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2,000명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인듯.
서서히 부작용을 경험하면서 나름의 조치를 취할듯.
요약하지면 크게 3가지.
1. 안쪽은 가격신호가 없어도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필요 없는 심장 수술을 싸다고 받을 환자는 없다. 여기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100%에 가깝게 높여도 부작용이 크지 않다. 필수의료를 병원이 유지하게 만들려면 수가도 올려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을 필수의료에 더 집중해 쓰는 결과가 된다.
2. 중간 영역에서는 회전수 전략을 억제해야 한다. 상식적인 해법은 가격신호를 되살리는 것이다. 환자의 자기부담금을 높여서 의료 쇼핑을 줄이고, 실손보험도 손봐야 한다. 이렇게 해서 진료 숫자를 줄여야 건강보험을 필수의료에 집중하면서도 붕괴를 늦출 수 있다.
3. 바깥 영역에서는 지대를 회수한다. 의료적 위험성이 사실상 없다고 판단되는 영역은 면허 없이도 영업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어느 정도 잠재적 위험이 있는 분야라면, 초과수익을 세금으로 환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용세’를 만들어 미용 분야 초과수익을 거둬들이고, 그 돈을 가장 안쪽의 필수의료로 보낼 수 있다.
대한민국 의대 개교 현황
80~90년대 대거 설립 즉 의사 인원 대거 증원
그래서 2000년에 350명 줄인것 뿐.
OECD 중에 의사 증가율은 대한민국이 이미 1등 된지 오래.
현재 1000명당 의사 수는 일본과 같은 2.6명.
왜 일본과 미국은 통계에서 빼고 유럽의 의사 공무원들 나라와 비교를 할까? 그들은 그냥 월급쟁이 공무원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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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의사들이 아니꼬워서라도, 의료 개혁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지금 이런 이유로 의대 증원 정책에 찬성하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의사들을 돕는 중이다.
1.
의사가 모자란다. 소아과는 응급환자를 돌려보내고, 산부인과는 가장 위험한 출산을 맡을 의사가 사라진다. 사람 생명이 걸린 진료일수록, 더 모자란다.
중학생도 알 만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 의사가 모자라면, 의사를 늘린다. 당연하게 들리는가? 이 ‘당연한’ 해법 때문에, 의료계를 넘어 온 나라가 몇 달째 몸살을 앓는다. 윤석열 정부는 거의 틀림없이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어떤 급소를 건드렸다.
한국에서 의사는 의대를 졸업해야 될 수 있다. 현재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이 숫자는 정부가 관리한다. 면허 제도다.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을 늘리겠다고 했다. 면허 소지자를 지금보다 67% 늘리겠다는 얘기다.
이러면 면허의 가치는 낮아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감명 받았다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살아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면허를 폐지하는 게 답이지만, 아쉬운 대로 방향은 옳다.” 프리드먼은 의료조차도 면허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크다고 본 완고한 시장주의자다.
우리 의료체계는 프리드먼이 살았던 미국과 많이 다르다. 우리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있고 미국은 없다. 의료보험은 연금과 더불어 사회보험 중에서도 핵심 기둥이다. ‘사회보험’은 우리 논의의 출발이다.
2.
사회보험이란 뭘까. 월급 받는 사람이라면 소득세 말고도 매달 빠져나가는 돈이 보일 것이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이다. 이걸 보통 ‘4대 보험’이라고 부르는데, 이게 한국의 사회보험 체계다. 사람이 살면서 만나게 되는 대표적인 위험이 이 네 종류라고 보는 것이다. 노후 대책 없이 장수할 위험(연금), 아플 위험(건강보험), 실직할 위험(고용보험), 일하다 다칠 위험(산재보험)이다.
사회보험이란 개인이 만날 수 있는 위험을 한데 묶어서 분산시키는 것이다. 내가 100살까지 살거나 암에 걸릴 확률은 알기 어렵지만, 5000만명 중 몇 명이 그럴지는 꽤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필요한 비용도 계산 가능하다. 이걸 전국민이 나눠서 내고, 그 위험에 ‘당첨’된 사람에게는 보험료로 지원해 준다.
