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날이다. 오늘도 아나로그식 모닝콜로 하루를 시작한다. 맑은 하늘을 보면서 일어서는데 이젠 내 몸에 근육통의 기운이 깊숙한 곳까지 돈다. 결국 약을 먹었다. 해외 진료 와서 내가 약 먹기는 처음이다. 그래도 컨디션은 젊은 사람 못지 않다고 자부하고 현지 식도 잘 먹고 있다.
오늘은 우리 숙소에서 가장 멀어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Libakao지역이다. 도착하니 역시 천장은 부분적으로 태풍으로 날아간 체육관
같은 곳에서 진료를 시작한다. 율브리너 닮은 풍체 좋은 사람이 반갑게 맞아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 의사다. 어째 날라리 의사같은
외모인데 "닥! 닥!" 하면서 하루종일 신경 많이 써줬다. 이곳 사람 답지 않게 배도 많이 나와있어 현지 의사의 삶을 짐작하게한다. 진료 기록지도 없이 지인들을 대려와서 수술 해달라고 대놓고 부탁하는 붙임성 좋은 능구렁이 의사였다. 날씨는 여전히 더워서 오전 일과를 시작할
즈음이면 벌써 내 옷은 젖어버린다. 오늘은 외과적 치료환자는 별로 없었고 소아 환자가 많은 편이었다. 아마 이곳이 살기 좋은 곳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이 많은 것 보니 발전 가능성을 있을 것 갔다.
보통 16세 정도 아이가 오면 벌써 최소 2명의 아기를 낳은 엄마이다. 이들에게 인생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궁굼했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같은 또래가 얼마나 큰 꿈과 희망을 안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게된다면 이들은 자신의 삶에 큰 회의를 느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금 내 주위의 것만 알면 괜찮은데 자꾸 그 이외의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리라. 아는것이 힘이라지만
모르는 것이 약일 경우도 많다. 당연히 그것이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지만 삶에서는 그냥 받아들여야하는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솔로몬의 기도 제목처럼
어쩔 수 없는 것을 바꾸려는 용기와 받아들이려는 평온함
그리고 이 두가지를 구별 할 줄 아는 지혜가 골고루 필요한 것이다.
무소식이 오히려 사회적 유대 관계에 좋을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하루종일 그 어린 아이들의 삶이 안쓰러웠다.
그들은 우리 할머니 세대처럼 일하고 아이낳고 기르는 일 말고는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삶을 살다가 떠나는것이다. 사랑도 희망도 꿈도 포부도 특별히 없이 그냥 동물처럼 살다가 흔적없이 사라지는것이다. 하긴 따지고보면 수많은 길들을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거치다가도 결국 떠날때는 대부분이 비슷한 수준으로 떠나겠지. 인생이란것이 뭐 별것이겠는가?
( 바쁘게 퇴근 정리하는 다른 십여명 바쁜 동료들을 빼고 한가한(?) 의료진만 기념 촬영 한컽- 좌측 노랑 율부리너 닥터)
이곳에서는 찹살떡으로 만든 약과같은 것을 오전와 오후 식사 중간에 간식으로 주는데 참 맛이있었다. 점심 식사후 피곤으로 낮잠을
자게되었다. 동갑내기 단장과 내가 잤으니 결국 나이 탓이라. 하긴 젊은 남녀들이 서로 잼나게 이야기하는데 단장이나 내가 끼어서 분위기 깰 필요 없으니 그냥 눈감고 자는것이 상책이다. 나도 5~6년 전에는 늘씬한 인도 간호원들이 게임 하자면서 맑고 큰 눈동자로 내게 다가오기도 했었던 적이 있었다.
오후 일과까지 무사히 마치고 먼거리를 길게 돌아 현지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둠이 깊어간 시간에 파침치가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다른 팀원들은 2차 모임을 슥소에서 모여 갖는 것 같은데 단장과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방으로 돌아가 씻고 잠을 청한다.
침대에 누우면 지옥의 신 하데스가 내 몸을 잡아당기는 것 같다. 무거운 추를 허리에 달고 물침대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두명 다 코를 골기에 내가 먼저 자야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하지만 피곤하니 사실 서로 들리지도 않는다. 천둥쳐도 모를 것이다.
그렇게 오늘의 하루가 지나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마좀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릎이 쑤시는것 보니 내일은 비가 오려나보다.
( 참쌀로 만든 간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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