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인연
<송인철(가명) 52세 CVA 입원 1/1>
선배의 침대에 붙어있는 인식표는 말없이 조용히 외치고 있다. 현재의 환자 상태를 알려주는 단순한 표시이지만 내게는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삶이 드러나 보인다. 그는 홀처럼 넓은 중화자실의 한 구석에 반듯하게 천정을 향해 누워있다. 오똑한 콧날에 하얀 피부는 부자집 도련님을 연상시키며 코골이 소리가 들리는 듯 곤히 자고 있다. 목의 tracheostomy 와 코의 L-tube가 없다면 누가 봐도 편한 숙면 상태로
나를 맞이하는 것 같다.
어제 오후에 퇴근하고 운동하는데 전화 한통이 왔다. 나와 독특한 인연인 선배님이셨다. (그는 나와 일본 오사카의 야마데 유치원과 야마데 초등학교. 여의도 고등학교. 고려 대학교 등 네 학교 동문이다.)
“ 예 형님 오랜만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어... 근데 인철이 혹시 천안에서 개업하니?”
“ 예 아마 그럴겁니다.”
“ 너 혹시 인철이 소식 들었니?”
“ 아니요 연락 안한지 오래됐죠. 동문회도 십수년째 안나오시잖아요.”
“ 그래? 근데말이야 지금 내 의국 모임에 왔는데 이상한 이야기가 들리네 ? ”
선배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천안에서 개업하고 있는 고대 출신 83학번인 송원장이라는 사람이 뇌출혈로 쓰러져서 천안 단국대 병원에 혼수 상태로 입원한지 한 달이 넘었다는데 꼭 느낌이 그동안 연락없이 은둔하던 여의도 고등학교 후배인 송 인철 같다고 하셨다. 나 역시 뒷골이 당기는 느낌 때문에 바로 그 병원 출신인 다른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인도 금시초문인데 바로 그 병원에서 현재 근무하는 후배에게 전화해서 알아보겠다고 하고 끊었다. 갑자기 몸에 힘이빠지면서 스산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그는 졸업 후 나와 연락은 안하고 산지 20여년이 흘렀지만 이런 일로 다시 연락이 되는 것은 아니길 바랬다. 하지만 곧 답은 왔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1983년도에 나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학력고사를 예상보다 잘 못 본 결과로 예정에 없던 대학에 갔지만 그것도 3대1의 경쟁률을 뚫고 간신히 합격했다. 송 선배를 만난 것은 그곳이었다. 다른 재수한 선배와 동기 한명을 포함해서 한해 4명의 신입생이 들어와서 여의도 고등학교 선배님들이 무척 좋아하면서 환영 해주셨다. 나는 고려 대학의 전통과 의리에 매혹되면서 특유의 끈끈한 분위기에 젖어들어 갔다. 재수를 신중하게 고민했지만 곧 학교에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사교적인 나는 학교의 불만을 산악부 활동으로 해소하며 활동적으로 보냈고 송 선배는 말없이 조용히 담배 피우면서 미소짓던 소년같은 조용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동문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별로 없어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고등학교 선배인 만큼 깎듯하게 존대말 쓰면서 대해드렸다. 그래서 더 가깝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내 성격상 어쩔 수 없다. (현재도 직원들에게 경어를 쓰는 나는 타인을 함부로 하대하는 사람을 무척 싫어한다.)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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