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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야기

소아과 응급실의 하루

이런 날 글 쓰면 꼭 폭주하게 되던데.
그리고 맨날 똑같은 소리라 죄송하지만
그래도 이 곳은 마음을 알아주실 분들이 많이 계시니
그냥 씁니다...
-
당직 중입니다.
오늘은 바쁜 날이었어요.
해결 안 되는 환자가 많았고
이미 나쁜 상태로 왔거나 빠르게 나빠지는 환자가 많았고
그런 환자들이 계속 동시에 왔고
소아과는 더 이상 입원이 안 된다고 했고
주변에는 전원 보낼 병원이 없었습니다.
계속 걸려오는 전원문의 전화에서는
너희라도 받아야지 안 받으면 어떻게 하냐
환자는 이미 출발했다
이제는 대 놓고 명령하듯 온갖 곳에서 환자를 보내고
119 대원들도, 입원 안되는 건 알지만
다른 병원도 어차피 다 못 받는다고 해서
일단 여기는 소아 진료가 되긴 하니 데려왔다고.
그렇게 쌓여가는 환자들이 열 스물 서른.
(소아 중환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못 되니
데리고 있을 수도 없는 그 병원들이나 119의 입장은
물론 잘 압니다)
보건소 3곳
아동병원 12곳
대학병원 7군데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환자가 바뀔 때마다
또 병원을 바꿔가며 전화했어요.
전화하고, 부탁하고, 윽박지르고, 읍소하고,
거의 울고, 협박하고, 빌고, 사정해가며
병실을 만들고 전원을 보냈습니다.
왜 내가 지금 몇 사람 몇 병원에
이렇게까지 굽신굽신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있어야 하나 착찹하던 차에
우리 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는
풀베드라 더 이상 입원이 어렵다
현재 맨파워로는 추가 병상 감당이 안 된다 했지만
보낼 수 없는 환자들은 계속 생기게 마련이고
생후 1개월에 폐렴에 호흡곤란에 집도 먼 아기를
또 헤메라 할 수는 없어서 소아과에 다시 얘기 해
병실을 어렵게 잡았습니다.
소아청소년과 교수님들도 어려운 상황에
굳이 자리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애 써 주셨어요.
그런데 보호자가 이럴거면 왜 입원 안 된다고 했냐
가만 안 두려고 했다 화를 버럭 내는 순간
현타가 옵니다.
뭘 더 어쩌라고.
니 새끼 좀 안전하고 편하게 치료받으라고
내가 지금 전화를 몇 통을 했는데.
나는 진심으로 걱정이 됐고
그냥 당연한 내 일이니 했고
그걸 딱히 내세울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반응은 너무하잖아.
친구들이 묻습니다.
너 왜 아직도 거기 있니.
많이들 묻습니다.
너 언제까지 거기 있을건데.
퇴근길마다 눈물이 나는데
이런 제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고 한심해 보입니다.
나 다른 거 해도 이거보단 즐겁고 행복할 것 같은데.
아이 우는 게 두렵다고 느껴진 건
소아청소년과 의사 생활 15년만에 처음이었어요.
그래도 다들 그러겠죠.
돈을 다른 과보다 덜 버니까 그만 둔 거 아니냐고.
너희에게 무슨 사명감이 있냐고.
폭주하지 않으려고 존대말로 쓰긴 하는데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고
이걸 지금 왜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들이 정말 그만 두면 안 되냐고 합니다.
좋아하는 일인 거 알겠고,
평일에 애들 보겠다고 굳이 거기 있는 거 알겠는데,
그러다 사고 나면 정말로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하냐고.
또 눈물이 납니다.
세상에는 돈 말고도 다른 수 많은 이유로
일을 하고 사람을 돌보고 아이들을 애정하는
정말 많은 의사들이 이미 있어요.
그게 그렇게 믿기 어려운 일인가요.

- 페친 Allison 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