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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2014년 중국 미션을 마치고 (2)

인생에 중요하다는 멘토가 내겐 몇 분계시다. 그 중에 여수 애양 병원 김 인권 원장님, 삼성의료원 정형외과 박 윤수 교수님 그리고

이번에 같이 중국 광저우로 가서 많은 배움을 준 김 용정 교수님이다. 그분들은 각각 내 인생에 있어서 시기별로 중요한 가르침을 주셨다.

 


김 용정 형님과 나의 만남은 참 재미있다. 내가 고3 때인 1982년에 모교 졸업 선배로서 인생 진로 조언을 해주러 오셨었다. 우리는 서울의대

선배니 큰 기대를 하고 모였는데 막상 그 선배 하는 말은 세상의 모든 것은 초월한 선비처럼 혹은 모든 것을 삐딱하게 보는 염세주의자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대학이 휴교령 내려지는 암울한 정치 상황이어서 그랬을 수 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가정사도 참 기구했다.) 아무튼 인상깊게 한 이야기가 “ 세상 별것 없으니 공부도 다 필요 없다” 는 것이다. 참 황당하긴 했지만 내게는 왠지 호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선배의 직속 후배가 되고 싶어 열심히 했지만 인연이 달라 다른 학교 의대로 입학하고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내가 결혼하고 정형외과를 전공하면서 우연히 정형외과 학회에서 뵙고 첫인사를 직접 나누곤 또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약 10년인 지나

성남에서 개업하고 있는데 차병원의 척추외과 교수로 오셔서 그 동네의 여의도 동문 의사들이 모여서 딱 한번 식사를 했었고 또 그것이 끝이었다. 그러다가 미국 의사되기 위한 공부에 관심을 갖으면서 준비를 하는데 책에 김 용정 선배님의 글이 실려있는 것을 우연히 봤다.

선배로서의 경험담을 올린 것인데 지금 미국에서 의사하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중이셨다. 참 반갑고 신선했다. 내겐 도전이었다.  
                                                                            ( 올해 미션에서 수술할 환자들)


우리나라에서 현상 유지만 하고있어도 의대 교수로서 존경받고 생활하면서 잘 지내실 수 있는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다시 바닥부터 (아무 자격증 없이) 시작하고 계셨다. 그런 어려운 과정 속에서 신앙심도 깊어지신 것 같았다. 미국에서 의사 자격증 시험 준비에, 의료 기사

하면서 생활비를 벌며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허무맹랑한 계획이다. 누구도 나이 40살에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특히 자녀 두 명을 두고 할 짓이 아니다. 하지만 용정 형님과 형수님은 그렇게 살고 계셨다. 그러다 미국의사 시험(USMLE 시험) 에 합격하셨고 뛰어난 다수 논문의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에서 정형외과 전문의 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전문의 자격증을 인정받게 되었다. (2004년에 미국 법이 바뀌어서 가능했던 일이며 다른 동료들이 다 Dr.Kim 을 위한 법이라 했다 한다. ) 그리고는 초일류병원인 HSS를 거쳐서

미국 최고의 의과대학인 컬럼비아 의대에 스카웃되어 소아척추외과 교수의사로 재직중이신지 벌써 수년째다.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을 당당히 이룬 것이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본인도 본인이지만 이런 과정을 묵묵히 따라와주는 형수님이 대단하다고 본다.)


                                                        ( 2년전 수술받은 아가씨. 수술후 애인이 생겼다함.)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