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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3대의 추억

3대 추억 여행

 

고교 타임 켚슐 관련 자료를 만들어 아이에게 좋은 선물 하려고 생각하던중

여행을 갑자기 하게되었다. 내겐 5년 만의 직장 밖 여행이다.

부모님 모시고 큰 아이와(둘째는 막판에 몸이 아파 취소) 시골 고향 (부모님 고향)을

둘러보면서 성묘도 하고 외할머니도 찾아뵙고 켐기록도 남기고..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협박과(집안의 장손) 회유(MP3)로 달래면서 나도

출혈이 좀 심했지. 영화, MP3, 인내, 미소......

 

처음 타 보는 KTX로 대전까지 눈 깜짝 지나 강경 거쳐(일제시대 강경상고의 명성설명듣고)

광주까지 엉금 엉금 가고 차를 렌트하여 전라도 보성에 들어섰다.

형규의 할아버지 생가에 누워보고 내가 초등학교때 자주 놀던 대나무숲을 아이 형규와

걸었다. 그땐 참 넓어 보이는 곳에서 도망다니는 닭들을 꽤나 괴롭혔었다.

물론 조상님 산소도 땀흘이면서 세군데나 헉헉거리면서 돌고.

큰 아이표정은 가관,

켐코더 찍는데 나중에는 화가 잔뜩 났다.^_^

할머니가 시집 오셨을때 심었던 꽃나무배경으로 손주와같이 사진찍으시고

아빠가 무서워 했던 전형적인 시골 화장실도 갔지. 여전한 냄새와 신문지 잘라서만든

휴지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다시 해지기전에 보성 차밭을 보려했는데 어두워 그냥 지나 내일을 기약하고

전라도 회천 증조외할머니댁(내겐 외할머니)에 갔다.

많이 야위신 모습에 세월의 흐름을 다시금 느꼈지.

남해 바다의 향기와 시골 냄새가 어울어진 시골에서 우리 아이의 첫 시골 밤이 시작됐다.

불피워 밤 굽고 고기 구워 먹고 어른들은 술잔 돌리고......

밤 하늘엔 쏟아지는 별과 고요함이 친척분들의 시끄러운 웃음소리에 더욱 진하게 깊어가는 하루다.

형규는 뭐하냐고?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게임 buddy buddy 에 빠져 정신이 없다.

집에서는 30분 밖에 못하는데 지금은 잔소리하는 엄마가 옆에 없으니 낮의 짜증은 싹 가시고 신이 났다.

내일은 아침에 증조 외할아버지 성묘가면서 일출을 보련다.

형규 끌고 가려면 뭘로 또 deal 할까?

노는것은 정말 좋다.

 

시골 기온은 서울과 달라 등은 따뜻한데 코끗이 차갑다.

옛날 여의도 시범아파트 살때 이불 속만 따뜻했던 기억이 새롭더라.

그땐 왜 그렇게 추었는지.

자는 놈 깨워 집 뒤의 일림산으로 올라가면서 오랜만에 맑은 산 공기를 마시며

조심 스럽게 올라갔지. 다치면 내 체중 업어줄 사람 없으니까.

외할아버지 성묘를 마치니 바로 멋진 일출로 화답해 주시더라.

소원 빌었다. 타임켚슐 잘 만들게 해 달라고.

아침을 맛있게 먹고 해수탕에서 울 아들 큰(?)고추 와 솜털 보고 뿌듯해 하고

아버지 등 밀어드리며 안타까와했지만 그것도 잠시 계속 되는 성묘 산행에 나보다

잘 걸으시는 아버지를 보고 오히려 내 체력이 야속하더라.

헉헉~

험한 산길 수풀 헤치고 차 바퀴 빠지고 배 고프고.....

다신 같이 여행 안간다는 형규를 달래고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항상 어른 위주의 식사(전어회밥, 쭈꾸미 무침,장어구이...)로 질려있던 놈이

말 그대로 사위위해 시암탉을 세마리나 구워주신 외할머니 덕분에

닭 찜을 먹으면서 얼굴에 화색이 돈다.

