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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방법을 찾아서

살아가면서 사람은 많은 경험을 한다.
나 역시 하나의 전문인으로서 누구 못지 않는 경험을 많이 했다 생각한다.
인간의 한계와 신의 무한한 능력을 경험 했으며 인간의 다정함과 비열함을 수없이 같이 느끼며 자신을 담금질해왔다.
그때 마다 최선을 다해 바로 눈 앞의 그 고비를 넘어가려 애썼다.
그러던 세월이 이제 40대 후반의 중년이다.

과거의 수치스런 일들도 다 현재의 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라고 자위 하면서

나의 모든 추억들에게 가치를 부여하려 애쓴다.
참 많이 실수한 젊음이며 참 무던히 시도하며 노력한 청춘이었다.

지금은 현명한 아내와 믿음직한 세 자녀를 둔 어엿한 가장이자
사회의 조그마한 일꾼으로서 하루하루를 내딴엔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허전함은 계속 되어왔다.
나는 과연 어떤 삶으로 살다 끝낼까?
지금의 이 수준이 나의 전성기 일까?
이렇게 살다 가면 되는 것인가?
그냥 이게 다 일까?

항상 앞만 보며 살면서 뒤돌아 보려 하지도 않았고 옆을 간혹 보면서 내 삶의 속도가 늦혀진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저 나의
달란트라 생각하며 무시했었는데 어느 순간 내 삶의 수준이 그저 평범한 한 가장의 그 무엇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물론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말을 믿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다른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 같은데

이게 내 인생의 정점이라면 조금은 서운하다.
나는 과연 어떤 인간일까?

40여년을 다니던 교회에서도 (비록 열심히 다니는 신도는 아니지만) 목이 말라 최근 법정 스님의 책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고

길상사의 하루짜리 템플 스테이에 참가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절에 들어가니 뭔가 죄지은 듯 하면서도 신선한 자극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첫 발걸음을 디뎠다.
일주문을 들어서며 주위 일반 신도들 따라 쑥스러운 합장을하고
설법전에 들어가서 접수를 했다.
세상살이를 위한 직장일을 마치고 오느라 1시간 넘게 늦었지만 지갑, 시계, 옷가지등 내 소유로 있는 모든 것을 다 보관 시키고

수련복으로 갈아입으니 육신을 떠나 제 삼자의 위치로 자연히 옮겨지는 듯한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군입대하여 모든 사복을 소포로 보내고 군복으로 갈아입은 느낌이라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

신비한 스님들의 강의 또한 철학적인 내용으로 내게 조금씩 다가 왔으며 최근 입적하신 법정 스님의 영정이 크게 자리하고 있는

법당의 위엄은 오히려 푸근함을 느끼게 했다.
쉬는 시간에 그분에게 존경을 듬뿍 담아 큰 절을 올렸다.
24시간의 묵언 수행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수많은 사심이 엄습하는 과정 중에서도 조금씩 나를 찾아가는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느끼는데

가장 강한 깨달음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이런 순간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교회에서 기도할때도 통성( 소리지르며 갈구하는) 기도를 했지 조용한 내면적인 사색은 없었다.
아니 할 줄 몰랐다.

내게는 언제나 목표가 있었고 항상 무엇인가를 시도했으며
칼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꼭 뭔가를
이루어내야 투자한 시간을 보람되게 보낸 것으로 치부했던
나의 과거는 과연 내가 정말로 중요한 내적인 성숙을 위한 노력을 했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을을 갖게 하였다.
주관적인 평가보다는 타인의 평가에 중요성을 두고
나의 내면보다는 외적인 면에 시간을 투자하며
입으로 나오는 말들의 질적 수준 보다는 그 양적인 면에만 관심을 쏟는 부질없는 과거들이 내 머리를 수없이 스쳐갔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있는 것으로 전혀
가치 없다 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나도 노력의 방향을 바꿔야할 나이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6년전 전화 통화하던 친구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리는 허망함을 체험하며 이제는 미래를 기약하기 보다
순간순간의 가치를 놓치지 말자하며 나 나름의 노력은 하였으나
항상 근본적으로 내적인 성숙이 덜되어있는 상태에서는 사상누각의 연속일 뿐이었다.
다년간의 수련에도 이룰 수 있을지 알수 없는 그런 수준이 하루의 수련으로 가능할 리가 없겠지만

조그만 자극을 계속 부여잡으며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달라지고 싶었다.

새벽 예불의 신선함을 맛보고 아침의 운력으로 마음을 청소한 후 간단한 절차를 거쳐

길상사 사찰 내부를 자중하는 마음으로 둘러보고 묵언 수행을 포함한 모든 과정을 마무리하였다.
난생 처음으로 24시간 동안 내 안으로만 이야기해본 것 같다.
누군가가 법정 스님이 쓰시던 처소앞에 놓고간 양귀비 꽃의 처량한 아름다움이 덧없는 인생을 보여주는 듯 했다.

기쁜 마음으로 편안하게 합장하고 일주문을 나서는 나의 심정은 무척 홀가분했다.
무엇인가를 지금부터 조금이라도 그러나 꾸준히 해야겠다는 경각심보다는 나의 그 것을 위한 해결 방법을 알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지금도 간혹 교회에 새벽 기도를 나가면서 나름의 방법으로
나를 찾아가는 참선을 기도와 함께 간절히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하루 쌓이는 덕으로 나 자신의 근본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니 잊혀진 자신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법정 스님 말씀대로 맑은 하늘이어야 붉은 저녁 노을이 이쁘게 이루어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