이런 위험을 개인이 알아서 대비한다면 웬만한 소득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용이 높을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취약하던 시절에는 암 환자 한 명이 나오면 가세가 기운다고 했다. 공보험이 취약한 미국에서는 지금도 이 상태인 사람이 많다.
지금 본 것은 복지국가에 대한 아주 짧은 요약이다. 복지국가란 ‘복지를 퍼주는 관대한 국가’가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보편적인 위험을, 공동으로 지출하여 공동으로 대비하는 시스템이다. 서로 위험을 나눠 들겠다는 국민 공동의 계약이다. 이 계약이 잘 굴러가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게 복지국가다(재원이 조세냐 보험료냐 차이는 있다).
3.
한국의 의료 소비자들은 의료 시스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았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비싸지도 않은데, 유럽처럼 몇 달씩 기다리지도 않는다. 딱딱한 말로 하면, 높은 의료 접근성을 낮은 비용으로 구현했다.
정부도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보험료는 국민이 내고, 병원 짓고 의사 월급 주는 돈은 민간에서 조성한다. 정부는 영국처럼 의사 월급을 주지도 않고, 미국처럼 아픈 국민을 나몰라라 하지도 않는다.
의료 공급자들도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돈을 엄청 잘 버는데, 안정성도 높다. 면허 제도로 보호받고 있어서 그렇다. 입시에서 전국 1등부터 3000등까지 일단 의대부터 채우는 기묘한 풍경도 그래서 나온다.
동화 같은 이야기다. 아무도 비용을 내지 않는데, 세 주체가 모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역시 뭔가 이상하다.
비밀은 ‘진료량 폭발’에 있다. 한국 의료 체계에서는 진료 행위 하나마다 수가(건강보험에서 의료 공급자에게 지급하는 돈)가 지급된다. 가장 비싼 의사 인건비는 고정비인데, 수익은 진료 수가 늘수록 늘어나는 구조다. 회전수를 늘리면 공보험 체계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 ‘3분 진료’, 반복된 재진료, 휴식 대신 내원 유도 등등, 진료량을 늘리는 기술이 총동원된다. 여기에 건강보험 바깥 시장에서 얻는 수익을 합치면 의료 산업의 총수입이 된다.
국민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비밀도 여기에 있다. 공급자들이 회전수 전략을 쓰기 때문에 의료 공급량이 충분하다. 영국처럼 의사가 공무원에 가까운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공급량이다. 국민들은 병원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간다. 싸니까. 의료 공급자는 필요 이상으로 진료를 많이 한다. 회전수가 돈이니까. 정부는 당장 손해 볼 일이 없다. 예산 나가는 일 아니니까.
한국 의료 시스템이 부린 마법은 대략 이렇게 돌아간다. 그러므로, 회전수 전략이 안 통하는 분야가 있다면, 그곳이 약한 고리다. 마법이 끝난다면 거기서 끝날 것이다.
4.
조용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생명이 걸린 환자를 보는 응급실 의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증이 급소입니다. 중증은 회전수를 늘릴 수가 없거든요.” 약한 고리는 사람 목숨이 걸린 진료, 급성 또는 중증 환자의 진료다. 이런 분야를 필수의료라고 부른다. 싸다고 수술 두 번 받는 환자가 있을 리 없고, ‘3분 진료’로 돌릴 수도 없다.
병원은 회전수 전략이 통하는 분야에서 돈을 벌고, 안 통하는 분야는 슬금슬금 진료를 줄인다. 웬만한 병원에 흉부외과 의사가 사라져서 심장 수술이 안 된다는 게 그런 얘기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지, 대형병원이 필수의료를 아주 없앨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다음 세대 의사들을 여기 투입해서 갈아 넣습니다. 그게 전공의입니다. 수련 중인 의사입니다. 전문의보다 숙련도가 낮지만, 대신에 노동량으로 전공의 한 명이 전문의 세 명 분을 합니다. 그리고 몸값은 전문의 3분의 1 이하죠. 몸값과 노동량을 곱하면, 전공의 한 명이 전문의 열 명 분을 하는 겁니다.” 조용수 교수의 설명이다.
