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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한국인의 여행습관

난 여행을 좋아한다. 하긴 일상적인 삶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행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취미란에 여행이라고 쓰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겠지. 

아무튼 한곳에 잘 있지 못하는 역마살이 있어서인지 대학시절부터 산악부 생활하면서 전국을 누비며 다녔다.

의대 졸업하고 병원건물내에서 먹고 자고 지지고 볶고 생활하며 살아가는 와중에 일반 회사 취직해서 해외 바이어 만나러 출장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듣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내가 처음 해외로 잠시라도 나갈 수 있었을때가 대학3학년때인 85년도 막내 숙부께서 프랑스로 연수 가셨을 때 였다.

당시는 오직 친지 초청 형식으로만 해외에 나갈 수 있어서 그 당시 필수 코스인 반공 교육을 동생과 함께 남산에서 8시간 받았는데

결국 한명뿐인 TO로인해 의대생인 내가 눈물을 머금고 양보하여 건축학 전공인 동생이 갔다.

약 한달동안 유럽의 건축물의 진수를 만끽하며 배낭 여행 다녀온 덕에 지금 멋진 건축사로 미국에서 훌륭하게 지내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생각해보니 내가 지대한 공헌을 했는데 술 얻어먹은 기억이 없다. ^_^

신혼 여행도 제주도로 갈 수밖에 없는 그 당시를 지나 94년 미국 정형외과 학회에 처음으로 비행기 타고 나가볼 수 있었다.

물론 과거 일본에서 살아봤으니 처음은 아니지만 생각이 있는 성인이 되어서는 처음이라 많은 설레임이 있었다.

(그때의 여행은 과정중에 여행사 여자대표의 장난으로 고생 많이 하고 돌아와서도 고소사건이 생기는등 엄청 복잡해서

지금은 생각하지도 싫다)

 이후 몇 번의 짦은 개인 여행이 있었으나 항상 누구나 여행의 기본 시작이라는 서유럽 패키지 가족 여행에 대한 미련이었다.
아직 안가본곳 투성이지만 특히 영국 빅벤, 프랑스 에펠탑, 스위스 몽블랑, 이태리 콜로세움등 뻔한 여행지를 안가봤다는 것이

마음속에서 아쉬움으로 남아있다가 이번 큰 아이 대학 합격후 온 가족이 다녀왔다.

그런데 그 여행이라는 것이 거의 유격 훈련 수준이다.

도착하자마자 시차 적응을 길거리 경치 구경하면서 하고 시간이 돈이라는 생각으로 무거운 눈꺼풀을 강한의지로 치켜올려

머리와 가슴을 거치지 않는 단순한 시야 확보 수준으로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프랑스숙소는 우리나라 청소년 수련관 수준보다 못하고 그나마 밤늦게 도착해서 새벽에 떠나느라 호텔 겉모양을 보지도 못한 경우도 많다.

단체 생활인 만큼 버스 출발 시간에 맞추느라 마음의 여유도 없다.

시장가도 화장실가도 호텔 방에 들어가도 구경가도 항상 마음속의 캠퍼스로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고 시계를 보면서

분단위로 나누어 관광을 한다.

짧은 기간에 최대한 많이 관광하려는 대한민국 특유의 저돌성으로 여행하는 대한 국민 멤버들과 가이드의 헌신적인 리드가

나날이 빛을 발한다. 오직 한국인들만 가능한 일이다.

가이드 이야기로는 중국인들도 점점 우리를 닮아가고 일본 사람들은 거의 서양 스타일로 여유있게 관광을 한단다.

 

 나도 10년만 젊었으면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이런 전투 여행을 선호 할테지만

이젠 좀 여유있게 식사도 하고 구경도 하고 싶고 또 박물관도 시간을 두고 구경하고 싶은데 이건 완전히 관광 전투 훈련수준이다.

같이 동행한 노 부부는 다른 젊은 팀원들에게 부담되지않으려 애쓰시는 모습이 역력하여 보는 내가 안쓰럽다.

어느 친구 부부는 여유있는 여행을 하고자 큰마음 먹고 고가의 여행상품으로 갔는데 워낙 팀원들이 연장자 투성이라

상대적으로 젊은 축이되는 통에 눈치보느라 고생했다한다.

 

 메스컴을 통해 무수히 봤던 유명한 광경들이라 담담했고 아이들은 구경은 커녕 시차 적응 하느라 버스에서 잠자기 바빴다.

아침 식사시간에 서로 인사 할 여유도 없이 빨리 해치우고 짐쌓고 정한 시간에 버스에 들어가 자리 다툼하며 다시 출발하길 몇일 반복하여

결국 8박9일의 여정동안 불티나게 5개국을 돌면서 많은 눈도장 찍고 귀국 할 쯤 되어서야 다들 시차 적응이 되었고

몸은 파김치되어 고향 침대를 그리워한다.

 내 병원에 간혹 오시는 여행 가이드분이 계신데 항상 여행가기전에 마음 다짐을 강하게하고 떠난다 해서 이해를 못했다.

그 즐거운 해외 여행을 하면서 돈까지 벌면 얼마나 행복할 까 싶었다.

그런데 여행 다녀와 보니 이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전투 현장 장교 대위의 수준이다.

군인은 말이라도 잘 듣기나 하지 길잃고 여권 분실하고 멀미하고 약속시간 안지키는등 별일들을 다 일으키는 오합지졸 패키지 여행구성원들의 통솔은 정말 동행할 때 마다 수년씩 생명 단축 시키는 허드렛일인 것 같다.

 

확실히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격어 봐야 그 속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러니 겪어보지 않은 것은 단순히 오해일 뿐 절대 잘 안다고 함부로 자만하지 말아야한다. 특히 사람의 마음.
그분이 오늘도 오셨다. 내일 또 서유럽으로 124번째 떠난다고. 

나는 좋은 주사와 특별 물리치료를 해드리면서 무사히 살아 돌아오시라 덕담 드렸다.
그래도 떠나고는 싶다. 유럽을 나 혼자 배낭 여행으로 한번 쭉 돌아보고 싶다.
사는대로 생각하면 불가능하지만 생각하는대로 살면 가능한 일이다.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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