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군 미력면 반룡리의 내 과거 기억에 조각으로 남아있던 집들은 조금씩 변하고있었다. 마을 입구에 멋지게 있던 우리집은 초라해지고
옆집은 폐가가 되어버린지 오래인듯하다. 쌩뚱맞게 그 옆집은 폐가를 허물고 큰 민물탕 음식점이 들어서있다. 대학생시절 아버지와
멱감던 개울은 더러워져서 사람이 못들어간지 오래고 마을의 적막함은 초저녁의 기운을 더더욱 음산하게 한다.
아버지와 숙부님들의 출생지인 생가에 짐을 두고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막내 숙부님은 초등 5학년까지 이곳에서 다니시고 서울의
내집에서(큰형님댁에서) 사시다가 대입후 군대를 (방위 18개월인데 누가 봐도 장교 출신답다 ^_^) 다시 이곳에서 하신 덕분에 추억이
많으시다. 지나가는 곳마다 안부를 여쭈어 보는데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지 오래되시고 집은 아무도 안사는 폐가다. 불켜진 곳도 대부분
남편을 먼저 보낸 부인만 홀로 지키고 있다한다.
방금 지나온 회천은 마을도 이쁘고 관광 단지가 활성화 되면서 흥하는 기운을 느꼈는데 내 본적인 이곳 미력면은 전형적인 쇠락 농촌의
기운이어서 마음이 스잔하다.
(70 여년 전에 이런 창살 무늬를 만드셨으니 참 좋은 집이였다)
아버지 오시길 기다렸던 이곳 어르신들의 아쉬운 인사말을 자주 나누면서 저녁식사를 했다.
언제다 그렇듯이 반찬은 푸짐하다. 공기 밥도 꽉 채워 주신다. 서울 밥보다 반찬이 형편없어도 잘 먹으라 하시니 평소보다 더 많이 먹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배터질 고기는 없고 대부분 해산물과 신선한 야채이기에 소화는 잘 될것 같다. 뭐든지 권하고 싶어하시는 친척
조부님은(고모 할머니 아드님) 술이라도 계속 권해주신다.
1973년 일본에서 와서 첫 겨울 방학을 보낸곳이 이곳이다. 멀이 떨어져있는 재래식화장실에서 냄새나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볼일 봤던 기억이며 화장지도 없어 신문지를 잘라 사용했던 황당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활을 만들어 닭을
쫓아다니면 괴롭혔던 대나무숲이나 아침에 따뜻한 계란을 가져왔던 과거 양계장등 다 또렷이 생각이 났다. 지금든 다 없어지고
앙상한 빈터만 있다. 파리와 같이 지내던 큰 소도 외양간과 함께 사라진지 오래고 마중물 넣어서 펌프질 했던 우물도 수도꼭지로 바뀌어있다.
그래도 집은 많이 현대식으로 개량되어 살기에는 무척 편해진듯 하다. 하지만 구경만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과거의 모습이 많이
사라져서 아쉽다. 지금은 불도 안들어오는 창고로 쓰이지만 아내와 결혼 후 첫 휴가를 이곳으로 와서 잤던 그 방도 그대로 있다.
벌써 23년전 일이다. 직장생활하면서 결혼 후 첫 휴가였는데 부모님 지시대로 ‘고향 가보라‘하신다고 갔던것 보면 나도 그때는 참 순진했던것 같다. 하여간 그날은 그렇게 보성군 미력만 반룡리의 함양 박씨촌에 28대손인 아버지가 못 오신것을 동네 어르신들이 다 아쉬워하시면서 하루가 지나갔다. 이 마을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너무나 컸다. 하긴 장손이시면서 수십년간 이 마을에서 서울대학교 졸업한 사람이 아버지
한분만으로 유일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시면서 많은 친척의 자녀들을 취직 시켜주셨으니 말이다. 물론 최근까지도 문중 대소사에 깊이 관여도 하시고... 내가 대신하기에는 정말 많이 버겁다.
( 70년은 됐다 하시는데 최소 40년은 된 문고리다. 내가 73년도에 내 초등시절 손으로 만졌던 그 문고리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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