“전공의는 이 부당한 대우를 왜 버티느냐? 수련 과정이 끝나면 그만한 보상을 받으니 견디죠. 면허 하나 달랑 들고 일반의로 나가면 페이닥터도 못하고 개업 밖에 길이 없는데, 개업은 돈은 벌지만 위험하잖아요. 그래서 일단 전문의는 따고, 그 다음에 교수든 페이닥터든 개업이든 고르는 거였습니다. 원래는 그랬죠.”
일종의 암묵적 동맹이다. 환자는 공보험 체제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의료 접근성을, 정부는 저수가를, 병원은 고수익을, 의사는 고소득과 면허의 보호를 얻는다. 회전수 전략이 안 통하는 중증 분야는 미래 세대 의사들을 동원해 틀어막고, 미래 세대는 이 동맹에 진입하기 위해 가혹한 과정을 견딘다. 이게 대한민국의 ‘의료 사회계약’이다.
5.
이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의료 현장을 이탈하는 게 의료 대란의 핵심이다. 왜 떠나는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면허의 가치를 지키려는 일종의 파업이다. 그렇다면 사표는 ‘블러핑’(허세)이다. 이게 진실에 가깝다면, 윤석열 정부의 단호한 대응 기조는 정답이다. 허세에는 굴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계속 줘야 이익집단의 요구를 꺾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두 번째 해석을 보자. 전공의들은 ‘전공의 수련 과정’이 더이상 버틸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미래에 의사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면, 지금 전문의 수련에 쓰는 시간 4~5년이 지나치게 비싸진다. 개업은 전문의 자격증 없이도 가능하니 하루라도 빨리 민간 시장으로 나가는게 이득이다. 그렇다면 지금 일어나는 이탈은 파업이 아니다. 진짜 사표다.
프리드먼의 애독자에게는 놀라운 얘기일 수 있으나, 인간은 금전 보상 못지않게 비금전 보상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필수의료 바깥 민간시장에서 엄청난 돈을 버는 동료들을 보면서도 필수의료에 남은 의사들은 복합적인 동기를 갖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보람,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명예, 환자들과 맺는 유사가족적 유대 등이 이들을 움직이는 비금전 동기다.
의대 증원이 필수의료를 살릴 거라는 논리에는 ‘낙수효과’가 깔려 있다. 민간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늘어난 의사 중 일부는 필수의료에 남을 것이라는 논리다. 이는 필수의료를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의사’로 취급하는 것과 같다. ‘2류 의사’로 보이기 싫어서라도 민간 시장에 진출하려는 동기가 생긴다.
의대 증원 논란이 길어지면서, ‘의사는 돈만 밝히는 집단’이라는 대중의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 이 역시 필수의료에서 이탈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어차피 존경받지 못할 거라면, 돈이라도 더 버는 게 낫다. 비금전 보상을 파괴하면 금전 보상의 힘이 더 세진다.
이리하여, 의대 증원 정책은 두 가지 강력한 경로로 필수의료 의사를 줄인다. 첫째, 민간 시장의 금전 보상을 줄인다(이것은 정책이 의도한 효과가 맞다). 이 결과로 뜻밖에도 ‘4~5년의 수련과정’이 의사 입장에서 지나치게 비싸져서 전공의 과정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둘째, 필수의료의 비금전 보상을 줄인다(이것은 정책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피할 수 없는 결과다). 비금전 보상은 의사 수급 경쟁에서 필수의료가 민간시장과 경쟁할 차별화된 가치인데, 이게 사라진다. 차별화 없이 간명한 금전 보상의 경쟁이 되면, 결과도 매우 간명할 것이다.
지금 전공의들은 이 두 효과를 가장 예민하게 체감하는 사람들이다. 파업이란 본질적으로 일터로 돌아오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파업이 아니다.
6
이상의 논의는 의료 정책을 넘어서는 뿌리 깊은 모순을 드러낸다. 한국은 다른 분야처럼 사회복지 시스템도 속성으로 갖춘 나라다. 중요한 비결은 비용을 미래로 넘긴 것이다. 그래서 당대의 합의 시점에는 마찰을 줄일 수 있었다.
