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로그
최근 아버지 산소에서 두 번째 가을을 보고 왔다. 세월 참 빠르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삶을 꾸려간다. 떠난 분은 또 그곳에서 그렇게 적응하시겠지. 그렇게 시간을 흘러가지 모든 것은 다 결국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 했나보다.
주위 친구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나는 부모님에게 받은 물질적 정신적 혜택이 대단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그것을 그때 알면 청소년이 아니지.) 다들 그런 줄 알았으니까. 부모님의 그 정도 정성이면 사실 나는 하바드 대학에 갔어야했다. (초등학교 때 여성 월간지 기자가 와서 각 학년마다 잘 만든 도시락을 선택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우리 삼형제 것이 다 학년 대표로 뽑혔었다.)
대학 졸업할 때 까지 그 정성에 보답해드리지 못한 것이 항상 죄송했다. (다른 친구들은 겸손이라고 이해 못해도 내 의대 졸업 동기들은 충분히 이해할거다.ㅠㅠ)
( 1970년대 초 일본에서의 생활 )
졸업 후 결혼하고 가능한 최선을 다해 나름의 회복을 하였지만 여전히 모자랐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다 이정도가 내 달란트고
모든 것이 내리 사랑인 것을...그렇게 알고 요즘은 최대한의 노력으로 내리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feedback은 바라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결국 나도 별로 해드린것이 없었으니까.
아버지 병간호를 할 때 병실에서 내게 건강 챙기라고 하신 말씀이 요즘 생각난다. 항상 하시는 평범한 말씀이라 그땐 그냥 흘려들었는데 이상하게 요즘 다시 생각난다. 그 속에는 많은 뜻이 있었을 것이다.
‘정신건강을 위해 책도 보고’, ‘몸을 위해 술 담배 적당히 하고’, ‘직장 생활 열심히 해서 빨리 빚 청산하고’, ‘너무 봉사활동 한다고 병원 자주 비우지 말고’, ‘금전 관계 확실히 해서 친구에게 사기 당하지 말고’, ‘보증 절대 서지 말고’, ‘가족들 신경도 좀 쓰고’ 등등 그동안 수없이 들어온 충고들의 함축적인 말씀이 결국 유언이 되었다.
갑자기 간성 혼수가 오셔서 가족들과 작별인사 말씀도 못하셨다. 자녀들에게도 남기고 싶음 말씀 많으셨을텐데 말이다.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그때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몇 번 말씀 드린 것이 그나마 내겐 위안이다. 평생 한 것보다 많이 해드렸으니까.
감사하다는 말씀 이외에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린 기억이 별로 없었다. ( 그런데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지금도 꽤 듣고 있다. 세월의 달라진 유행에 감사할 뿐이다. )
담배는 어느정도 끊었다. (1년은 되었으니까 이렇게 말해도 되겠지.) 그런데 술은 아직 끊지 못했다. 사실 끊을 생각도 없다. 병원 생활하면서 기껏 한 달에 한 두 번 친구 만나 마시는데 ( 그것도 직장 마치고 8시 이후에나 ) 그것까지 안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주말에 골프치러 자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술까지 안 먹으면 삶의 낙이 없다. (골프는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들면서도 운동이 안 된다.) 책도 나름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사서 읽고 마라톤은 풀코스 5회 완주 했으니 이제는 철인 3종으로 바꿔서 천천히 준비하고 있다. 이정도면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이정도면 죄송스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 골절의 회복 )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술 맛이 없어졌다. 술 맛이 없으니 빨리 먹고 금방 취한다. 술자리의 재미가 없다. 아버지가 술맛을 없애 버리셨나 보다.
아무래도 잠시라도 금주를 해야할 것 같다. 그래야 아버지도 좋아하시고 내게서 뺏어가신 술맛을 되돌려주실 것 같다.
항상 말씀하시듯 너무 매정한 사람이 되면 안되니 그냥 99% 정도 선에서 금주를 3년간 한시적으로 해야겠다. 그럼 다시 맛난 술을 마실 수 있겠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주신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도 내 건강 챙겨주시네. 감사합니다.
작은 곳에서도 기본을 잃지 않고 자존감이 강하면서도 정이 넘치는 그런 인간이 되어야겠다.
심야 식당의 마스타상 처럼. 그리고 보니 아버지가 마스타상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