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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품앗이 인생 (2)

1986년 1월 이제 본과로 진급하는 꿈에 부풀어서 부담없이 성적표를 받으러 교학과로 갔는데 생화학 실습에서 <F>가 떡 하고 나와있었다. 그동안 단순한 '실습'이라는 과목에서에서 <F> 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의과대학은 다른 학과와 달라서 성적이 <F> 가 나오면 재수강할 기회없이 바로 1년을 유급해서 기존의 전 과목을 (해부학, 태생학, 조직학, 생화학, 미생물학 등등등) 다시 다 이수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은 한번 정도의 재시험 기회를 주는데 내게는 그런 통보도 없이 그냥 <F>를 준 것이다. 본 과목도 아니고 단순히 실습인데 이런 성적을 그것도 재시험의 기회도 안주고 이렇게 나를 유급 시킨다는 것에 분노를 느끼고 항의 하였으나 생화학 교실은 완강했다. (아직도 할 말이 많지만 당사자가 고인이 된 이상 여기서 끝낸다.)

                                                                  ( 1972년, 1983년 그리고 2015년 )

그런데 그때 송 선배도 자진해서 유급을 했다. 제3자가 보기에는 단순한 연애 문제였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가는 한심한 처신이었지만
내 코가 석자라 남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하여간 이렇게 우리는 같이 한 학년을 내려가서 또 만났다.
그때부터 내 학교 생활은 수치스런 지옥의 연속이었다. 중간에 군대로 가려했지만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다. 나름의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연애도 수월하지 않았다. 내가 유급해서 공부하는 과목이 달라지니 여자친구가 어려운 상급학년 임상 공부를 힘들어하는데 하급생이 되어버린 나는 기초학문을 배우기때문에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는 한심한 상황이 되었다.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결국 헤어졌다. (하지만 결국 졸업 후 다시 만나 결혼해서 현재 세 아이를 두고 옥신각신 한지붕에서 살고 있으니 인연은 인연이다.)


내가 우습게 봤던 학교에 KO펀치를 맞았으니 학교에 분노했고 송 선배는 세상에 무관심한 듯 태연했다. 선배로 대했던 후배들이 유급해서
동급생이 된 나를 껄끄러워 했고 (내가 유급한 선배를 봤듯이 똑같이 한심하게 봤을것이다.) 내 입학 동기들은 내게 경어를 쓰면서 거리를 두려했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어정쩡한 학교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좋은 후배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는데 마음이 닫혀서 오히려 학교를 멀리하고 산에서만 겉 돌아 주변인이 되어 성적을 더욱 떨어지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었다.(130여명중 100명을 재시잡아도 안걸리던 내가 나중에는 30명만 잡아도 걸리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한 생활 했던 것 같지만 그 당시에는 나를 버텨줄 것이 산악부 동기들과의 산행과 암벽 그리고 술 뿐이었다. (입학 기수보다 졸업 기수가 주체가 되는 의대의 특수성상 나이 50이 넘은 지금도 나는 주변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48회 졸업생(84학번)으로 취급 받지만 나는 47회 졸업생(83학번)들과 어울리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어준 귀한 과정으로 이제는 다 고맙게 생각을 하고있다.)

그렇게 외인부대로서의 시간은 흘러 무사히 진급하여 본과 3학년때 실습조를 편성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당시 1,2등을 돌아가면서 하는 우등생 커플 후배가 주도한 조에 내가 들어갔는데 그때 송 선배를 다시 보게되었다. 마음 편하고 친한 동기들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답답할 것 같은 우등생 팀에 들어갔던 것 보면 그나마 나름의 노력은 했던 것 같은데 하여간 기억하기 싫은 힘든 시절이었다.
실습을 같이 돌 수 록 선배와 나는 천천히 서로 융화 되어갔다. 크게 모나지도 특별하지도 않게 조용히 그러나 찌질하게 일탈을 반복하면서 같이 어울려 보냈다. 우등생들이 보기에는 한심해 보였겠지만 나는 숨을 쉬고 싶었다. 그럴때마다 선배는 항상 내 곁에서 말없이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는 음주과 미팅 그리고 짧은 여행을 동행 하면서 (실습중인 고대 구로병원을 나와서 여의도 5.16 광장도 걸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청춘의 순간들을 같이 보내고 무사히 졸업했다.   

                                                                              ( 여의도 5.16 광장 )


졸업후 각자 다른 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으면서 조용히 자기만의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잊혀졌다. 여의도고교 동문회 때 의대 선배들과 대화중 간혹 송 선배의 이름이 나올 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그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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