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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품앗이 인생 (3)

품앗이 인생

중환자실 경비원은 면회시간을 한참 지나서 도착한 나를 못 들어가게 했다. 서울에서 오느라 면회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해도 요지부동이다. 경비원은 가족들의 부탁으로 아무나 들여보낼 수 없다고 하면서 가족 연락처를 보여줬다. 연락처에 어머니와 누나의 것만 있는 것을 봐서는 결혼도 안한 것 같다. 과거의 이별 충격이 컸던 것일까? 아니면 많은 경험 속에서 독신의 행복을 터득한 것일까? 소문대로 그는 혼자였다. 면회를 포기하고 준비한 사진 선물을 간호사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돌아서는데 불쌍해 보였던지 다음부터는 일찍 오라면서 통과시켜 준다. ( 사실 중환자실 면회는 시간을 엄수해야한다.)


중환자실 특유의 냄새가 나를 자극한다. 젊은 수련의 시절에 수없이 드나들면서 맡았던 바로 그 냄새다. 병원은 달라도 중환자실의 냄새는
어디나 똑 같다. 중환자실을 들어서자마자 멀리 구석의 선배는 나를 부르고 있는 듯 환한 후광을 보여줬다. 어두운 환자복임에도 중년의
세월 살이 붙은 것 빼고는 여전히 미소년 풍의 고운 얼굴이다. 그동안 고생 별로 안한듯 오똑한 콧날에 깔끔한 피부는 귀티가 흐른다.
(얼핏 혜민 스님을 떠오르게 한다.) 20여년 만에 하필 중환자실에서 다시 만나다니. 지금도 옛날처럼 그는 말없이 내 곁에 있다. 내가 온 것을 아는지 감은 눈의 동자가 조금 반응했다. 나는 어깨를 마지면서 인사를 했다. “ 형 나야.” 사실 선배가 나를 크게 반가와 할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 하지만 말은 안했어도 감정이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던 시절에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곁에서 담배 피우던 선배는 내게 있어서는 고마운 동행인 이었다. 그런 선배도 자주 곁에 있던 것 보면 내가 싫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병상련의 공감대가 있었겠지. 공유할 추억이
많은 것도 아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도 없을 만큼 그냥 그렇게 붙어다니기만 했다. 참 멋도 재미도 없는 남자들이었다. 그런데도 본능적으로 고향을 찾아가는 연어처럼 형체없는 추억이 선배를 찾아 한밤에 천안까지 나를 내려오게 했다.


최근에 우연히 학창시절 중 1988년도 내과 실습때 교수님과 함께한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그 모범생 졸업 동기가 고맙게도 나를 기억해서 보내줬다. 난 기억도 없는 순간들인데 사진의 나와 선배는 참 젊다. 멋진 젊음인데 당시에는 그 젊음이 귀한 줄 을 몰랐었다. ( 하긴 모든 것은 다 상대적이니 지금이라도 알면 다행이지.) 그 사진에 응원 메시지를 남기고 기원을 담아 침대 곁에 걸어두고 나왔다.
“ 인철 형, 기적처럼 일어나세요”


귀경하는 늦은 밤 고속도로 위로 음악을 이불삼아 신나게 달렸다. 영화 <접속>의 음악이 가슴을 뚫고 내 뒤로 먼지를 뿌리며 지나간다. 그래도 가슴은 여전히 꽉 막힌 듯 하다. 고속도로의 야경이 무리지어 내 앞으로 달려드는 것이 광속같은 시간의 흐름을 일깨워 준다. 삶은 이렇게 서로에게 귀한 모자이크 조각 중 일부가 되어 주고받는 품앗이 인생일 것이다. 나는 과연 타인에게 어떤 조각이 되어 남게 될까?
지금까지 먼저 떠나보낸 적지않은 지인들을 생각하면 내가 받은 것은 축복에 가깝다. 나보다 뛰어나고 귀한 이들이 얼마나 안타깝게 먼저 떠났던가? 그들에게 미안하다. 남아있는 시간 동안 내 작은 조각들 가능한 곱게 다듬어서 이쁘고 튼실하게 만들어 나눠야겠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가능한 나를 키워준 이웃 사회에도...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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