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조선 왕조
1392년~1910년 ( 27대 519년 )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며 건국한 조선은 1910년 순종을 마지막으로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9년간 존속되었다. 조선은 왕과 양반 관료를 중심으로 성리학에서 말하는 유교적 민본주의를 통치이념으로 삼아 정국을 이끌어나갔다. 조선은 관리의 등용에 있어 능력을 중시하였고, 삼사를 두어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농업생산력이 증대되고 중인과 서민층에게도 문화의 폭이 확대되는 등 전조의 고려에 비하여 한 단계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며 근세사회로 발전할 수 있었다.
고려 말 우군도통사로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뒤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 세력과 손을 잡고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이성계는 1392년 공양왕을 양위시키면서 스스로 조선 왕조의 태조가 되었다. 그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도성을 쌓고 도로와 관청, 시장, 학교 등을 건설하며 새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통하여 왕위에 오른 3대 태종은 사병제도를 혁파하고 의정부(議政府)와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를 설치하는 등 관제개혁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는데 힘썼다. 의금부를 설치하여 법사제도를 정비하였으며, 사간원을 독립시켜 대신들을 견제하기도 했다. 또한 억불숭유 정책을 강화하여 전국의 사찰을 정리하였으며 호패법을 통해 인구를 정확하게 파악하였고, 북방의 여진족을 물리쳐 국경을 튼튼히 하기도 했다.
국가의 기틀을 안팎으로 다진 태종대의 노력으로
4대 세종은 젊은 학자들을 등용하여 유교정치를 구현할 수 있었다. 세종은 정책 연구 기관인 집현전을 두어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와 달력을 제작하고 아악을 정리하는 등 조선의 독립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세종 시대에는 잘 알려진 황희나 맹사성과 같은 훌륭한 재상을 등용하여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루었으며, 백성을 위한 민본정치가 꽃을 피웠다. 국방에 있어서도 김종서의 4군 6진 개척으로 인해 국토가 확장되는 등 다방면에 있어 훌륭한 치적을 쌓았다. 이후 20년간 세자로서 세종을 보필했던
5대 문종이 일찍 사망하고 뒤이어 어린 6대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 청령포에서 사사당함)
7대 세조는 계유정난을 통해 왕권을 장악했다. 세조는 의정부의 정책결정권을 폐지하여 재상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과전법을 폐하고 직전법을 실시하고 중앙군 제도를 개편하는 등 중앙집권체제 강화에 힘썼다.
8대 예종
9대 성종은 세종과 세조의 치적을 기반 삼아 문물제도의 정비를 완비함과 동시에 경국대전을 편찬하여 통치의 기본 이념과 방향을 법제화하였다. 또한 세종 때의 집현전에 해당하는 홍문관을 설치하고, 사림파를 등용하여 훈구파를 견제하기도 했다. 이후 즉위한
10대 연산군은 두 차례의 사화를 일으키고 폭정을 일삼다 중종반정으로 폐왕이 되었다.
11대 중종과 12대 인종, 13대 명종
14대 왕 선조 때에는 당파싸움의 혼란을 겪는 동시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발발로 어려움을 겪었다. 선조 임금이 의주까지 피난하는 등 수세에 몰렸었으나,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과 이순신의 뛰어난활약으로 일본을 물리친 조선은
15대 광해군에 이르러 전후 복구사업에 힘썼다.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쳤던 광해군이었지만 인조반정으로 유배되었고,
16대 인조는 병자호란으로 인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가 청에 굴복하고 말았다.
조선시대 사색당파 정리
관리를 뽑는 <이조전량 >관직을 놓고 선조때부터 사림파 후구파 외척파들이 싸움이 격해짐
1.동인ㅡ 이황,조식,서경덕 지지파
동쪽 건천동 사는 김효원 파 , 신진 사림파
후에 정여립모반사건 (기축옥사)으로 남인(온건파 이이)과 북인(급진ㅡ광해군지지) 으로 갈림
2. 서인ㅡ 이이,성혼 지지파
서쪽 정릉동에 사는 심의겸파 , 기존 사림파
후에 노론과 소론으로 갈림
선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위서열 3위인 광해군이 등극
-> 이복동생인 선조아들 영창대군(1순위)와 친형 임해군(2순위)을 처형함
-> 인조반정(서인주도) 중종이 등극하면서 북인 몰락
-> 서인(노론ㅡ보수,소론ㅡ진보)과 남인 부활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죽은후 장자인 손자를 제치고 둘째아들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함 (훗날 효종)
-> 명분을 중시하는 성리학상 문제발생함
그런데 효종이 갑자기 서거해버림
예송논쟁ㅡ1차 예송 ; 효종 서거후 복상문제 , 3년상?1년상? 계모가 입는옷은?
ㅡ 2차예송 ; 효종비 서거후 , 1년상?9개월상?옷은?
명분중시 이기철학
ㅡ남인 (理) 서인 (氣)ㅡ 이념과 경험
숙종때부터 탕평책을 시도해서 당파싸움을 조절함
-> 경종 (장희빈아들) ; 등극 2년만에 죽음
-> 21대 영조 ( 경종의 이복 동생이자 사도세자 아버지) , 비교적 성군으로 많이 문화적 치적을 남김.
-> 정조 ; 정치적 문화적 과학적등 모든면에서 절정을 이룸.
-> 이후로는 외척의 득세로 왕권이 다시 무너지기 시작함.
결국 27대 순종에서 마침 .
----------- to be continued ----------------- 참고 네이버. 조선완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