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3째 숙부님이 돌아가셨다. 몇 년 동안 뇌종양으로 삼성의료원에서 치료 받으시면서 고생하시다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새로 생긴
요양원은 비교적 시설도 좋아 가족들도 만족 스러웠는데 막판에 메르스 여파로 가족 친지들이 병문안 가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돌아가셨다. ( 메르스 여파로 병원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달 간 면회를 완전 금지시켰었다.) 진료중에 외동딸인 내 사촌이 전화를
했다. 목소리는 담담했다. “ 오빠 오늘 아빠가 돌아가셨어” 하긴 그 동안 고생을 너무 하셔서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2년간) 이제는 편히 떠나셔야 할 때가 지났으니 가족들도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그렇게 보고 싶어하시던 손주도 보셨는데 더 이상 고통 속에서 계속 이승에 계실
미련은 없으실거다. 작년 내 아버지의 경우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1973년 가을 내가 가족과 함께 일본에서 김포 공항으로 귀국할 때 어린마음에도 (초등3학년) 마중 나온 친척분들 중에 유독 3째 숙부님 얼굴이 기억난다. 할머니께 달려가라고 어머니가 떠밀어서 로비에서 뛰어가는데 옆에 키 크고 얼굴이 이상하게(?) 생긴 어른이 서있었다. 어릴때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후유증 자국이 심해서 그 당시도 신기해서 쳐다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그분은 사춘기도 아주 힘들게 보내셨다 한다.당연히 이해될만한 상황이다.)
3째 숙부님은 우리가 귀국후 여의도로 이사할때 도와주고 저녁에 나를(아마 우리 3형제들일듯) 중국집으로 대리고 가셨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장면을 먹으면서 세상이 이렇게 맛좋은 음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탄에 감탄을 했었다.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참 개발중이던 서울 강남 영동지역에서 가구점을 운영하시면서 잘 되신다는 소문을 듣던 차에 한번 놀러갔다가 그 가게 앞에서
파는 호떡 장수에게 배터지게 사 먹었던 기억도 참 좋았다. 우리 삼형제는 신나게 웃으면서 구석에 앉아 많이도 먹었고 그 이후로 호떡 생각이 딱 없어져 버렸다.
(중앙의 의자에 앉아서 다가가는 나를 반갑게 웃으면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아직도 생생하다.)
결혼 8년만에 임신이 되어 기쁜 마음에 큰 형인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와 아버지가 많이 축하해주시면서 ‘ 넌 뭐든 다 잘 될거야’ 라고 응원해주시던 순간도 기억된다. 아버지는 6남1년의 장남으로서 참 많은 관심과 정성을 쏟으셨었다. ‘둘째도 빨리 갖어라’ 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쑥스러운 사춘기 마음에 아버지가 술드셨었다고 생각해었다. 그렇게 태어난 정은이를 보면서 나는 참 신기해했고 이뻐하면서 기저귀도 많이 갈아줬다. 대소변이 더럽지도 않았다. 사춘기 중학생 눈앞의 보이는 아기는 참으로 신비롭고 귀여웠다. (그 이쁘던 아기가 지금의 한 아이의 엄마이면서 대기업의 과장으로 수많은 부하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다.)
3째 숙부님은 1980년도 초반 구강암이 걸리시면서 수술후 방사선과 항암치료로 고생많이 하시다 서울대학병원에서도 포기하고 퇴원을 종용받으셨다. 결국 숙모님 따라 기도원으로 들어가셨다. 덧없는 고통속에서 수많은 나날이 지나는데 어느 날 꿈에 흰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봤고 꿈속에서도 목이 아파 말씀을 못하고 그 사람의 옷을 잡았는데 순간 온몸이 전율이 일어나면서 깨어나셨다 한다. 그런데 그때부터 입안에 있는 종양은 크기가 작아지면서 증상이 호전되고 결국 서울대 병원에서 기적의 완치라는 진단을 받았다. 지금도 신기할 따름이다. 천연두 후유증으로 사춘기를 불행하게 보내다 일찍 세상 떠나는 동생이 불쌍하다고 우셨던 둘째 숙부님은 오히려 그 다음해 백혈병으로 진단 4개월만에 돌아가셨다. 1983년의 일이다.
30여년이 흘러 2012년 어느날 셋째 숙부님을 내 병원에 오셔서 자꾸 몸이 기운다 하셨다. 과거에도 자주 그런 말씀 하시고 2010년에도 산에서 넘어져서 허리 골절 되셨던 분이라 그냥 기력이 없으신 것으로 생각했다. 과거의 암투병으로 건강염려증이 조금 있으셔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주 건실하게 사셨지만 조금 예민하긴 하셨다. 그런데 조금 행동과 말투가 어눌해지시는 듯해서 파킨슨병을 의심하고 대학병원 신경과로
의뢰드리려는데 혹시 몰라서 동네 방사선과에서 머리 CT를 찍으니 뇌종양 소견이 나왔다. 그때부터 수많은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고 결국
어제 고통없는 천국으로 승천하셨다. 참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거의 항암치료 중단하고 종창역을 향해 달리신지 2년여만이다.
누구나 각자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가치 있는 수많은 사연들을 쏟아낼 것이나 결국 세월의 흐름에 따라 후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미련없이 떠나는 것이 삶일 것이다.
아버지가 그러셨고 어머니도 그럴 것이니 나 또한 그럴 것이다. 점점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니 현재의 사소한 삶이 더욱 가치있게 느껴진다. 이래서 나이 들면 좋은가 보다. 나는 지금이 좋다. 그래 좋을 때 만끽하자.
나의 숙부님께 정성을 다해 명복을 빌어드린다.
( 수많은 영혼들의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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