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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용 기록집

[만물상] ‘접대부’로 전락한 파티 주최자

아는 만큼만 보이는 세상

보려고 하는 것만 보려는 사람들

간사한 인간의 선동에 쉽게 휩쓸리는 무뇌한 인간들.

모든것의 합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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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라는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경기수원정 국회의원 후보가 2022년 유튜브에서 “김활란이 미 군정 시기에 이화여대 학생들을 미 장교에게 성상납시켰다”고 했다가 사과했다. 여성계에서 “사과 대신 사퇴” 요구가 번지자 조상호 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렇게 옹호했다. “김활란 총장이 총재로 있던 낙랑클럽이 호스티스 클럽이며 실제 매춘에 이용됐다는 묘사가 나온다.”

 

▶1953년 작성된 미군 CIC(방첩대) 정보 보고서는 ‘낙랑클럽’을 묘사하며 “단체의 목적은 외국 귀빈, 한국 정부 고위 관리 및 군 장성, 외교관들을 엔터테인(entertain)하기 위한 것” “회원은…여성들로 교양 있는 파티 주최자들(hostesses)”이라 적었다. 좌파 학자들이 주인, 파티 주최자인 ‘호스트’의 여성형 명사 ‘호스티스’를 ‘술집 호스티스’로, ‘여흥’을 ‘접대’로 번역해 누명을 씌워왔다.

 

▶ ‘번역은 실패의 예술’이라고 한다. 아무리 잘해도 흠잡힐 구석이 있다는 얘기다. 미국 영화 ‘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은 한국 개봉 후 원작자가 “추락의 전설이 틀림없다”고 했지만 제목 오역 덕에 영화가 대박났다. 실수가 예술이 된 것이다. 문화적 차이는 아예 단어도 바꾼다. 양복 속에 입는 드레스 셔츠가 일본을 거쳐 오며 ‘와이셔츠(화이트 셔츠의 일본식 줄인 말)’가 됐고, 주인이 호의로 제공하는 유무형 서비스 ‘컴플리먼터리(complimantary)’는 그냥 ‘서비스’가 됐다.

 

 
4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이대 총동창회 회원들이 김준혁 후보자의 망언을 규탄하며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마담이 살롱에서 남자 가수와 만나 밤새 이야기를 하더라.” 이 문장에 한국 사람은 음침한 상상을, 프랑스인은 귀부인이 예술가와 교류하는 살롱 문화를 떠올릴 것이다. 기혼 여성에 대한 존칭 ‘마담’은 한국에서 ‘술집 여주인’, 교류의 거점이었던 ‘살롱(거실)’은 고급 유흥업소가 됐다. 80년대에는 프랑스어 살롱에 영어 ‘룸’을 합친 ‘룸살롱’이 널리 퍼졌다. 룸살롱, ‘방거실’ 술집이라니.

 

▶대통령 부인을 유흥업소 ‘줄리’라 우기고,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청담동 고급 바’에서 밤새 술을 마셨다는 가짜 의혹을 만든 사람들이 있다. 2000년 5·18 전야제날 ‘새천년NHK’ 유흥주점에서 접대부와 술 마시다 여성 동료를 폭행했던 사람들, 2011년 방통위원을 하면서 피감기관으로부터 고급 룸살롱 접대를 받은 사람과 같은 편 사람들이다. ‘성 상납’ 발언은 무식의 발로가 아니라 ‘확증편향’이다. 확증편향이란,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이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