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가 물러날 때 일까? 신이 허락한 내 인생의 과정중에서 지금 어느 시점을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지금 다루는 의술의 수준은 솔직히 극히 평범할 뿐이다. 환자의 아프고 괴로운것을 고치는 것보다는 오히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수준의 의업을 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으나 그 만큼 의료인으로서의 내 위치는 많이 낮아졌다는 것이 사실이다. 나 이외의 대체 가능한 의사는 사방에 널렸으니 말이다.
< 타이타닉호 마지막 오찬 메뉴판 >
한때 나도 수술을 많이 하는 의사로서 대접을 받고 살았는데 이젠 과거의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 다시 할 수 있어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에서의 병원 경영을 이해하게 된 지금 망하지 않으려면 교과서대로 할 수 없다는것을 알고 있으니 수술은 아예 안하는 것이 더 속 편하다. 수술 하면 할 수 록 손해니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검사와 소모품을 써야하는가? 그러기 위해 얼마나 감언이설로 환자를 대해야하는가? ( 대한민국의 왜곡된 의료 시스템은 언젠가 크게 무너질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병원 운영과 무관하게 월급만 받으면서 앞만 보고 살았던 순수한 시절이 가장 행복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내가 원장이 되면 더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가려운곳을 치료해 줄 수 있는 평범한 의사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오히려 많다. 정형외과 적으로도 수술이 필요한 경우의 환자는 약 20% 정도다. 그러니 대부분의 정형외과 환자는 내 영역 안에 있다. 큰 병은 그런 사소함에서 시작되는것이기에 작은병을 치료하는것이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수술은 더 좋은 시설의 더 유능한 의사에게 가면 되는것이다.
어차피 소 한마리가 모든땅을 다 경작할 수 는 없는법이니까.
의료인으로서 살아가기 힘든 요즘에 젊은 의사들이 강하게 요구하듯 '60 넘은 선배 의사들은 가만히좀 계시라'는 불만 섞인 항의는 옳지 않다. 물론 그들이 최신 의학을 더 많이 숙지하고 최신 수술에 숙달되어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 그 이상의 무엇이 분명히 있다. 학문적으로 뒤쳐짐에 대한 변명인지 모르지만 의료인은 나이들 수 록 그 만큼의 가치는 분명히 있다. 단 환자에 대한 자애 자비심이 소멸되어 간다면 그 의료인은 나이를 불문하고 양심껏 의업에서 물러나야한다.
나이들어서 의료업을 하지 않으면서도 불법으로 면허증만 빌려주고 용돈 받아온 원로 의사들이 메스컴 타면서 처벌 받게 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까울 뿐이다. 의사 선배가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답답하다. 다들 한때 나라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인데 이렇게 추하게 결말을 맞이하니 말이다. 아무리 합당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물러날 때를 한참 놓친 것은 본인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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