다행이 살짝 바늘로 상처 낸 곳에 실끝이 보인다. 하느님에게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모스키토로 잡으려는데 너무 작고 가늘어서 잡히지 않는다. 몇 번의 시도에도 실패의 연속이다. 결국 포기 . 우는 아이 달래고 상처를 작고 이쁜 만화 데일밴드로 붙였다.
치료실에 잠시 흐른 침묵의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진다. 환자 앞에서 암 선고 내리는 마음이다.
“ 엄마, 괜히 뽑으려다 상처 더 생기니 그냥 둡시다. 곧 안보일겁니다.
약 한달 뒤에도 보이면 그때 합시다. “
말도 안돼는 이야기가 내 입으로 나오면서 지금의 상황을 그냥 넘기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엄마도 우는 아이 달래면서 그냥 치료실을 나갔다.
진료실에 돌아와서 땀에 젖은 이마를 닦는데 방문넘어 엄마의 푸념이 들리더니 현관문이 크게 소리내면서 닫힌다.
- 오랜만에 또 일하나 터졌군 -
과거에도 환자에게 일이 터져서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주사 후 알러지나 수술후 문제면 의사도 할 말은 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합병증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직원이 잘못한 것을 내가 처리하려면 참 괴롭다. 석고를 제거하고 나머지 처리를 직원 시켰더니 생각없이 하다가 피부에 열상 상처를 내버리기도 하고 방사선 검사하는데 행동이 느린 환자와 싸우질 않나 물리치료실에서 환자와의 의사소통이 안되어 성추행으로 다투질 않나 별의별 일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이런 일을 내가 나서서 현명하게 해결 못하면 앞으로의 직원 관리에 크나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니 결국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내 일 이다. 같은 의사로서 저런 실수를 한 부원정에게 많은 화가 났지만 다른 직원들 앞에서 험담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지금 병원에 없는 그 친구에게 전화로 화낼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결국 내 얼굴에 참 뱉기니 말이다.
모든 것을 다 떠 안고 원장인 내가 사과를 해야한다. 그래야 일이 해결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것이 결국 직원 교육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십수년간의 개업의사 생활에서 터득한 것이다. 물론 내가 사과해서 해결한 고마음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 역시 터득한 것 중 하나다.
이미 터진 일에 대한 후회 섞인 가정은 필요 없다. 오직 앞으로의 해결 방법만 생각하면 된다.
하루 종일 고민하다가 성형외과 친구에게 전화해서 기구를 빌리기로 했다. 정형외과는 1mm 로 사투를 벌이는 쫀쫀함(?)이 없이 큰 스케일이다 보니 끝이 뾰쪽한 기구가 크게 필요는 없지만 성형외과에서는 대부분이 그런 기구이니 말이다.
집에서도 계속 머리에 맴돈다. 이것으로 실 끝이 잡히지 않으면 이마에 또 상처를 내야 뽑아낼 수 있는데 어떻게 할까? 화내는 엄마를 어떻게 달래지? 아마 아빠까지 같이 오겠지? 할머니나 삼촌이 오면 일이 더 커지려나? 치료하는 것이야 하겠지만 결국 보호자에게 돈으로 보상해야하지 않을까? 아니면 그냥 성형외과에 보내서 해결하게 하고 보상금으로 해결할까? 그래야 나중에 흉터 생겨도 말이 없을 것 같은데...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밤잠을 설친다. 그때마다 지금 남의 속도 모르고 편하게 자고있을 부원장이 얄미울 뿐이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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