국민연금이 전형적인 사례다. 현재 국민연금 설계는 지나치게 후해서 강제가입 정책을 논외로 하더라도 ‘가입하지 않으면 바보’인 수준이다. 우선 이런 식으로 사회복지 체제를 먼저 만들고, 긴 시간을 들여서 조금씩 비용 부담을 올려 간다. 괜찮은 전략이다. 어려운 합의를 비교적 쉽게 해냈고, 그 결과로 위험을 공동 부담하는 더 나은 균형점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 전략이 계속 괜찮으려면 전제가 두 가지 있다. 첫째, ‘긴 시간을 들여 조금씩 비용 부담 올리기’를 실제로 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이 결정을 자꾸 뒤로 미루면서 젊은 세대의 불신 대상이 되었다. 둘째, 후속 세대가 계속 유입이 되어야 하고, 성장률이 어느 정도는 받쳐 줘야 한다. 그래야 미래로 미룬 비용을 치를 수 있다.
여기서 본질적인 위기가 드러난다. 한국은 ‘인구 보너스’(젊은 인구가 많아서 생산가능 인구 비중이 높아 추가로 얻어지는 경제 성장)와 ‘고도성장’을 무기로 빠르게 복지체제를 구축했다. 사회보험을 속성으로 구축했다는 것은 일단 미래로 넘긴 비용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청구서가 날아오는 바로 그 시점에, 두 무기가 모두 사라졌다.
정재훈 교수는 예방의학자다. 환자가 아니라 의료 시스템을 보는 의사다. 그는 “건강보험 체제가 ‘폰지’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투자시장에서 ‘폰지’란 사기 수법이다. 자체의 가치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후속 투자자의 돈을 받아 앞선 투자자에게 수익을 안겨주는 수법으로, 후속 투자자가 끊기는 순간 투자상품의 가치는 휴지조각이 된다.
사회보험이 곧 사기는 아니다. 하지만 본질상 후속 세대 유입이 끊겨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폰지 구조’는 맞다. 극단적인 한국의 저출산은 사회보험의 폰지 속성을 거의 ‘폰지 사기’에 가깝게 밀어붙이고 있다. “사회보험은 현재세대와 미래세대 간의 상호 부양 약속인데, 인구 균형도 깨지고 성장도 정체되면 작동을 안 합니다. 사회보험의 근본적 위기가 온다는 게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국민연금의 위기와 같은 겁니다.”
유난히 빠른 경제성장, 아주 풍부했던 인구 보너스, 빠르게 선진국을 따라잡은 사회복지 속성 발전, 비교적 갈등이 적었던 후한 보장구조 등은 후속세대의 지불능력에 더 크게 의지하도록 만들었다. 거기에 기록적 저출산까지 겹치면, 한국형 사회보험 체제의 최대 균열은 세대 간에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선진 복지국가에서 자본 대 노동 간의 균열, 정규직 대 불안정 노동 간의 균열이 대표적이라면, 한국은 그 에너지가 세대간 균열에 모이는 나라다.
의사 후속세대들이 비용을 선지출할 의사를 철회하고 있다. 이것은 의료 분야에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다. 차라리 한국형 사회보험 체제 위기의 섬뜩한 예고편이다. 이 위기는 분야와 상황을 바꿔 가며 계속 출몰할 것이다.
7.
그렇다고 의사의 ‘고소득과 면허 보호 조합’을 그대로 두는 것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면허는 두 가지 중요한 속성을 갖고 있다.
첫째, ‘품질 관리’ 기능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일 경우, 그에 걸맞은 훈련을 받은 사람만 일하도록 한다. 의료는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에 면허의 품질 관리 기능이 정당화된다. 다만, 모든 의료가 그런지는 논란거리다.
둘째, ‘진입 장벽’ 기능이다. 시장에 아무나 진입을 못 하도록 보호해 준다. 이 보호 덕분에 면허 소지자는 자유경쟁 시장과 비교해 초과수익을 올린다. 경제학은 이런 초과수익을 ‘지대’라고 부른다. 면허 제도는 면허 소지자에게 지대를 안겨 준다.
