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신드롬>
병원과 과마다 다르지만, 매번 <사망자에 관한 회의(Morbidity and mortality conference, M&M conference)>가 열린다. 바둑으로 치면 복기다. 이를 통해 똑같은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이었는지를 따지며, 다음번에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않는 것이 목표이다. 다만, 결과가 나쁠 때만 열린다는 것이 바둑과의 차이다. 그러다보니 분위기는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매우 나쁘다. 병원에서 죽은 자뿐 아니라, 의료진이 실수를 했을 때도 열린다. 이 회의의 주인공(주로 주치의인 레지던트 아랫년차)이 되면, 거의 울먹일 정도로 공격을 받는다. 분위기는 냉정하다 못해, 한여름에 긴 가운을 입고 있어도 냉기가 시리며 식은땀이 날 정도다.
(아래부터는 온전히 내 상상이며, 허구이다)
“남자, 59세 좌측 경부 1.4cm 열상으로....”
담당 주치의가 이렇게 발표를 한다면, 즉시 듣고 있던 상급 레지던트나 교수가
“경부 어느 레벨이에요? I, II, III? 열상? 자상? 창상? 좌상? 도대체 뭐예요? 그 차이는 알고 말하는 거예요?”
정확한 부위와 명칭을 물어본다. 제대로 대답 못하면, 나중에 목의 레벨이나 열상, 자상, 좌상, 창상의 차이를 리포트로 정리해 오라는 숙제가 주어진다.
“아, level II에서 SCM(SternoCleidoMastoid muscle, 흉쇄유돌근)을 관통하여, internal jugular vein(속목정맥, 내경정맥)이 9mm 파열되어 혈관의 60% 손상....”
이를 가만히 듣고 있을 의사들이 아니다.
“9mm가 직선으로 말이에요, 아니면 혈관 둘레를 뜻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60%는 혈관 직경기준이에요? 아니면 면적 말하는 거예요? 선생님, 우리가 초등학생도 아니고, 직선인지, 둘레인지, 면적인지 확실히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죄송합니다. 9mm 직선 길이의 손상을 입었습니다.”
“다른 부위 손상은 없나요?”
“네, CT상 internal jugular vein(속목정맥, 내경정맥) 외에 carotid artery(경동맥) 및 esophagus(식도), trachea(기도) 손상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CT만 본 거 아니죠? 직접 상처를 벌려가며 일일이 확인했죠? 복부뿐 아니라 목의 창상인 경우 surgical exploration(수술적 탐색)도 해야 하는 것 아시죠?”
“아, 네, 확인하였습니다.”
의국 전반을 담당하는 총무에 해당하는 의국장이 날카롭게 파고든다.
“선생님, 분명히 확인하셨다고 하셨어요. 나중에 안 했는데, 했다고 하면 각오하세요. 제가 차트는 물론이고 간호기록까지 확인해 볼 거예요. 계속하세요.”
이쯤 되면, 길어지는 회의가 못마땅한 수술 좋아하는 성질 급한 노교수가 한 마디 툭 던질 것이다.
“수술해야지.”
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원래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수술이었다. 하지만 의국장은 레지던트 교육까지 맡고 있어 쉽게 넘어갈 수 없다.
“바이탈은요?”
“아, 네, 스테이블(안정적) 했습니다.”
“바이탈을 물었는데, 스테이블(안정적) 했다고 하면 대답이 되나요? 선생님.”
“아, 네. HR(심박수) 70, RR(호흡수) 20, BT(체온) 36.5, BP(혈압) 120/80이었습니다.”
“다행히 심한 출혈시 가장 먼저 상승하는 심박수는 증가 안 했네요. 그래서 수술은 어떻게 됐어요?”
“그게, 저, 보호자분이 강력하게 원해서, S 대학병원으로 전원 보냈습니다.”
“아니, 선생님, 내경정맥이 길이 9mm로 찢어진 환자를 즉시 응급 수술 안 하고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고요?”
날카롭던 의국장의 대답이 아예 하이톤으로 고공으로 향하여, 얼굴이 붉어진다. 반면에 주치의의 목소리는 땅으로 기어들어가고, 얼굴은 검어진다.
