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오늘의 출근길은 긴장의 시작이었다.
막내 등교 시키면서 효진이를 학원 시간에 맞춰 보내고 내가 출근 해야하는데 순서가 헷갈린다.
차로 가면 좋겠지만 눈길이 미끄럽고 또 이런 기회에 버스타고 가면서 효진이가 고생좀 해봐야
엄마가(우리집 슈퍼우먼) 학원에 라이드 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것 같다는 잔머리도 있어 그냥 걷기로 했다.
막내 등교후 멀리서 손인사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오늘따라 안온다.
모자가 없는 난 귀가 떨어질 것 같은데 빈 택시만 유혹하며 앞을 자꾸 지나간다.
‘그냥 택시잡고 가서 내려주고 출근할까?’
‘아니야, 고생좀 시켜봐야해. 이런게 산 교육이야’
마음속에서 수십번 망설이는데 추위에 대비한 효진이의 의상을 보니 고생은 오히려 내가 더 하는 것 같다.
기다리던 4434번이 와서 타고 나란히 앉아 가는데 못한 숙제하느라 정신 없고 난 옆에서 기분좋게 쳐다본다.
‘ 저런 것이 없어서 다행이야...'
버스에서 내려 학원샘 아파트로 가는데 발아래 밟히는 눈소리가 좋다.
수십년전 양수리, 에버랜드, 여의도 윤중제 등지에서 나던 소리와 똑 같다.
-사각 사각-
사람은 바뀌고 세월도 한참 저 아래로 흘러갔는데 귓가를 맴돌아 마음으로 스며드는 소리는 여전하다.
그래서 와인이 인기인가 보다.
나폴레옹이 맛보던 그 맛을 지금도 우리가 느낄수 있으니 말이다.
웬일로 항상 거부하던 팔장을 허락하고 얌전히 아침 식사용 과자를 먹으면서 같이걷는다.
안그러면 자기가 넘어질까봐서 겠지만 그래도 간만에 큰딸과의 눈길 데이트는 황송하다.
스마트폰 사직좀 찍자는 내 부탁을 매몰차게 거부하면서 학원 시간에 늦었다고 뛰어 들어가는데
그래도 뒤 돌아보면 미소 보내준다.
'자식 많이 컸네 남자 마음 조절 할 줄 도 알고. '
오늘도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감사한다.
정해진 내 인생 행복총량 중 일부인 오늘의것을 제정신으로 마음껏 음미해야겠다.
눈온 다음달인데도 참 한가한 진료실이다.
2012.2.1
( 제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영국 해변 피서객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