품질 관리는 좋고, 지대는 나쁘다. 문제는 의료 시장에서 어디서부터 지대인지를 가려내는 일이다.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따져볼 수는 있다. 의료를 필수의료와 비필수의료 두 단계로만 구분하면 중요한 포인트를 놓친다.
의료 시장은 사실상 세 단계로 구분되어 있다. 첫째, 가장 안쪽에는 사람 목숨이 달린 질병을 보는 의료가 있다. 이게 우리가 얘기해온 필수의료다. 흔히 말하는 “큰 병원 가야 하는 병”을 다룬다. 둘째, 중간 영역이 있다. 생명과 당장 상관이 없지만 불편하거나 힘든 질병, 관리하지 않으면 중증이 될지 모르는 질병을 본다. 감기 진료나 가정의학과 같은 영역이다. 셋째, 가장 바깥에는 돈은 가장 많이 벌면서 생명과 상관은 가장 낮은 영역이 있다. 요즘 관심이 쏠리는 미용 분야가 있다.
안쪽과 중간은 공보험 체계가 대체로 포섭하는 영역이다. 바깥은 사실상 민간 경쟁 시장인데 면허로 공급자가 제한될 뿐이다. 회전수 전략은 안쪽에서는 안 통한다. 중간에서는 필승 전략이다. 가격을 공보험이(그리고 최근에는 실손보험이) 억눌러 줘서 환자가 더 많은 서비스를 원한다. 밖에서는 가격신호가 작동해서 별 의미가 없다.
의사의 소득은 안에서 밖으로 갈수록 높아진다. 생명 관련성은 안에서 밖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생명 관련성이 낮아질수록 ‘품질 관리’의 필요도 낮아지니, 밖으로 갈수록 면허는 품질 관리 속성이 줄어들고 지대 속성이 커진다.
사회가 의사에 면허라는 특권을 주는 이유는 가장 안쪽의 서비스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면허가 창출하는 지대는 바깥에 있는 의사가 가장 크게 누린다. 이런 면에서, 바깥 영역에 있는 의사는, 안쪽 의사들이 만들어내는 명분에 무임승차하는 중이다. 의사는 단일 집단이 아니다.
8.
이 삼분할 구조를 놓고 보면, 각 부문에 맞는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 다음은 정재훈 교수가 제안하는 해법을 요약한 것이다.
안쪽은 가격신호가 없어도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필요 없는 심장 수술을 싸다고 받을 환자는 없다. 여기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100%에 가깝게 높여도 부작용이 크지 않다. 필수의료를 병원이 유지하게 만들려면 수가도 올려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을 필수의료에 더 집중해 쓰는 결과가 된다.
중간 영역에서는 회전수 전략을 억제해야 한다. 상식적인 해법은 가격신호를 되살리는 것이다. 환자의 자기부담금을 높여서 의료 쇼핑을 줄이고, 실손보험도 손봐야 한다. 이렇게 해서 진료 숫자를 줄여야 건강보험을 필수의료에 집중하면서도 붕괴를 늦출 수 있다.
바깥 영역에서는 지대를 회수한다. 의료적 위험성이 사실상 없다고 판단되는 영역은 면허 없이도 영업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어느 정도 잠재적 위험이 있는 분야라면, 초과수익을 세금으로 환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용세’를 만들어 미용 분야 초과수익을 거둬들이고, 그 돈을 가장 안쪽의 필수의료로 보낼 수 있다.
정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이야기는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첫째,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의료는 지금보다 자기 부담이 비싸진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가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라는 자부심이 있는데, 목숨이 달리지 않은 분야에서는 이걸 내려놓는다는 뜻입니다. 둘째, 그러면서도 건강보험료는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병원들이 급성 중증 진료의 적자를 메우던 다른 구멍을 막아버린다는 뜻이니까, 급성 중증 쪽 수가가 올라가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은 자체로는 정론이다. 하지만 전문의는 전공의처럼 터무니없이 오래 일하지도 않고, 전공의처럼 싸게 쓸 수도 없다. 조용수 교수의 현장감 넘치는 계산("세 배 넘게 일하고, 삼분의 일도 안 받아요")으로는, 전문의는 전공의보다 열 배 더 비싸다. 건강보험 재정을 필수의료에 훨씬 더 투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비필수 분야 진료가 크게 줄어야 한다.
