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날마다 출퇴근을 걸어서 하고 있다. 화사한 꽃구경도 좋지만 벚꽃이 피고 지는 전 과정을 보는 것이 참 좋다.
올해도 때를 맞춰서 멋지게 벚꽃들이 태어나 자태를 뽐낸다. 언제나 그렇 듯이 아름답고 화사한 것은 보기좋다. 좋을 뿐 아니라 보는 이들에게 원초적인 기운까지 넘치게 해준다.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호감갖는 것은 자연스럼 현상이지 이것을 괜히 죄로 치부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죽었거나 혹은 제대로 살고 있지 않는 남자일 뿐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살내음이 좋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좋다. 피어나는 청춘의 발광하는 피부가 멋지고 터질듯한 몸매의 아름다움과 근육질의 야성미가 좋다. 이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일 뿐 결코 교양없는 감정은 아니다. 공자님 말씀에 <나이 40이이면 불혹>이라했는데 이건
학문을 연마한 이성의 숭고한 성취가 아니라 그냥 자연적인 신체의 변화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말고 ^_^) 나이들어 세월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조용히 미소짓는 노년의 주름도 아름답다. ( 대책없이 울면서 떼쓰는 아이나 젊음의 가치를 훼손하면서 자학을 하는 청춘들 그리고 과거의 자칭 상식에 도취해있는 노인이라면 그것은 예외다. )
하지만 평범한 인생에 있아사 기승전결의 구분이 잘 가질 않는것이 문제다. 더욱이 패자 부활전도 간혹 멋지게 나타난다. 그럼 사람은 언제까지 욕심을 가져야할까? 아니 언제쯤 자신의 자리를 후배에게 내 줘야할 까?
(이번 20대 선거에서 정동영이 자신의 고향인 전주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해서 간신히 이겼다. 하지만 상대가 더민주당의 후보로 자신의 비서관 출신이다. 아무리 정치는 배신의 연속이라 하지만 이는 결코 이긴 것이라 볼수없다. 국회의원 뱃지는 땄을지는 몰라도 수많은것을 잃었다.)
잘 나갈때와 물러설 때를 구별 못하면 사람은 추해진다. 추해진다는 것은 그 만큼 어려워 많은 이들이 실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노인들의 중언부언하면서 진지하게(?) 늘어 놓으시는 푸념덩어리들이나 (함무라비 법전에 기록되어 있다 듯이) 요즘 젊은이들 버릇 없다는 기성세대의 불평은 아마 인류 탄생 이래 계속 반복 되어온 현상이며 미래에도 계속 지속될것이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것이 물러날때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이성적인 판단능력인데 그것은 너무나 상대적이다. 아마도 가능한 즉흥적으로 결정할 뿐 생각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 록 실수하기 딱 좋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아닐 것이다'라는 같은 착각이 무서운 것이다. 주위에서 떡고물로 사는 감정없는 하이에나들때문에 자신의 판단이 흐려진다. 물론 극히 일부에서는 진정한 존경심으로 그런 대접을 받을 수 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드물다.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 처럼 비장한 결단이 없는한 사람은 영원한 영웅이 될 수 없다.
혜민 스님 말씀 대로 자신이 손해 본 것은 절대 잊지 않으면서 자신이 혜택 본것은 너무
쉽게 잊는 것이 인간이기에 무슨일을 결정할때 < 내가 조금 손해 본다는 선> 에서
멈추는 것이 결국 서로가 손해를 안보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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