“제가 즉시 수술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는데, 보호자 연고지가 서울인 데다, 보호자가 아는 지인이 서울 S 병원에 있는데 그쪽으로 강력하게 보내라고 하는 데다 보호자도 수술을 거부하고 S 병원으로 가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자의퇴원각서까지 쓰고 보냈습니다.”
“전원 도중에 hematoma(혈종)이 차셔서, 기도를 막거나 경동맥을 막아서 갑자기 arrest(심정지) 뜨면, 어떻게 하려고요? 선생님, 아버지라도 그랬을 거예요? 선생님, 우린 의사예요.”
곰곰이 듣고 있던 누군가는 법적 문제를 지적한다.
“선생님, 자의퇴원각서(환자나 보호자가 원해서 퇴원했으며, 이에 대해 의사와 병원은 책임이 없다는 문서) 백날 써 봤자, 법적으로 효과 없는 거 몰라요? 보라매 병원 때, 자의퇴원각서 쓰고 환자 집에 보냈다가 결국 그 의사 살인 방조죄로 처벌받은 거 몰라요?”
쥐구멍조차 없는 하얀 형광등 아래서 혼자 얼굴이 검어진 주치의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한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합니다.”
“아니, 선생님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죠. 만약 다행히가 아니라 불행히 이송 도중에 환자가 사망했으면 어떻게 했을 거예요? 선생님하고 우리 병원이 책임져야 해요.”
“죄송합니다. 보호자도 원하고, 그쪽 담당 병원 의사도 강력하게 보내라고 해서.”
“선생님, 전원 하다가 환자 상태 나빠지면, 보내라고 한 S 병원 선생님 책임 지신 데요?”
“그래도 최대한 빨리 보내기 위해, 헬기로.......”
“선생님, 응급이면 우리 병원에서 수술해야 하고, 응급 아니면 헬기로 보내면 안 되죠. 그 환자 응급이었어요?”
“네, 출혈이 언제든지 악화될 수 있어서,”
“아니,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보호자 설득해서 당장 수술해야죠. 그게 의사 역할 아니에요? 보호자가 뭘 알아요. 응급이면, 모르는 보호자 대신 잘 아는 우리가 최대한 설명하고 설득해서 최선의 결정을 대신 내려줘야 하는게 의사잖아요?”
의국장은 아예 얼굴이 뻘게져 폭발한 지경이다. 조용히 듣고 있던 다른 이가 나선다.
“근데, 그쪽 병원 의사는 누구예요? 직접 통화하셨어요?”
“네, 자기들이 맡겠다고 빨리 보내달라고.”
“근데, 도대체 그 사람 누구예요? 뭐, 의대 교수 가족이래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누군가 질문을 했다.
“아, 유력 정치인이라고 합니다.”
이 말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회의 분위기가 조용해지더니, 의사들이 웅성웅성 거린다.
여기서 지금껏 조용히 듣고만 있던 의사가 처음으로 말을 꺼낸다.
“힘드셨죠? 선생님. 근데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는 게 그 환자도, 우리도, 보호자도, 그쪽 병원도 최선이었을까요?”
그전까지 열심히 주치의를 비난하던 이들 모두 말이 없다. 의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언제나 질병이 아니라 사람이다. A 병원은 지방에 있긴 하지만, 국가에서도 인정받는 최고의 외상센터로 경험도 풍부하여 외상에 관해서는 전원을 요청하는 서울에 있는 S 병원보다 더 나았으면 나았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알리 없는 VIP의 보호자는 일단 서울에 있는 S 병원으로 전원을 요구하는데, 덩달아 지인으로 추정되는 S 병원 의사도 무조건 보내라고 한다. 하지만 전원하는 데만 해도 몇 시간이 걸리고, 언제든지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질 수 있다. 최선의 치료는 즉시 A 병원에서 수술하는 것이다.
“흘러간 일이지만, 저라면 이렇게 했을 거예요. 지인으로 추정되는 S 병원 의사를 가장 먼저 설득시켰을 거예요. 지금 환자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고, 즉시 수술해야 되는 것을요. 같은 의사로 설득하는 거죠. 아니, 처음부터 S 병원 의사에게 환자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혈관 손상이 더 심해져서 즉시 수술하는 게 나으니까 자기 병원으로 오지 말고, 우리 병원에서 수술받는 게 최선이라고 보호자를 설득시켜 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네요. S 병원 의사도 의사니까 지금 상황에서 어떤 것이 의학적으로 최선인지 상식적으로 알 거 아니에요.”
