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지막 날이다. 날씨도 좋다. 마지막은 언제다 아쉽다. 전날 근육통으로 고생하면서 잤는데도 아침에는 비교적 개운했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처음으로 3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 주위를 둘러본다. 멀리 보이는 것은 다 낮은 건물과 푸른 숲뿐이다. 수 많은 자전거와 오토바이 택시가 지방도로 같은 허름한 고속도로로 아침의 고요함을 가르면서 많은 사람들을 나르고 있다.
마지막 날 진료 장소는 숙소와 가까워 20분만에 도착했다. 지붕이 날아간 체육관 옆에 있는 돔 형의 건물에서 진료를 했다. 사방이 뚤린 건물이라서 바람은 잘 통하나 햇볕을 잘 막지 못해 오후가 될수록 그늘이 줄어들어 해를 피해 진료실 탁자를 옮겨가면서 일했다. 그동안 소문이 났는지 소아 환자를 시작해서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왔고 우리도 남아있는 약품들을 가능한 많이 나눠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동안 팀원들간의 손발이 잘 맞아 이제는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잘 돌아가는듯 하여 뿌듯했다. 나 역시 외과 의사로서 많은 고름환자와 양성종양 환자를 보게 되었다. 이제는 왠만한 혹은 혹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곳 환자들은 주사를 별로 맞아보질 않아서 그런지 주사에 대한 반응이 아주
드라마틱하다. 목발 짚고 힘들게 걸어온 허리 통증 환자에게 내가 통증 신경 주사를 놔주니 조금후 힘차게 일어나서 지팡이를 어깨에 매고
유유자적하며 돌아가니 주위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나도 왜 그렇게 효과가 좋은지 알수 없는 상태로 그냥 쑥스러울 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사를 여러번 놔줘야 효과가 서서히 보이는데 말이다. 하여간 시절인연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이날의 압권은 16년된 등의 혹이었다. 40대 후반의 아주머지가 등에 혹이 있다는 진찰지를 가지고 내 앞에 왔다. 나는 평소처럼 그냥 환자를 돌려 옷을 올려봤는데 턱하고 숨이 막히는 것이다. 대충 봐도 20cm 가까이 되는 너무나 큰 혹이었다. (처음 접수에서 그냥 돌려보내버리지 왜 외과로 보냈는지 야속해 했지만 나중에 들으니 접수에서는 당연히 수술 안할 줄 알고 그냥 보냈다 했다.) 그동안 해 왔던 것이 있던 터라 간도 붓어 겁도 없어진 상태였고 무엇보다 간절히 수술을 원하여 피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무리한 경우였지만 환자에게 충분히 주의를 주고 수술에 들어갔다. 등이라 출혈을 적을것은 예상했지만 너무 커서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남은 기구도 부족하여 사용한 것을 다시 소독약으로 간단히 소독하고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땀을 닦으면서 정신없이 하고 있는데 조용하던 환자의 상태를 통역봉사자가 알려줬다.
환자가 어지럽다고 호소하기 시작한것이다. 생각보다 유착이 있어 시간이 걸리고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여 순간 후회되면서 마음이 다급해졌다. 일단 빨리 끝내고 피부를 봉합해서 감염 가능성을 줄여야할 상황이었다. 환자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바로 우리 팀원들 전체에게 어떤 불똥이 떨어질지 모를 상황이다. 하여간 정신없이 마무리하고 큰 덩어리는 떼어서 버리는데 그제서야 주위를 살펴보니 수 많은 사람들이 핸폰으로 동영상 찍고 야단이었다. (그 동영상이 나중에 문제되지 않기 바랄 뿐이다.) 일단 등은 깔끔해졌고 충분한 거즈로 상처를 치료한뒤 환자를 일으켜 세워 혈색과 눈을 보니 양호했다. 사실 이 환자도 혹 떼어내고나서 가족들과 같이 천장보면서 편하게 눕고 싶어 그 열악한 환경에서 수술 받으면서도 통증을 잘 참아준 것이다. 의사로서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통역을 통해 거듭거듭 잘 설명하고 보냈는데 압박 드레싱을 풀게되는 이틀 후부터 소독 치료 열심히 받을지 모르겠다. 일단 주사주고 충분한 약과 연고를 줬으니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이다. 기도할 따름이다.
( 철근기둥을 휘게하는 태풍의 위력 )
이것보다 더 큰 상황은 앞으로도 없을 듯 싶다. 아니 없어야 한다.
해외 의료 진료에서 만용은 금물이고 동정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이 약해지면 판단히 흐려질 수 있다. 조심하자. 환자를 너무 믿으면 안된다. 무사히 하루를 마치고 최종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아쉬움과 뿌듯함이 교차되는 순간이다.
땀에 젖은 옷과 환한 웃음이 교차하는 우리 팀원들의 표정이 무한한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항상 그렇듯이 마지막날 단체 사진을 찍을때는 팀원끼리 마주보며 동지애를 느끼게 되는 가슴 벅찬 순간이다. ‘화이팅’을 외치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5일간 약 2500여명을 진료하면서 최선을 다한 우리들의 멋진 성취감이었다. 다들 참 잘해주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바로 출발한다. 이렇게 삶의 한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이 만들어졌다.
잘 있어라 Kalibo여.
마닐라를 거쳐 귀국 비행기를 타니 이제야 끝났다는 것이 실감났다.
잘 있어라. 필리핀이여.
꼬모스따 ( 안녕하세요? )
빠알람 ( 안녕히 가세요 )
살랑알 ( 감사합니다.
( 0.4일 차이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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