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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야기

[박정훈 칼럼] 약자 위한다는 ‘평등敎’의 사이비 교주들

강자를 억눌러

하향 평준화시켜야
정의인 줄 아는
사이비 ‘평등교’가
지금도 국회를 장악해
약자 괴롭히는 역설을
만들어내고 있다

입력 2022.12.30 00:00
 
 
홍준표 대구시장과 전국상인연합회 대구지회장, 한국체인스토어협회장 등이 지난 19일 대구 시청에서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다는 협약을 맺은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대구시가 광역단체 중 처음으로 대형마트 일요일 휴업을 풀기로 한 데는 의외의 사연이 있었다. ‘홍준표 대구시’가 밀어붙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골목상권 쪽이 먼저 요청해 얘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전통 시장과 중소 수퍼마켓을 대표하는 단체들이 대형마트 측과 협의를 거쳐 규제를 바꿀 것을 대구시에 선(先)제안했다는 것이다. 골목상권 측 논리는 단순했다. 이마트·롯데마트 등이 일요일에 문을 닫아도 고객이 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규제 후에도 늘지 않는 신용카드 매출 수치가 빼도 박도 못할 증거였다.

2년 전 한국유통학회에 흥미로운 사례 연구가 보고됐다. 2018년 이마트 부평점이 문을 닫았다. 그러자 반경 3㎞ 내 중소 소매점, 음식점 매출도 덩달아 8~26%씩 쪼그라들었다.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죽이는 게 아니라 공생 관계라는 뜻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대형마트에 쇼핑 온 김에 주변 점포도 들르는 고객이 10명 중 6명에 달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유통 대기업을 죽여야 소상공인이 산다는 이분법적 논리로 모두가 손해인 규제를 강요했다. 소비자도, 대형마트도, 골목 상인도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었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기간제 근로자 보호 제도를 도입했다. 기간 계약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하려면 정규직 채용을 의무화하는 규제였다. 그러나 기대했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규제 전엔 기간제 근로자가 같은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비율이 8~9%쯤 됐다. 규제 시행 후 만 2년이 지나자 이 비율은 5~6%로 뚝 떨어졌다. 오히려 정규직 전환을 못하게 막는 역효과를 낸 것이었다.

한 직장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도 해고당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2년’은 약속의 시간이 아니라 근로자를 내모는 공포의 시간이 됐다. 수많은 기간제가 2년마다 쫓겨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야 했다. 기간제 비정규직 숫자는 늘어만 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외쳤던 문재인 정부에선 기간제 비율이 14.6%에서 21.6%로 올라갔다. 기가 막힌 역설이었다.

문 정부의 5년 국정은 약자 보호의 역설을 양산한 거대한 실험장과도 같았다. ‘소득 주도 성장’을 하겠다며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자 저임금 일자리가 사라지고 하위층 소득이 줄어들었다.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해준다며 주 52시간제를 도입하자 추가 근로를 못해 월급 봉투가 얇아진 저소득 근로자들이 퇴근 후 투잡을 뛰는 사례가 속출했다. 세입자 보호를 이유로 밀어붙인 임대차 3법은 전·월세 값을 폭등시키고 전세 대란을 일으켰다. 약자 편이라던 문 정부에서 약자들을 괴롭히는 아이러니가 빚어졌다.

 

나는 이런 규제를 만든 권력자들의 선의(善意)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좋은 의도’였다면 그 결과로 빚어진 역설적 부작용을 시정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간제 비정규직이 2년마다 직장에서 내몰리고, 저소득층 소득이 줄고,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는 역설이 눈앞에 펼쳐졌는데도 정책 오류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약자가 피해 입는 현실을 보고도 그냥 방치한 것이다. 어떻게 ‘선의’인가.

입만 열면 약자 편임을 내세우는 것이 이념형 좌파 정치의 특징이다. 그러나 이들은 약자 계층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사회적으로 자립하게 돕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며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의 삶을 권유한 조국 전 장관이 이들의 세계관을 압축해 말해주었다. 약자들을 영원히 가두리 양식장에 가둬놓겠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었다.

문 정부 때 부동산 정책을 입안했던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기 집을 가지면 보수적 투표 성향을 갖는다’고 썼다. 집 없는 무주택자에 머물게 하는 것이 선거에 유리하다는 뜻이었다. 또 다른 정책실장은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라며 “모두가 다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실제로 문 정부는 청년·서민층의 내 집 마련 꿈을 도와주는 데 별다른 정책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자기 집 대신 공공 임대주택을 늘려줄 테니 거기 들어가 살라고 했다.

사이비 교주는 신도들이 구원받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에게 매어 있어야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온갖 약자 보호형 규제를 양산하는 좌파 정치인들의 심리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약자가 그냥 약자로 남아 좌파 정치가 제공해주는 공적(公的) 배려에 손 벌리며 살게 만드는 것이 선거 공학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이다.

올 국회 마지막 날, 영세 사업장에서 주 52시간 초과 근로를 허용해주는 조치가 끝내 연장되지 못했다. 강자를 눌러 하향 평준화시키는 것을 정의로 아는 ‘평등교(敎)’의 정치인들이 지금도 국회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약자를 위한다며 약자를 못살게 하는 역설은 어느 것 하나 시정되지 않고 국정 곳곳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