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연습
가을이 깊어가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 들어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꾸 생각난다. “열심히 다 이루고 모든 것을 다 갖추어 이제 좀 인생을 즐기고 있었는데 벌써 떠난다니 이게 뭐냐?”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으시고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항상 건강관리 잘 하셨고 이번에도 소화불량으로 잠시 치료할 생각으로 일본 골프 여행 다녀오셔서 입원 하셨는데 이런 황당한 진단을 받으셨다. 7개월 전 종합병원 건강검진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는데 말이다. (신장 기능이 조금 안 좋아 조영제를 사용하여 복부CT를 검사 못한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전혀 분노를 표현 안하시고 인내심 속에서 품위 있게 삶을 정리하셨다. “ 내 인생 후회 없다.” 하시면서 오히려 남은 가족을 걱정하셨다. 나는 못할 위대한 정신력을 우리 가족들에게 보여주셨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삶을 정리해야 하는 아버지를 뵈면서 삶의 허무함을 매일 아침 뵐 때 마다 뼈져리게 느꼈다. ‘봄꽃이 이렇게 예쁜지 처음 알았다‘고 하셨던 말씀을 생각하면서 올해 봄에는 매일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여전히 꽃은 작년과 같이 화사하고 예뻤으며 보란 듯이 확실하게 시절 인연 따라 사라졌다.
’인생은 죽을 뜬 자욱과 같다’는 말씀대로 떠난 분들은 천국 가시고 남은 세상은 변함이 없이 그저 반복 속에서 흐르고 또 흘러갈 뿐이었다.
나의 모교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구, 우석대학교) 건물이 본교인 안암동과 떨어져서 종로구 혜화동에 있었는데 나름 유명한 건축가 고 김수근 씨의 작품이었다. 의과대학이 안암동으로 이전하면서 건설 회사에 학교 부지가 팔려서 모든 건물이 다 헐리게 되었다(1990년). 그런 소식을
듣고도 다시 교정을 찾아가보지 않을 만큼 허름한 학교 건물에 미련이 전혀 없었다.
내가 본과 학생시절인 1980년도 중반에 미국에서 의사하시는 선배님들 가족이 홈커밍 데이 행사로 학교를 방문했다. 1960년대 의대를 나와
미국으로 유학가서 의사로 성공하신 분들이다. 본인들이 앉아서 수업을 받았던 의자를 자녀들에게 설명해주면서 친구들과 추억에 잠겨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 우리는 형편없이 낙후된 의대시설에 불만을 많이 갖고 있어서 그런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의대건물 내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있어서 궁금해 물었더니 ‘1930년도 배경으로 병원 장면을 찍을 곳이 이곳 밖에 없다’ 해서
동기들하고 씁쓸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나는 줄곧 라지에이터로 난방이 되는 여의도 초중고학교를 다녔는데 대학에 와서야 석유난로로 난방하는 이상한(?) 학교를 1983년에 입학했으니 황당할 뿐이었다. 처음부터 학교에 대한 정이 없었다. 일제 시대의 보전(보성전문대)로고가 확연히 찍혀있는 본교의 강당의자에 앉으면 그나마 기품이 있었지만 혜화동에 있는 의과대학에는 도저히 정이 가질 않았다. 의대의 이런 상황을 미리 알았으면 입학 원서도 안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1학년 때부터 (민주화 투쟁하는 것 아니고) 산에 빠져서 암벽과 등산에 심취하면서 학교 밖으로만 맴 돌지 않았나 싶다. 결국 성적으로 부모님 맘고생 시켜드린 것이 죄송할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 학교의 사진을 남기지 못 한 것이 너무 안타깝다. 있는 것이라고는 전국의 산과 암벽을 오르던 사진 들 뿐이다. 그래도 나를 의사로 만들어준 학교이고 내 청춘이 물들어있는 정든 교정이었는데 그 기록이 없다. 그렇게 싫던 학교 교정이 지금은 그립고 보고 싶다. 삐꺽 거리는 나무 바닥 교실과 남량물에 나올 것 같은 도서관하며 미로 같은 복도 앙증맞은 등나무 교실과 그 앞의 허름한 식당 등 사진으로 남겨놓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는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귀한 줄 몰랐다. (하긴 그걸 알았으면 청춘이 아니라 애 늙은이 겠지)
< 1972년, 1983년, 2015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그런 내가 요즘 사소한 이별 연습을 하고 있다. 모든 이별이라는 것이 이렇게 갑자기 시작되면서 또한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곧 잊혀 질 것이다. 15년 단골 헬스장이 4월3일자로 폐업하게 되었다. 최소 주5 회는 운동으로 땀을 빼고 하루의 노고를 풀던 곳이었다. 모든 스트레스를 땀으로 승화 시키고 정신 건강을 유지하면서 사방의 거울에 비춰진 숏 다리 체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벽에 걸린 멋진 체격의 사진들이 나 인양 착각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곳이었다.
