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게 더 강한 피해를 줄수있는 쪽이
가해자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제 이런 동물같은 인간들이 흔하다.
세상은 이러다 자멸하나보다.
돌고 도는 인생.
PS) 법으로 의사에게도 환자를 거부할 권리가 있어야
서로 최소한의 인내를 할 수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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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2. 22. [SC칼럼] #전여옥 "3류 의사는 가라"
며칠전 아이가 한밤에 아팠다. 내가 살고 있는 일산은 신도시의 태를 아직 벗지못해 최근에야 한 대학에서 운영하는 종합병원이 문을 열었다. 고열에 콧물을 줄줄 흐르는 아이를 해열제를 먹여 병원 응급실에 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전혀 응급실같은 긴장이 없었다. 진찰료를 치르고 소아과담당의사에게 갔다.
나는 당연히 우리 아이가 1주일전부터 배앓이를 했고 목이 부었다는 경과를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전에 배가 아팠는데'라고 한마디를 꺼내자 새파란 의사가 `그거하고 열나는 것하고는 상관없어요'하고 한방에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내가 아이하고 싸울 일이 있나 싶어 최대한의 인내력을 발휘해 밤에 고열이 계속 되었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러자 그는 지금은 열이 별로 없는데 웬 난리냐는 투였다.
나는 기가 막혀 해열제를 먹었기 때문에 열이 떨어진 것이라고 했다. 다시 그가 `얼마를 먹였어욧?'하고 쏘았다. 나는 보통 기본인 4-5밀리리터를 먹었다고 대답하자 `해열제에 기본이 어디있어요? 그런 것을 정확히 알아야지'하며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내가 면박을 당할 때 당하더라도 보통 4살짜리 아이는 해열제 복용 기본이 4-5 밀리인데(체중에 따라 정해진다) 그것도 모르냐고 눈을 똑바로 뜨고 대꾸했다. 어쨌든 나는 내 아이 생각을 해서 콧물이 심하고 밤이면 열이 오른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만한 환자에게 분풀이를 제대로 못해 씩씩거리면서 처방전을 썼다. 야간약국에 처방전을 내밀면서 나는 찜찜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저 돌팔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에 약사에게 처방의 내용을 물어봤다. 그런데 아니 이럴 수가? 콧물을 완화시키는 약은 전혀없이 거담진해제만 처방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어린아이에게는 좀처럼 쓰지 않는 강도 높은 항생제가 들어있었다.
나는 그 의사를 찾아가 항의했더니 대뜸 한다는 이야기가 `그럼 안오면 될 것 아니냐?'고했다. 나는 `물론 다시 오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의사라면 먼저 한 인간으로서 교양을 갖추고 상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나왔다.
의약분업을 앞두고 의사들이 생존권을 사수하기위해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이제 의사들이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의사들도 굶어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의사만 가난하고 굶어죽으면 안되는가? 서양의 3류의사들은 다 굶어죽는다. 즉 의사라는 것 하나만으로 환자를 얄잡아보고 그것도 인턴 레지던트들이 유달리 오만하게 구는 의료현장은 궁극적으로 많은 의사들을 굶어 죽게 만들 것이다. 어떤 이는 일부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의료인들이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만큼 그 요구는 더 높다. 또한 문제는 항상 일부가 일으키는 만큼 일부의 문제는 전체의 문제이다. 만일 그것이 싫은 자신없는 3류들은 제발 의사를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스스로에게 국민건강에, 정신건강까지 포함해 3류의사들이 얼마나 많은 해를 끼쳤는가를 물어보면서 말이다.
[방송인 satvki@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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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2. 29.
[전여옥칼럼] "3류 의사는 사라" 반론문
이종국[인제의대 일산백병원 소아과 과장]
스포츠조선의 지난 2월24일자 전여옥씨의 칼럼에 대해 의학계에서 반론을 제기해왔습니다. SC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는 관계없이 필자들의 원고를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난인만큼 반론에 대해서도 저희 스포츠조선은 문호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이종국 인제의대 일산백병원 소아과 과장의 반론을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 그래도 나는 그 `3류 의사'를 사랑합니다
지난주 수요일 아침(2월23일) 병실 회진을 마치고 외래환자 진료를 시작할 무렵 서울 구로동에서 산부인과의원을 개원하고 계신다는 분이 전화를 해왔습니다. 흥분된 목소리로 아침신문 칼럼을 읽어 보았느냐, 안 읽어 보았으면 팩스로 넣겠다며, 자신이 반박을 하고자 하는데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자는 말씀이었습니다. 영문 모를 전화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사건의 전말을 듣고, 당사자와 통화할 수 있도록 한후 문제의 칼럼을 구해 읽어 보았습니다.