결국 지금 정부가 가겠다는 길로 가려 해도 비필수 분야 억제는 불가피하다. 그 인기 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뿐이다. 바깥 영역의 지대 회수 역시 가야 할 길이다. 안쪽과 바깥의 소득 격차가 지나치게 크면, 안쪽은 의사를 붙잡아둘 수가 없다. 이것은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정책이 이 구조를 시야에 넣지 않을 때,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일어난다. 최악의 조합을, 하지만 현실적인 결과를 상상해 보자.
9.
의대생은 증원하고, 중간 영역에 가격신호는 복원하지 않고, 바깥 영역에 지대도 회수하지 않는 정책조합을 생각해 보자(지금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 경우 삼분할된 의료 시장에서 일어날 일은 이렇다.
안쪽 시장에서는 의사가 떠난다.
수련에 4~5년을 쓰는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진다. 비금전 보상이 낮아지면서 오로지 금전 보상 만으로 안쪽과 바깥족을 저울질하게 된다. 이러면 안쪽의 매력은 사실상 없다. 돈 적게 주고, 노동강도 강하고, 까딱 실수하면 소송 걸리고 감옥 간다. 설사 바깥 시장이 의사 공급 증가로 소득이 지금보다 낮아진다고 해도, 이 두 효과(수련의 비용 증가와 비금전 보상 감소)가 그를 압도하므로 의사는 안쪽을 떠난다.
중간 시장은 호황을 누린다.
고령화는 병원 수요를 끌어올린다. 가격신호 없고 의료쇼핑이 가능한 질병을 다루는 중간 시장이 고령화의 수혜자다. 지금도 활동하는 의사 12만명 중 대부분을 넉넉히 먹여 살리는 시장이다. 한 해 2000명씩 10년쯤 더 공급한다고 해도(수련기간을 포함하면 20년 걸린다) 2만명이 증가하는 셈인데, 고령화와 가격신호 고장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보장된 성장이 이를 만회하고도 남는다.
이 비필수 의료 호황을 공보험 재정이 떠받친다. 저성장과 인구 감소의 시대에 이 수요 팽창이 온다. 붕괴는 정해진 미래다.
바깥 시장은 여전히 지대 시장이다.
경쟁이 지금보다는 치열해질 것이다. 하지만 본질상 면허 보유자끼리의 경쟁이다. 우리가 아는 경쟁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안쪽 시장에 남으려던 의사들도 바깥으로 더 많이 나온다. 사회가 가장 공들여 교육시킨 재능 있는 청년들이 의료로, 의료 중에서도 사람 목숨과 무관한 곳으로 몰릴 것이다. 이것은 극적인 실패다. 사회가 공들여 지대추구자를 키우고, 지대추구자에 보상한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던 결과가 분명 아니다. 의사들의 기득권에 분노하는 시민일수록 이와는 정반대 결과를 원할 게 틀림없다.
합리적인 정책은 바깥 시장의 지대 회수, 중간 시장의 가격신호 회복과 진료 줄이기, 안쪽 시장의 비금전 보상 강화를 조합할 것이다. 목표는 필수의료 강화와 공보험의 지속가능성 개선이 될 것이다.
이 정책 방향이 잡히고 나면, 의사 면허를 얼마나 내줄지는 시스템을 관찰하면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의사의 숫자는 최종 해결책이 아니라 종속변수로 중요도가 내려간다. 애초에 몇 달씩 온 나라가 시끄러울 일도 아니고, 환자 목숨을 걸고 강대 강 충돌을 벌일 일도 아닌 것이다. 의사 집단이 이런 정원 조정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지대추구 외에 아무 명분도 갖지 못한 집단이 된다.
10.
