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55]
라스베이거스를 만든 벅시·커코리언·애덜슨
우리는 일자리가 감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로봇 등 산업 자동화와 비약적으로 발전 중인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이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빼앗아 갈 전망이다. 이에 대처할 고용 창출 계수가 높은 서비스산업 특히 관광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팬데믹이 잦아들면서 관광이 재개되고 있다. 관광산업은 천혜의 환경 또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이 있어야 꽃을 피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막 위에 건설된 라스베이거스나 습지 위에 세워진 올랜도 디즈니월드를 보라. 이들은 관광산업을 진흥하는 데 인간의 창의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를 증명해 낸 게 유대인들이다.
1946년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 최초의 현대식 카지노 호텔 ‘플라밍고’를 건설한 ‘벅시 시겔’이 유대인이다. 19세기 미국의 마피아는 유대인과 아일랜드파가 주도했다. 그 뒤 이탈리아 마피아가 가세했다. 1930년대 뉴욕 암흑가를 지배하던 유대인 마피아는 서부 장악을 위해 벅시를 LA에 파견하게 된다. 벅시는 1940년 협의차 뉴욕으로 가던 중 사막지대 작은 은광촌 라스베이거스에 들렀다. 광부들을 위한 선술집들과 작은 호텔 2개가 있었다. 당시 라스베이거스 인구는 8000명 남짓이었다. 이때 그는 라스베이거스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렸다. 이 사막 한복판에 현대식 카지노 호텔을 세우면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큰 사업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사막을 통과하는 차량이 많아 사막의 오아시스 개념이었다. 그는 이 계획에 회의적이던 조직 수뇌부를 설득해 600만 달러를 빌려 플라밍고 호텔을 건설했다. 그런데 개장 후 예상보다 손님이 없었다. 1947년 7월 벅시는 베벌리힐스 저택에서 수십 발의 총격을 받고 즉사했다. 뉴욕 마피아가 그를 살해했다는 소문이었다. 훗날 유대인 영화감독 배리 레빈슨은 그의 일대기로 1991년 ‘벅시’란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사후 벅시의 예견대로 사막의 은광촌이 천지개벽하여 카지노와 컨벤션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뒤 오늘날의 라스베이거스를 만든 사람은 아르메니아계 유대인 커크 커코리언이다. 그는 1947년 LA에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6만 달러짜리 비행기를 구입해 항공사를 설립했다. 그는 융자를 얻어 비행 연료와 퇴역 폭격기 등에 투자하여 큰돈을 벌었고 1962년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거리 토지 80에이커를 96만 달러에 매입했다. 이 거리에 로마제국의 상징 시저스 팰리스 호텔이 들어섰다. 손님을 로마 황제처럼 모시겠다는 뜻이다. 그 뒤 라스베이거스 호텔은 특정 테마를 주제로 건설되었다. 그는 벅시가 세운 플라밍고 호텔을 1250만 달러에 인수해 운영하다 1969년 힐튼호텔 체인에 6000만 달러에 팔아 그 돈으로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인터내셔널 호텔을 건설했다.
그는 호텔 개장 초기에 손님을 끌기 위해 빅쇼를 도입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유대인 여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영입해 매일 공연을 벌였다. 하루에 4200명의 손님이 공연을 보기 위해 한 달 내내 몰렸다. 이것이 라스베이거스 쇼의 효시이다. 호텔이 자리 잡자 곧바로 힐튼호텔 체인에 1억 달러를 받고 팔았다. 그는 1968년 항공사를 팔아 MGM 영화사 지분 40%를 사들인 뒤 연면적이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능가하는 MGM호텔을 건설했다. 그 뒤 1981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를 3억8000만 달러에 사들여 5년 뒤 이탈리아계 회사에 13억 달러에 팔았다. 같은 해 MGM호텔을 발리 그룹에 6억 달러에 매각했다. 그 뒤에도 그는 호텔들을 잇달아 건설했다. 벨라지오, MGM 그랜드 리조트 컴플렉스, 뉴욕 뉴욕, 서커스 서커스, 룩소르, 엑스칼리버, 트레저아일랜드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오늘날의 라스베이거스는 그에 의해 탄생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 뒤 라스베이거스를 카지노 도시에서 전시컨벤션 도시로 바꾼 유대인이 셸던 애덜슨이다. 그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로 유명한 ‘컴덱스(COMDEX)쇼’를 1979년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호텔(현 발리호텔)에서 처음 개최했다. 전시회는 뉴욕이나 시카고에서 열린다는 통념을 깬 유쾌한 전시회였다. 당시 그는 제곱 피트(약 930㎠)당 대관료로 15센트를 내고 전시업체로부터는 50달러를 받아 고수익 비즈니스를 창출했다. 컴덱스쇼는 이후 미국 내 다른 도시와 유럽, 일본에서도 개최됐다. 애덜슨은 컴덱스쇼를 1995년 일본의 소프트뱅크에 8억6000만 달러에 매각했다.
