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는 `진수`가 쓴 역사서 <삼국지>로 3세기 말에 쓰인 책
반면 소설 < 삼국지 연의>는 그로부터 약 1천 여 년 뒤 원나라오 명나라 시기에 작가 나관중이 쓴 것
널리 알려진 것은 소설 < 삼국지 연의> 이지만 상당 부분이 역사를 토대로 만들어졌기에
매우 중요한 역사 자료로 인정받음.
도원결의, 삼고초려, 계륵, 허허실실, 백미 등 < 삼국지연의> 에서 유래한 말들이 지금도 생활속에서 쓰임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가 죽고 난 뒤 다시금 혼란이 찾아온 중국을 한나라의 유방이 재통일함.
이후 400여년 ( 기원전 206~220년) 한나라 왕조가 유지.
-> 한 말에 10인의 환관 ( 십상시) 때문에 혼란해짐.
-> 환건적의 난 이 발생
-> 영웅들이 9 조조, 원소 유비,관우,장비, 손견등이 환건적 정리
-> 중국 역사 최악의 폭군 <동탁> 이 등장, 황제를 등에 업고 무소불위 권력 남발.
-> 동탁의 참모이자 양아들인 <여포>때문에 제거를 못함, 적토마 소유
-> < 채회전본 삼국연의>에 조조가 동탁을 살해하려는 상황 묘사 ( 정사는 아님)
-> 조조는 거사 실패후 고향으로 돌아가서 반동탁 세력을 규합.(원술, 손견, 원소, 공손찬 등)
반동탁세력에 합류하려고 유비가 동생들과 찾아옴( 장팔사모든 장비,청룡언월도든 관우)
도망도중 <여백사> 의 가족 몰살시킴 ( 정사에는 없는 이야기)
-> 여러번의 실패후 동탁은 여포에게 살해 당함
사도 왕윤이 수양딸 `초선`의 미인계로 둘사이를 이간질 시킴( 정사에는 시녀로만 나옴)
-> 황제는 조조에게 보호를 요청.
조조는 천하의 권력을 잡아 현명하게 치세 했으나 < 서주대학살>을 계기로 ( 아버지의 살해범 원수갚음)
폭군이 되기 시작.
-> 유비는 천둥소리에 놀란척 하면서 조조를 안심 시킴 ( 정사와 소설에 다 나옴)
-> 조조 (연주,예주)와 조조의 오랜 친구 원소( 유주,병주,기주,정주) 대결 ;
관도대전 ( 적벽대전, 이릉전투와 함께 3대 대전)
** 그럼 왜 조조는 실재보다 악하게 표현되고 유비는 상대적으로 평가가 후한가?
진수의 <삼국지> 와 나관중의 < 삼국지연의>는 진나라와 원말 명초의 1천년 여 시간 차로
시대가 변함
어지러웠던 후한 말과 달리 송나라 이후 주자학적 세계관이 들어오면서 유교와 성리학을 중요하게 여김.
덕,의리, 명분, 정통성을 중시하게 되면서 법가적인 조조보다는 환 황실을 계승하려는 유가적인 유비를 중심에 둔 것.
- 삼고초려 ; 유비(46세)가 제갈량(26세)을 모시기 위해서 노력한 고사 성어
제갈량은 천하를 통일 하기위한 방법으로 조조에 대항하는 연합 세력으로 양주의 손권과 손을 잡아야한다고 설득
( 일명 천하삼분지계)
- 형주의 유표는 종친이라는 이유로 유비를 신야에서 기거하게 함 ( 관우,장비 포함)
-> 부친 사망후 형주를 이어받은 둘째 아들은 조조의 대군에게 형주를 그냥 바침
-> 유비,장비,관우는 떠돌이 신세가됨
-> 적벽대전 ; 제갈량의 권유로 유비와 손권 ( 책사 주유) 연합군은 조조와 대결
장강의 암벽에 적색 글씨가 새겨져 있어서 적벽이라함.
1) 제갈량의 화살 구하기 ; 정사에는 없는 소설
2) 황개의 고육계 ( 부하가 배신하는 척 ) 와 방통의 연환계 ( 배 흔들림 방지를 위해 묶도록 유도)
3) 동남풍 예측
- 관우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화타> ; 정사 아님.
관우가 상처 입기 이미 11년 전에 조조에 의해서 화타는 살해당함 ( 의서는 다 불태움)
- 유비와 함께 조조를 공격하던 손권이 이제는 조조와 함께 유비군을 공격
관우가 생포되고 219년 12월 58세로 손권에 의해 처형당함.
관우의 수급을 ( 전장에서 배어 얻은 적군의 머리 ) 손권으로 부터 받은 조조는 성대하게 장례를 치룸 ( 역사적 사실)
*** 삼국 시대 형성 과정 ***
- 그 이후 1달 지나 조조 사망. 66세
뒤를 이은 아들 조비는 황제를 폐위 시키고 본인이 위나라 황제가가 됨. ( 400년 한나라 멸망 )
- 제갈량의 강권으로 유비는 한나라를 계승하는 촉나라 ( 촉한 ) 을 세움 221년
- 손권이 오나라를 세움 222년.
- 부하들에게 장비가 살해 221년. 55세.
- 유비는 장비의 복수를 위해서 손권의 오나라 공격
(위나라를 공격하기 위해서 오나라와 척을 지면 안된다는 제갈량의 조언을 무시 )
--> 결국 222년 대패함. (이릉전투 ; 유비의 전성기 종말 및 삼국지의 전환점)
- 224년 유비 사망 후 아들 유선에게 촉나라 황제 자리 물려줌. 63세.
- < 출사표 > ; 한나라의 부흥이라는 유비의 유언들 받들어 열악한 여건에도 북벌에 나서면서 올린 글.
촉나라의 군사력은 위나라의 1/10 수준.
- 허허실실 (공성계) ; 사마의( 위나라 책사) 볼 수 있는 높은 성벽에서 태연하게 금슬 연주를 학고
성벽을 열어놓게 함으로서 사마의에게 혼란을 주어 물러나게 함.
- 제갈량 ; 위나라와의 전쟁 와중에 스트레스로 54세에 사망
살아있는 듯 복장으로 변장해서 위나라군에 대응함. ( 정사에서는 촉나라가 쓸쓸하게 물러남)
** 280년 삼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 통일을 이룩한 사람은 유비,조조,손권이 아닌 사마의 의 손자인 사마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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