직장과 집의 중간 위치라서 퇴근하면서 편하게 들렸는데 이제는 없어진다니 많이 아쉽다. 그동안 이래저래 스포츠 센터에 대한 불평이 있었는데 한순간에 다 없어지고 그저 떠나는 애인의 뒷모습을 보듯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전문의를 따고 전임의까지 마친 후 종합병원에 취직하면서 조금 삶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할 때인 2000년에 가입했다. 하루 5000원이하의 낮은 이용료로 헬스 골프 수영 싸우나 등을 골고루 하면서 건강을 다졌다. 최근에는 장기 부부회원의 혜택으로 하루 이용료가 3000원꼴이 될 정도로 많이 저렴해지기 까지 했다.
사실 비용이 저렴한 만큼 시설이 부족하고 문제점도 많았다. 기껏 시간을 내서 퇴근후에 가면 시도 때도 없이 헬스장을 쉼터삼아 사는 동네 아줌마들 부대 때문에 운동 기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 되었었다. 물론 각자의 권리지만 그래도 어렵게 시간 내서 오는 직장인들을 위해 저녁시간에는 자리 좀 양보하는 예의가 있으면 좋은데 낮 시간 내내 왔다가 저녁 먹고 또 와서는 귀에 이어폰을 꼽고 드라마를 본다. 운동하기 위해 러닝머신 뒤에 기다리는 직장인들을 무시하고 하염없이 TV 삼매경에 빠져 그저 걷기만 한다. 한 시간 지나면 눈치 보일만 한데 대기하는 사람 신경 안 쓰고 그냥 다시 한 시간 reset 이다. 그럴 때 마다 좀 더 우아하고 세련된 다른 고급 센터로 가고 싶었지만 모든 여건상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다닌 지가 15년이 넘었다.
토요일에 술로 무리해서 다음날 정신 못 차릴 때면 집에서 늦잠 자는 것이 눈치 보여 이곳 수면 방에서 자곤 했고 수영을 하고 싶으면 출렁이는 배를 가리면서 잠깐씩 들어가 보기도 했다. ( 50m 수영 후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데 계속 옆에서 편하게 수영하는 연장자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기도 했다.) 멋진 몸매의 아가씨를 힐끗 쳐다보면서 운동하면 똥배에 힘이 들어가 지치지도 않고 효과가 좋아 기분이 up 되기도 했다. 땀이 흐르는 안경 너머로 보이는 여신들의 몸매는 하늘이 내려준 귀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지금까지 내 기억에 너무 멋진 아가씨가 2명이 있었는데 보는 것 만으로도 참 기분이 좋았다. 그 여성들의 남편(애인)은 참 복 받은 분들이다.
남자 역시 지금까지 목욕탕에서 본 사람 중에 중년 2~3명의 몸매는 환상적으로 멋졌다. 앉아 있는데도 나처럼 배에 호박 덩어리가 생기지 않고 여러 겹의 얇은 주름만 생기는 신기한 중년들이었다. 존경심으로 방법을 물어보면 헬스의 기본이 10년이고 저녁6시 이후에는 모든 모임을 갖지 않는다니 아무나 할 수 없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인 것 같다.
또한 목욕하다보면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확인하는 남자의 자존심이 있는데 그 크기에 경외감을 느낄만한 사람들도 몇 명 기억된다. (키와 전혀 상관없다.ㅎㅎㅎ)
막상 이곳을 떠나려니 정이 많이 붙었는지 그동안 불평했던 여러 사항들이 너무나 사소해진다. 항상 같이 있을 것으로 믿고 귀한 줄도 몰랐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난다니 많이 아쉽다. 내 인생 중에 15년이나 겹친 곳인데 말이다. 나의 세 아이들이 다 수영을 배운 곳이며 싸우나에서 아줌마들의 입담 학회(?)에 수없이 참가하면서 많은 잡학다식한(학원정보, 인생정보, 건강 민간요법, 유명인 야사 등등) 세상사를 아내는 배웠다. 내게는 마라톤을 가르쳐준 곳이기도 하다. 풀코스 5회 완주의 추억은 너무나 값지다. (철인 3종을 위해 수영 연습을 하던 중이었는데 한번 기회를 놓치니 지금까지 한가한 연습만 반복 하고있다.) 운동 중 갑자기 하늘이 보고 싶으면 운동복 입은 체로 가까운 양재천으로 나가서 바람을 맞으면서 한강변을 벗 삼아 한 참 뛰고 들어와 젖은 온 몸을 목욕탕에서 시원하게 풀 곤 했다. 그런 모든 것이 곧 자취 없이 사라진다. 대기업에서 하는 예식장과 뷔페가 생긴다니 곧 기억속에서도 없어지겠지.
그래 그동안 고마웠다. 그 곳을 통해 인연이 된 수많은 회원 분들 비록 서로 인사를 살갑게 나누지는 않았지만 기억 속에 한동안 남을 분들이다. 그곳에서 갑자기 만난 내 병원 환자들도 못 알아봐서 죄송할 뿐이지만 솔직히 요즘은 사람 얼굴이 잘 기억 안 난다. (오히려 전공 따라서 그 환자의 얼굴 보다 X-ray film을 봐야 잘 생각이 난다.)
하여간 모두들 어디서든지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만남과 이별은 반복되어간다. 누구나 그랬듯이 종점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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