애덜슨의 업적은 복합리조트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해 라스베이거스를 ‘마이스 산업’ 중심지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마이스(MICE)는 ‘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s), 컨벤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의 머리글자를 따 이름 지어졌다. 그리고 복합리조트란 호텔과 전시장뿐 아니라 대규모 쇼핑몰과 극장·박물관·카지노는 물론 테마파크까지 갖춘 종합 비즈니스·레저 타운이다. 한마디로 모든 걸 한곳에 모아 놓아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개념이다. 복합리조트들 덕분에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박람회인 CES 등 매년 50개 대형 전시회와 2만 건 내외의 사업 미팅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십만 명의 고용 창출과 내수 진작 효과가 입증되면서 ‘21세기 굴뚝 없는 황금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오늘날의 라스베이거스를 만든 유대인들이 벅시 시겔, 커크 커코리언, 셸던 애덜슨이다.
이후 애덜슨은 해외로 눈을 돌려 2004년 5월 마카오에 샌즈 카지노를 개설했다. 투자금을 불과 10개월 만에 회수하여 ‘샌즈 효과’라는 신조어를 남겼다. 이어 2007년 샌즈 호텔 투자금의 10배에 달하는 23억 달러를 들여 세운 세계 최대 복합리조트 ‘베네치안 마카오 리조트’를 오픈하여 일주일 만에 50만 명을 끌어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2009년 말까지 130억 달러의 자금을 쏟아 부었고 마카오는 세계 최대 카지노와 마이스 산업 중심지가 되어 라스베이거스를 추월했다.
애덜슨은 싱가포르에도 진출했다. 싱가포르는 1997년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겪으며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했다. 제조업과 병행해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기로 했다. 특히 일자리 창출과 내수 진작 효과가 큰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2005년 복합리조트를 건설하기로 했다.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카지노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소신을 접었다. 세상이 변해 복합리조트가 없으면 관광산업과 마이스 산업을 성장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치열한 토론 끝에 야당도 결국 동의했다. 그 뒤 싱가포르는 2010년 두 개의 대형 복합리조트를 개장했다. 마리나베이 샌즈는 한국의 쌍용건설이 시공을 맡아 완공한 복합리조트로 옥상의 축구장 4배 크기 수영장은 세계적인 명소로 떠올라 하루 방문객이 최대 15만 명에 이른다. 센토사섬에 지은 ‘리조트월드 센토사’ 복합리조트는 호텔 6개와 유명 테마파크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유치해 개장 첫해인 2010년 43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후 관광객 수는 20.2% 늘어났다. 당시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도 싱가포르 경제 성장률은 14.5%를 기록했고, 세수도 7.75% 증가했다.
한국에서 피지 못한 애덜슨의 꿈
애덜슨은 2009년 마리나베이 샌즈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마카오와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의 세 번째 투자처로 보고 있다”면서 “특히 서울이나 영종도가 복합리조트 위치로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카지노를 갖춘 대형 리조트가 25~30개 됩니다. 경쟁이 아주 심하죠. 하지만 아시아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합니다. 마카오에도 도박장이 많이 있습니다만, 우리 건물에는 대규모 컨벤션 시설과 각종 전시를 위한 쇼룸과 350개의 상점, 30개의 레스토랑, 의료 관광을 위한 병원이 있지요. 이런 복합리조트는 마카오에서 우리가 유일합니다. 카지노는 전체의 4% 미만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런 모델을 통해 라스베이거스를 바꿨고, 지금은 싱가포르를 바꾸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서울·인천·부산을 바꾸고 싶습니다.” 그는 중국 부(富)의 60%가 모여 있는 중국 동부 연안을 마주한 한반도 서해안에 마카오를 능가하는 새로운 꿈의 도시를 그리고 있었다. 비행기로 3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구매력 있는 도시 숫자는 영종도가 마카오나 싱가포르보다 훨씬 더 많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몰려 있고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만 51개가 있다. 최적의 입지인 셈이다. 애덜슨은 그의 마지막 꿈을 펼치지 못하고 2021년 초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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