 

다음날은 여러곳을 구경하면서 광주거쳐 무사히 서울로 돌아왔다.

내겐 참 좋은 추억이었다.

형규 빼곤 다들 좋아하셔서 더욱 좋았다.

형규는 나중에 20년 뒤에나 이번 여행의 기록사진을 보면서 그 가치를 알겠지.

그러니까 애지.

 

episode

 

1

보성 봇재에 차밭이 유명하다. 유명한 드라마 ‘여름향기’도 이곳에서 찍었지.

수녀님에 비구니 자전거에 태우는 CF장면도 이곳에서 찍고.

왜 봇재일까? 그냥 ‘령’이나 ‘보성재’도 아니고 유독 ‘봇재‘ 일까?

할머니 말씀으론 멀리서 볼때 여자 생식기 닮아서 그런단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6.25당시에는 어머니가 언니와 함께

총든 인민군들을 지나 이곳을 넘으면서 할아버지 심부름했는데

인민군 청년들이 위험하다면서 비키라고 친절하게 대해줬다는구나.

물론 국방군들도 아이들을 보면서 다정하게 해줬고.

동일시대 살아온 전쟁의 아이러니지.

 

2.

6.25 당시 낮에는 국방군, 밤에는 인민군 뒤치다꺼리 하느라 마을 주민들이

정신 없었단다. 마을 회관 앞에 솥 놓고 밤낮으로 계속 밥 짓고 낡은 옷 수선도 해주고....

누가 그들을 부역 했다고 욕할 수 있을까? 안그러면 죽창으로 살인당할 판인데.

그때 똑똑하다는 엘리트들이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 산속으로 많이 들어가서

뒤 따라들어간 마을의 처녀들과 눈이 맞기도 했다지.

 

3.

우국 지사 ‘정 해룡’ 씨라는 분이 있어 마을 안에 기념관이 있는데

일제시대때 독립군 자금을 대주곤 하셨나보더라.

그 당시 수 만석집으로 지금의 집을 보면 그 위상을 알 수 있지.

솟을 문도 있는 멋진 집으로 고색창연하단다.

근데 그 아들들이 다 경성 제대 나오고 딸들도 똑똑했는데 2째 아들이 좌경이 되어

월북하는 통에 집안 이 풍비박산 되었다는구나.

정부에서 아무도 못들어가게 해서 멋진 집이 폐허가 되었는데

최근 다시 수리하여 곧 지방 문화제로 인정 받는다는구나.

그분 큰 아들이 아버지 선배인데 평생 직장 못 구하고 인생 참 불쌍하게 되셨단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행한 분이지.

 

4.

보성읍내에서 방앗간 옆에 주막이 있어 우리 어머니를 외할아버지께서 업고 가시면서

꼭 들러 약주 한잔 하셨다는데 그곳에서 검찰 출신 박주선 국회의원이 나왔지.

서울대 법대 수석 합격해서 고을이 시끌벅적 했었단다.

요즘도 박주선씨는 보성 마을에선 주막집 아들로 통한다지.

 

5.

아버지께서 초등학생때 보성 마을 입구로 옹기 굽는 젊은 부부가 이사와서 굽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들이 지금은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방송에 자주 나온다는구나.

옹기 굽는 터가 아주 크고 제자 수련생도 많이 있다더라.

아주 순박하고 어리숙한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되신다는데 사람이 우직하면

결국 일을 내고(성공) 마는 것 같다.

 

6

이모부는 전북 고창 출신이신데 그곳에는 개울을 중심으로 북 마을과 남마을이 있단다.

북마을은 경성제대 자녀가 있어 방학때 마다 동네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교육시켜

남마을과 달리 이북으로 넘어간 사람이 많단다.

그래서 6.25때 북 마을을 전투기로 폭격했는데 그때 남마을에서 빨래 널던 이모부의 어머니께서 총맞아 돌아가셨단다.

사상전쟁으로 이름없는 조용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인생의 종지부가 얼마나 많았을까?

 

7.

