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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용 기록집

19세기 후반 일본과 조선의 차이

 

1850년대 이후 일본

쇼군과 천황의 권력 투쟁 (260여개 다이묘 번주들이 가세 )
쇼군은 서양의 개항에 저항하며 쇄국 정책을 고수 ( 존왕양이파와 개방파의 싸움 지속)
각 다이묘들은 쇼군의 반대에도 자체적으로 유학생들을 몰래 서양에 보내서 배우게 함
결국 서양의 우수한 군사력으로 피해를 본 후에야 조금씩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
조선소 건설, 군사 훈련, 여러 서양 학문 수입 및 서적의 번역 활발
국제 정세의 변화를 예측하고 기존의 화란어에서(네덜란드어) 영어위주로 국가적으로 변경
1867년 메이지유신의 마지막 전투에서는 국내 하나뿐인 서양 서적을 적군에게 맡기고 장렬히 전사할 정도로 서양 문물을 흡수하는데 전국적으로 하나가 되었음.
결국 신정부 승리로 메이지 유신 (1867~1889년) 박차를 가함.
젊은 유학생들을 두루 기용하고 선진 문물 도입에 부국 강병에 앞장섬. ( 이토 히로부미가 이때 20대)

1850년대 이후 조선

백성들이 기근으로 아사하는데 관리들은 착취
궁전과 왕릉 수리에 세금 수십 만 냥씩 해마다 계속 지출 ( 군량미까지 갹출 )
지방 관리들은 세금으로 백성에게 착취한 식량을 실은 배(조운선)를 의도적으로 침몰시켜 조정에 허위보고함.
조정 신하들은 500만냥 이상 드는 궁전 수리에 온 백성이 나서서 도울 것이라고 아첨 (백성들은 15개월 일하고 1냥 받음 )
매관매직 성행 및 참형등 형사 처벌을 돈으로 회피( 참형은 400냥 교형은 700냥 )
(종이 호랑이) 청나라 칙사 대접에 매년 수십 만양 지출 -> “참으로 예의 바른 나라라고 칭송받음”
<인신무외교> ; ‘조선은 상국 ( 명,청나라 )의 허가를 받아야 외교를 할 수 있다’ 는 조선 지도층의 생각이 수백년간 여전했음.
이미 수백 년 전 망한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를 모시길(만동묘) 지속 (3회/연) 수만 냥 지출
-> 1894년 6월에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함으로서 대보단 제사는 190년 만에 폐지.
1868년에도 청나라 동전(호전,소전) 을 조선에서 같이 사용함.
군사무기는 녹슬어 사용 불가하고 군량미까지 텅비어버림
청나라의 권유로 유학 간소수의 유학생들 귀국후 한지에서 근무하게함. (대원군과 고종이 나라를 말아드심)

 


1884년 갑신 정변은 애국의 충정으로 반란(?)을 일으킨 젊은 양반집 자제들의 혁명 ( 결국 그 집안 가족들은 다 몰살당함 )
이후 현재의 대단한 대한민국을 선물해준 선조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모두 다 정신차리고 잘 가꾸어 봅시다. 우크라이나 이스라엘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부국강병의 중요성을 마음깊이 생각합시다.헬조선 워라벨 따지고 한달 살이 운운하지만 말고 제발 남탓 하지 말고 정신 좀 차립시다. 결혼, 출산, 보육, 행복, 애국, 생존 etc 인류 역사상 한번도 쉬웠던적 없답니다. 단 한번도.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최소한 우리가 선조들에게 받은 것 정도는 물려주도록 합시다.

1869년의 일

미국 대륙간 철도 개통

수에즈 운하 완공

러시아 화학자 멩델레예프가 <주기율표> 발표

영국에서 과학학술지 < 네이쳐>창간

서구는 전세계를 한바퀴 도는 해저 전산망을 설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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