“그래도 S 병원 의사가 계속 보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는 플랜 B로 가는 거죠. 협박하는 겁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녹음된다로 시작해서 분명 우리는 즉시 수술하는 게 안전하다고 거듭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계속 자기 병원에 보내라고 보호자에게 말해서, 보호자가 수술을 거부하고 있으며 전원을 보내달라고 한다. 우리는 계속 응급 수술해야 된다고 설득하겠지만, 보호자가 수술을 거부하고 있고 전원을 보내달라고 하니까, 보호자가 끝까지 전원을 보내달라고 하면 엠뷸런스로 보내주겠다. 다만 헬기는 적응증이 아니니까, 태워줄 수 없다. 당신이 계속 보내라고 해서 수술이 지체되어 잘못되었을 경우에 대한 책임도 모두 당신이 져라. 이정도가 최선 아니었을까요?”
유난히 정치에 관심이 많은 다른 의사가 거들지 모른다.
“안 그래도 그 환자는 지역 의료 살리기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괜히 지방에 있는 우리 병원에서 수술 안 받고 서울에 있는 S 병원 가서 수술받았다고 알려지면, 나중에 지방 의료 살리겠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암도 아니고 당장 급한 응급 상황인데도 서울로 갔다며 욕먹을 수 있다며 보호자를 설득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S 병원 의사는 의학적으로, 보호자는 정치적으로 설득시키는 양면 작전을 구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비난하기 급급했던 M&M conference가 평소와 달리 상당히 건설적이며 희망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만약 우리 병원에서 수술 잘 받고 깨어난 정치인이 수술해주신 교수님과 병원장님 손 잡고 “지금 제 옆에 계신 분들이 최선을 다하여 치료 해 주신 덕분에 제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 이 지역 병원 의료진이 서울만큼 믿을 수 있고 뛰어난 것을 이렇게 멀쩡한 제 몸으로 증명합니다. 여러분, 저와 이 의료진을 믿고 많이 이용해 주십시오. 제가 제 목숨을 살려주신 이 분들에게 은혜를 갚는 심정으로 이 병원과 지방 의료를 지키고 살리겠습니다.
또한 중환자실에 오랫동안 누워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사를 넘나드는 이번 일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저는 저를 해치려 한 이를 용서하고 우리 한국을 증오와 분노를 넘어 화합과 융합의 정치로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했다면, 우리 병원도 그 병원도 그 환자와 가족 모두 서로 윈윈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끝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던 주임 교수가 비통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안타깝게도 모두 다 지나간 일입니다.”
그 말에 뜨거웠던 분위기는 또 다시 가라앉았다. 덩치가 큰데다 수염도 많아 해리포터에 나오는 해그리드라는 별명이 붙은 주임 교수는 잠시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미 헬기를 보내줬네 마네, 특혜네 아니네, 우리 병원이 살력이 없네, 우리 병원이 잘못했네, 그 병원이 잘못했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모두 주임 교수인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고개를 들고 두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번 주제는 경부 외상이 아니라, VIP 신드롬(환자가 매우 중요한 사람이어서 각별히 잘 봐주려고 할수록 오히려 예후가 좋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번이 제가 주체하는 마지막 회의가 될 것 같으니, 저를 잊으시더라도 이 말만은 기억해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라 의사입니다. VIP든, 범죄자든 똑같이 최선의 치료를 하고, 또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VIP 신드롬으로 빠져 환자에게 최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헬기를 불러 보호자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명백히 제 과실입니다. 다음부터는 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VIP 신드롬으로 저처럼 병원도 의사도 환자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없도록 하시길 당부드립니다. 이상으로 회의를 마칩니다."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와 함께 마지막이라는 주임 교수의 말에 회의장이 숙연해졌다. 이번 일에 어리석은 이는 비난만하고, 비겁한 자는 다른 이를 탓하다 끝날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이는 반성하고 성찰하며 소중한 교훈을 얻어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것이다.
- 페친 글-
PS) 이글로 인해서 협박까지 받고 있어서 가족들 사진을 SNS 에서 내렸다니
대한민국도 참 미개하다. 국평오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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