세상에! 도대체 얼마나 모진 경우를 당하였길래, 얼마나 증오심으로 꽉 찬 마음을 가졌길래, 그렇게 사나운 어휘를 거침없이 썼을까? `새파란 의사' `아이' 급기야는 `저 돌팔이' `굶어죽어 마땅한 3류 의사'로까지 표현하였을까? 경위야 어찌되었든 고열(응급실 기록에는 36도 5부로 기록되어 있음)에 콧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을 찾은 엄마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만족스런 진료를 해드리지 못한 점을 깊히 사과 드립니다. 소아과를 책임지고, 전공의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평생을 두고 존경하는 대학 은사님이 한분 계십니다. 지금은 은퇴하셔서 교과서 저술 작업만 하고 계시는데 이분의 후학들에 대한 가르침은 아주 간단 명료합니다.
`훌륭한 의사가 되도록 노력하라'.
막연한 이야기 같지만 방법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첫째는 `실력있는 의사가 되도록 하라'. 둘째는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키우도록 하라'는 가르침 입니다.
실력있는 의사가 되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평생 걸려 이룬 연구 업적도 두세줄의 결론으로 끝날 수 있어 쉽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요새같은 정보화시대에는 더욱 손쉽게 새로운 의학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입니다.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또 다른 직업윤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의사는 성직자도 아니고, 수양 깊은 도인도 아닌데, 멸시당하고 의심받고 하면 의사들 마음에도 분노가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맘에 안 든다고 "이병원, 돌팔이가 진료하는 병원에서 진료받지 말라"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에게 소리지르고, 항생제와 거담제가 그아이에게 꼭 필요 했었는지를 따지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한 후 다음 응급환자를 보고 있는 `3류 의사' 진찰대에 약을 내동댕이 치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고정 칼럼에 사나운 어휘로 의사를 모멸하는, 그런 환자나 보호자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힘듭니다.
나자신 소아과 의사로서, 교육자로서 20년 넘게 일해오고 있지만 내 직업에 교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존경은 고사하고 능멸당하지 않고, 성실한 직업인으로 만이라도 인정 받았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사람 피부 5cm 찢어진 것 꿰매는 수술이 양복 1cm 짜깁기 기술보다도 인정 못받는 세상에 어느 누가 감히 의사라고 교만을 떨 수 있겠습니까?
평소 존경하는 스승, 선배 의사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깃발을 휘두르며 길거리로 나서는 모습을 보는 전공의들의 마음은 더욱 착잡합니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소아과 여의사가 머리를 깎는 모습을 보았던 그 `3류 의사'의 마음은 더욱 참담합니다.
사건있기 며칠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신증후군과 폐혈증으로 호흡부전에 빠진 3세된 남자아이가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었는데 토요일 오후 7시경, 환자상태를 보기 위해 중환자실에 들렀을 때 환자의 침대 모서리를 잡고 잠들어 있는 그 `3류 의사'를 보았습니다.
`저 친구 어제도 당직했는데…' 아마도 산소농도측정기의 수치를 쫓다 잠든 모양입니다.
저는 그래서 그 `3류 의사'를 사랑합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급하면 약간 말도 더듬지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3년이 지나 전공의 2년차이면서 1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고, 3일에 한 번씩 당직을 서야하고, 중환자가 있으면 퇴근도 못하고 밤새 지켜야 하면서도 한마디 불평 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해도 걱정할 겨를 없이 몸으로 부딪치면서 사람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그 `돌팔이'를 그래서 나는 사랑합니다.
이종국[인제의대 일산백병원 소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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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환자에게 주어진 권리만큼 의사에게도 환자를 거부할 권리는 주어야
서로 인내심을 잃지 않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일방적인 인간 관계에서는 한쪽의 일방적인 폭력이 난무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워낙 불완전한 동물이니까.
의사도 환자에게 거부당해 망하듯이
환자나 보호자도 그들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거부당해봐야한다.
그래야 의료 시스템이 유지가 된다.
모든 행위는 그 행위를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행해져야한다.
그게 전쟁이나 재난때가 아닌 평상시의 상식이다.
세상 모든일은 다 상대적이다. 다만 그상황에 맞는 처신을 하느냐에 따라 대우를 받는것이 상식이다.
인간의 존엄이 높고 낮은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인간이면 당연히 알아야할 기본 지능이다.
내가 당하기 싫은 짓은 타인에게도 하면 안된다.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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