이렇게 보면 ‘의대 증원’이라는 정책의 의미가 극적으로 달라진다. 이것은 의사라는 기득권 집단에 맞선 뚝심과 용기로 보였고,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접근법에는 의료의 삼분할 구조에 대한 인식이 없다. 의료 영역을 하나로 뭉뚱그리지는 않지만, 상당히 연속성 높은 어떤 것으로 취급한다. 의사 2000명을 더 부으면 필수의료에 어쨌든 의사는 늘 것이라는 가정은 이 전제로만 설명이 된다.
우리가 확인한 현실은 반대다. 의료 시장은 세 영역으로 분할돼 있다. 진료 분야, 공보험 체제에 포섭된 정도, 가격신호가 작동하는 방식, 의사가 받는 금전적 비금전적 보상 등, 일련의 차이에 따라 행위자들이 각자 다른 전략으로 움직인 결과다. 세 영역은 오갈 수 없을 정도로 닫혀 있지는 않지만, 경계선이 분명히 보일 정도로 확연히 갈라져 있다.
그렇다면 이 정책의 가장 바탕 특징은 이것이다. ‘인기 없는 해법’을 말할 용기의 부재. 이 삼분할 구조를 일단 전제하면, 국민도 의사도 싫어할 얘기를 해야 한다. 의대 2000명 증원은 그렇지 않다. 의사는 싫어해도 국민은 좋아한다.
우리는 용기를 흉내내는 영합, 결기를 모방하는 비겁, 비전을 연기하는 근시안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걸 용기와 결기와 비전이라고 진심으로 믿어버린 리더를 보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전임 리더들과 달리 어려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자신’에 도취한 돈키호테를 보고 있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 개혁을 주제로 긴급 대국민 담화를 했다. 도대체 왜 했는지 다들 이해할 수 없어서, 여당에서는 “혜성을 바라보며 멸종을 예감하는 공룡의 심정”이라는 시적인 반응까지 나왔다. 그 대국민 담화는 이 돈키호테의 도취로 완벽하게 설명된다.
이것은 비극이되, 새로운 비극이다. 분명 문제를 회피하는 데 더 유능했던 전임자들과는 다른 종류의 비극이다. 우리는 정치가 사회보험의 미래와 같은 중요한 문제에 주목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11.
이 글은 두 전문가의 경험과 지식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했다. 조용수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567848059 는 응급실 의사다. 광주 전남대병원에서 일한다. 요즘 의료계에서 가장 모자란다는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를 동시에 하는 의사다. 그는 의대 증원 이슈가 등장한 후 필수의료의 최전선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설득력 있게 들려 줬다.
정재훈 https://www.facebook.com/jaehun.jung.md 은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예방의학자다. “공급을 늘리면 의사 부족이 해소된다”라는 식으로 일이 굴러갈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그걸 말하려면 복잡하고 긴 설명이 필요한데, 우리 미디어 환경에서 그런 얘기는 인기가 없다. 그는 이 문제에서 의견이 다른 사람도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토론의 토대를 제시하고 싶다.
얼룩소는 두 전문가의 지식과 의견을 담아 인스턴트 전자책을 만들었다. 지금 뜨거운 이슈를, 짧고 빠르고 쉽게, 믿을 만한 전문가들이, 가치 있는 지식과 정보를, 책보다 훨씬 싸게 제공하는 게 목표다. 이 글에서 거칠게 요약된 지식과 정보를 전문가들이 직접 말하는 전자책이 아래에 있다. 내 글이야 전문가 의견을 정리했을 뿐이고, 의료 정책이 이제 좀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고 믿는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이 진짜 전문가들의 진단과 제안을 많이 읽고 의견 내주셨으면 좋겠다.
조용수 교수의 전자책은
정재훈 교수의 전자책은
우리는 오로지 클릭 유도가 목적인 뉴스의 공해에 충분히 지쳐 있다. 얼룩소가 만드는 인스턴트 전자책은 가치 있는 지식과 정보를, 이슈가 뜨거운 그 순간에 제공하는 실험이다. 우리 모두는 이런 지식과 정보의 가치를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는 실험이다. 얼룩소는 이 인스턴트 전자책을 ‘에어북’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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