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출근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성형외과용 기구를 준비 했으니 오전 중에 다시 오라고.
어제 미리 연락하면 또 남편과 여러 고민을 할 것 같아서 그냥 당일 아침에 전화해서 불렀다.
“또 아이를 울려야하냐” 따지면서도 “우리 아이 때문에 고생 하시네요” 라는 멘트를 날리고 전화 끊는 엄마가 갑자기 이쁘게 느껴진다.
내 마음도 약간의 안정을 되찾으면서 ‘이런 교양있는 분들은 복을 받아야한다’ 는 생각으로 각오를 다진다.
- 그래 이쁜아이 이마를 이쁘게 잘해보자 -
아이 엄마는 마음이 급해서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왔다. 아이도 긴장된 표정이다.
준비한 이쁜 인형을 주고 울지 않고 잘 치료 받으면 집에 가져가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표정이 조금은 풀리는 듯 하지만 여전히
나를 못 믿는 얼굴이다. 저 어린 머리 속에서도 수많은 경우의 수가 계산되고 있을 것이다.
치료실 침대에 눕히고 엄마를 밖으로 보내려니 다시 크게 운다. 할 수 없이 곁에서 손잡고 있게 했다. 의사가 치료하는데 보호자가 곁에서
보고 있는 것 만큼 스트레스는 없는데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어제 붙여 놓은 밴드를 뗐다. 어제 상처 낸 곳에서 실 끝이
보였으니 오늘 그 곳에 생겼을 딱지를 떼면 바로 실밥 끝자락이 보일 것이라는 것이 어제 밤새 생각한 예상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밴드를 떼어내고보니 딱지도 없이 상처는 너무 잘 아물었고 실 끝은 오히려 더 안 보인다.
갑자기 머리가 띵~ 해진다. 상처부위 비추는 환한 불빛이 영화 속의 화면처럼 360도 회전 하면서 주위의 수많은 눈들이 겹쳐서 보인다.
‘ 상처를 여러 번 내면 엄마가 예민해질 것인데 안보이지만 어제 했던 곳으로 다시 할까
아니면 그나마 실 끝이 보이는 반대편으로 해볼까?’
마취 피부 연고 까지 바르고 준비 했지만 그래도 따끔할테니 울긴 울것이다.
과거에 이런 순간에는 하나님을 찾았는데 요즘 교회 안다닌지 수년이 되어보니 양심상 찾을 수가 없어 특별히 기도할 곳도 없었다. 일단 숨을
크게 고르고 다른 곳으로 상처를 냈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춘다.
‘ 제발 조용히 좀 계시라...’
작은 상처 자욱을 가능한 안남기기 위해 바늘로 상처를 냈다. 당연히 피는 나고 결국 아이는 울고 그런데 실 끝은 안 보인다. 그렇다고 더 상처를 낼 수도 없으니 성형외과에서 가져온 포셉으로 blunt 하게 감으로 짚어본다. 아무리 예리한 기구를 이용해도 한 두번 했는데 안 잡힌다. 다시 피나는 상처를 거즈로 누르고 지혈시키면서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본다. 하늘은 속절없이 화창하게 파란데 나는 고독하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 아무 생각도 안난다.
“ 아이고 착하네. 이제 마지막이야. 잘 치료 받으면 지금 갖고 있는 인형 줄게. 알았지?”
일단 눈앞의 인형으로 달래고 다시 시도해본다. 무중력 상태의 몸통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는 무념무상의 상태다. 그런데 시골처녀 미소처럼
수줍게 살짝 실 끝이 살포시 보이다가 다시 핏방울에 묻힌다. 순간 심장이 떠질듯 뛴다.
' 저놈을 기어히 잡아야한다.'
숨을 멈추고 예리한 포셈으로 실끝을 감싸고 안보여주는 핏방울을 잡고 당긴다. 기적처럼 안보이던 작은 실 조각이 예리한 기구 끝에 딸려 핏방울을 뚫고 나온다. 전혀 잡혔다는 느낌도 없는 작고 가는 얄미운 조각이다. 하늘에서 빵빠레가 울리는 듯 뇌리를 스친다. 나는 흥분을 속으로 가라앉히고 긴장하는 직원들 앞에서 태연하게 엄마에게 조각을 확인 시킨후 이마의 상처를 다시 확인한다. 아무것도 없는 깨긋한 상처에서 피만 보인다.
- 살았다 -
항생제 연고를 바르고 이쁜 밴드를 이마에 붙여 줬다.
아무 말 없는 엄마의 표정에는 아직도 불만이 섞여이었지만 그런건 이제 내겐 아무 것도 아니다. 비싼 연고와 인형을 선물로 주고 보냈다. 그 보호자가 다시 우리병원에 고객으로올 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상관없다. 의사로서 후회없이 잘 마무리 했으니 말이다. 저렇게 교양있게 의료진을 대해준 환자 보호자에게는 더욱 더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나쁠 경우가 있는데 이번은 다행히 해피앤딩이니 그저 기쁠 뿐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교양을 보여준 보호자에게 거듭 감사한다.
부원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들뜬 마음이지만 차분하게 보냈다. 사소한 일이 환자에게는 큰 사건 일 수 있으니 아무리 작은 일 이라도 조심해야한다고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의사 선배로서의 조언을 했다. 내가 전날 고민하고 잠을 설치고 등이 땀나고 오만가지 잡생각을 하면서 간신히 해결한 무용담을 내 마음에만 두고 차분하게 객관적으로 통이큰 사림인것 처럼 (?) 조언만 했다.
내가 그랬듯이 그 친구 역시 아직 말해도 그 상황을 이해 못할 혈기 왕성한 젊은 의사다.
젊은이들에게는 청춘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이해 할 수 없듯이 아직 개업하지 않은 의사들은 개업의사의 마음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 못한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 길 필요가 없다.
별것도 아닌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일이 반복되면 기력이 빠지는 법이다. 일선 개업가의 일이 그렇다.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수술을 할 때는 문제도 안 될 사소한 일들이 수술해당이 안 되는 경우에는 사소한 일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심정은 당사자 아니면 모른다. 모든 분야가 다 그럴 것이다. 웃플 뿐이다.
그날 밤에 어머니와 저녁 식사하면서 치료한 환자 문제가 있어서 조금 마음 고생했다고 하니 바로 망설임 없이 한마디 하신다.
“ 너는 수술도 안하면서 무슨 문제가 생겨?”
타인의 일은 타인이 되어보지 않는 한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이해해주길 기대할 필요도 없다.
그냥 웃어넘기는 수밖에.
세상이 원래 다 그런 거니까. 원래 나 혼자 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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