서재필 박사 기념관이 그곳에 있는데 알고 보니 참 파란만장한 분이더라.

16세에 장원급제해서 관직에 계시다가 서양 문물에 눈이 떠서 갑신정변을 젊은 박영효,

서광범,김옥균등과 일으켰지. 물론 3일 천하지만.

근데 그 일로 부모님,아내,형은 자살, 동생은 참수, 아들은 굶어죽었단다.

서 박사는 미국에서 의사돼서(재혼도했지 아마) 미국 시민권자로서 재입국했다.

갑신정변때 애국 관리들을 죽이면서 쿠데타 했던 사람이

미국 시민권자로 입국해서 영은문이라고 청나라 사신을 맞던 것을 허물고

독립문을 세우고 국내에서 독립신문 발행하면서 애국자로 행세하며 다니고 있으니

벌써 국가의 법이 무너진 상태로 고종왕이나 충신들 마음이 어땠을까싶다.

나중엔 해방후 관직을 받고 왔다가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 되고 6.25 발생하자

미국 돌아가 다음해 서거하셨지.

사람들은 멋진 삶이라할진 몰라도 난 그렇게 살고싶진 않다.

 

8.

외가댁이 거의 허물어져가는 건물이었는데 몇해전 기본 틀은 두고

리모델링을 해서 아주 멋지게 변했다.

어머니께서 어릴적 옛날 화장실에 앉아 보이던 남해 바다는

바로 그 자리에서 흔들 의자에 앉아 볼 수 있게 됐지. 보이는 바다는 똑 같은데.

압권은 천장에 버티고있는 기둥. 상량식때 한학자이셨던 나의 증조외할아버지께서

쓰셨던 글이 있는데 ‘ 단기 4268년 ************(한자) ' 란 글이

바로 어제 쓴 것처럼 깨끗이 있는거야.

거의 70여년 전에 쓰신건데 말이야.

공사때 너무 때가 끼어 몇일을 걸려 닦았더니 감춰졌던 글이 나왔다 하시더라.

먹물이 원리 그렇게 나무에 스며서 오래 간단다.

참 신기한거다.

 

9

집 공사후 얼마 안있어 밤에 벽으로 밝은 동그란 불빛이 비춰서 안에 계셨던 이모들과

외할머니는 지나가는 차 불빛이 비추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냥 계속 비춰지더란거야.

소위 말하는 혼불인데 그게 보이면 누군가가 돌아가신다더라.

한 달 후 동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지나서 하시는 외할머니 말씀이 당신 몸이 안좋아

당신 차례인줄 아셨데.

혼불이 동그라면 여자고 아래 꼬리같은 것이 붙어있으면 남자라던데 신기하지?

외삼촌 이야기론 옛날에도 보고나서 마을 처녀가 저세상 갔데나...

그 이야기를 밤에 시골길을 다정하게 우리 부자가 산책 하다가 뒤에서 듣고 나선

나와 형규는 순간 온몸이 오싹!

 

10

이틀동안 지내는데 동네 사람들이 호박 밤 생선 등등을 갖다 주더라.

원래 남의 집앞에 못 보던 차가 와 있으면 손님 오셨으니 드시라고

서로 갖다 준단다.

참 순박한 사람들이지.

아들과 폐가에 들어가서 탱자와 모과를 따면서 괜히 뿌듯하더라.

서로 핸디켐으로 찍어주면서 땄지.

내 기억으론 높이 있는 열매를 직접따보는 것은 처음이다.

군대에서 사병들이 흔들어 떨어뜨린 밤 주워본적은 있어도.

근데 이놈이 지 엄마는 생각 않고 자기 여자친구 줄것만 생각하더라고.

이번 여행 하면서 자기반에 사귀는 여자친구있다고 처음 이야기 해줬지.

이쁘다는 자랑과 함께 엄마에겐 비밀로 약속하고.

3대가 많이 가까워진 좋은 여행이었다.

2004.11 ( 고교 홈페이지 중에서 )

 

                                                  ( 옛날 사진이 없어서 2007년 어느 하루 중에서 불러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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