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있으나 지혜가 없으면
육체가 피해보는 수 밖에
자업자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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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미래가 없구나.'
열대 특유의 열기와 습기 거기에 어둠까지 더해져, 방금 입고 나온 뽀송한 하얀 반팔 티셔츠가 눅눅하다 못해 누렇게 색을 잃어갔다. 시원한 맥주를 찾아, 호텔 앞 편의점에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처음부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좁은 데다, 물건까지 빽빽하게 진열해 놓은 편의점에 검은 AK-47 자동소총을 든 경비원의 존재는 가뜩이나 무더운 여름밤을 더 갑갑하게 만들었다.
모든 사업은 수익을 목적으로 한다. 수익은 매출에서 비용을 뺀 것이다.
매출-비용=수익.
사업이 잘 되려면, 매출이 커지는 동시에 비용이 감소해서 수익이 많아져야 한다. 편의점의 경우, 비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50%가 넘는다. 그런데 점원뿐 아니라, 무장 경비원까지 고용해야 한다면 편의점으로서는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 당연히 증가한 비용은 물건 가격에 반영된다. 편의점 물건이 비싸지는 것이다. 같은 물건을 비싸게 사고파는 나라에서는 생산자도 소비자도 모두 손해다.
"불신의 비용"이다.
이렇게 치안이 불안한 나라, 상대를 믿을 수 없는 나라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못 믿겠다며,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라는 나라는 없다. 그런데 병원에서 수술하는 것을 못 믿겠다며, 정부와 국민들이 원하니까, CCTV를 의무적으로 달라고 했다. 의사들은 억울했지만, 울면서 겨자 먹기로 CCTV를 모두 설치했다. CCTV는 공짜가 아니다. 추가 비용과 인력이 발생하니까, 가격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올릴 수가 없다. 의무적으로 CCTV를 달고 관리해야 하는 병원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큰 손해를 입었다.
서비스 업에서 불만은 언제나 발생한다.
"치료(수술)가 뭐 잘못된 거 아니에요?"
식당에서 음식맛이 없거나 불쾌한 경험을 하면, 악플을 달고, 심지어 소송을 걸기도 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즉 생산자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병원에서 사람들은 치료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여기서 치료하다 잘못되면 책임질 수 있어요?"
그 어떤 식당에서도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이 음식 맛없으면 책임지실 거예요?"
"이 음식 먹고 잘못되면, 책임지실 거예요?"
라고 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무례한 말을 손님이 있다면, 식당 주인은 버럭 화를 내며, "당신에게는 음식을 팔지 않을 테니 당장 나가라."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진료 거부를 할 수 없는 의사는 그럴 수도 없다.
한국은 전 세계 최고의 진료를 누리지만, 의사에 대한 불신은 최대로 높은 사회이다. 불신이 만연한 사회에서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CCTV 설치비부터, 각종 소송 및 위험부담)을 의사는 가격에 반영할 수조차 없다. (모든 수가는 국가가 100% 정한다) 거기다 결과가 나쁘면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의사에게 법원은 살인범에게 부과하는 배상금을 보다 더한 액수를 물린다.
(20대 직원을 막대기로 살해한 '막대기 살인' 배상금은 8억, 단순 X-ray에서 혹(나중에 폐암으로 밝혀짐) 놓쳤다고 17억 배상)
의사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부당하다고 해도, 국가와 정부는 듣지 않았다. 거기다 의사에게는 저항권 자체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탈과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포기'다.
이런 꼬딱지만한 편의점에 무장 경비원이 있는 한, 필리핀의 미래는 없다. 불신은 비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의사를 믿지 못한다. 이에 더해 정부는 바이탈과 의사를 떨거지 의사로 생각하기에, 의대 증원만 하면 경쟁에서 밀린 의사들이 울며겨자먹기로 바이탈과에 지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의대증원을 밀어 붙이고 있다. 사명감이라는 자부심이 아니라, 떨거지라는 모욕을 참고 견딜 의사는 바보 아니면 없다.
강제적으로 불신의 비용을 모두 떠안아야 했던 기존의 바이탈과 의사는 조용히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의대생과 인턴들은 당연히 바이탈과를 지원하지 않았다. 불신의 비싼 비용을 일방적으로 치르던 바이탈과 의사가 없어진 것이다. 의사가 사라졌으니, 이제 불신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치를 것인가? 편의점이 사라지면, 불편할 뿐이다. 하지만 병원과 의사가 사라지면 사람이 죽어나간다. 그리고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으로 이미 죽어나가고 있다.
시원한 맥주로 무더위를 쫓으려고 필리핀의 편의점에 갔다가, 괜히 무장 경비원이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는 검은 자동 권총을 보고 식은땀만 흘렸다. 몸에서는 찝찝한 땀냄새가 난다.
#바이탈과 #의대증원 #낙수의사 #빛나리의사
ㅡ페친글 펌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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