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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7번째 해외 진료


고교 동창 한석훈원장이 나와 전화통화로 병원 안정되면 꼭 같이 티벳에 진료 봉사 가자고 약속하고 1시간 후에 심장 마비로 세상 떠난지가 벌써 7년이다.  석훈이를 보내고 인생의 허무함에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것은 미루지 말고 해마다 한가지씩 하자 결심했다.

그때 바로 인터넷을 뒤져 가장 빠른 해외 봉사 계획을 보고 참가한 것이 지금의 사단 법인 ‘열린 의사회’다.

그 이후로는 되도록 무슨 일이든지 가치있는 기회가 오면 미루지 않고 일단 해 보게 되었다.

 (순간의 판단 미스로 존경하는 지인의 추천으로 아프리카 케냐 병원에 3주일 파견나가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마 평생 후회될 것 같다)

 


 첫 해외 진료지인 중국 우루무치로 가서 참 황당한 경험 많이 했다. 추운 날씨 탓에 거의 6개월 이상 옷을 벗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 몸을 진찰 하느라 하나씩 벗기는데 힘도 들거니와 무슨 냄새가 그렇게 독한지 코로 숨을 쉴 수 없어서 입으로 쉬면서 계속 진찰 했다.

모든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다. 의사들을 처음 만나 본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열악한 상황에서 정형외과 의사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한계에 답답해하면서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곳 의료진들에게도 그나마 내가 아는 얄팍한 의료지식을 서로 안되는 영어로 상의하면서 전수해주려 했다. 또한 그런 곳에서도 선교활동하는 한국인들이(통역봉사자들) 있는 것이 대단했다. 사실 평범한 많은 이들의 생각과 같이 나 역시 딸랑 1주일의 진료로 도대체 무엇을 해 주는 것일지 황당해하면서 이것은 결코 봉사가 아니라 자기만족일 뿐이라 생각했다.

                                                                       ( 악취가 진동하는 진료실 )

 

그래서 다음해는 베트남으로 애양병원의 수술 봉사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2000만원 이상 되는 고가 수술들을(인공관절수술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싼 의료 천국이다 ) 무료로 해준다 하니 처음 계획 했던 환자가 갑자기 바뀌는데 나중에 보니 공산당 간부 지인들이었다해서 황당해했었다. 그리고 존경하는 김인권 원장님과의 대화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수술후 당연히 발생될 수 있는 합병증을 이런 곳에서는 쉽게 이해 해주지 않아 아무리 여러 건의 수술을 잘해도 단 한번의 합병증으로 그곳에 수년간 힘들여서 터를 닦아온 선교사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된다한다. 이런 것을 보면 꼭 수술을 해주는 것 만이 또한 능사도 아닌 듯 하다싶었다. 특히 정형외과적인 수술은 뼈를 다루기 때문에 수술 후 저치에 문제가 생겨서 골수염으로 악화되면 정말 수술 안 한 만 못하는 상황이 된다.
우리나라에서야 그 이후 합병증 처치 방법으로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지만 말이다.

 

                                                           ( 프랑스 식민지 시절 만들어진 베트남 군 병원 ) 

 


  다음해는 오지인 몽골의 광산으로 갔다. 그곳은 의사들을 만날 일이 없었을 것으로 보고 여러 가지 선물할 옷가지등 내 나름 준비해서 갔다. 울란바토르 도착 후 별자리 보면서 사막을 달리는 15시간의 비포장 짚차 운행으로 환자 보기전에 내 허리 망가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곳은 광산인 만큼 젊은 사람들이 많아 생각보다는 한가한 진료였다. 그래도 제대로 씻지 못하면서 지내다가 결국 마지막날 귀국 비행기 타기 위해 공항 도착해서야 화장실에서 세수하는 열정으로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었다.

 

                                                                                  ( 고비사막 질주)

 

                                                                         ( 환자 치료용 몽골 글씨 )

 

                                                                              ( 고비 사막의 화장실 )


 그 다음해는 인도로 가게 되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봉사정신을 고취 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사업의 일환으로 현대 자동차에서 주관하는 사회 환원 성격의 “Happy move “행사다. 여기에 열린의사회의 일원으로 동참했다. 150여명이 되는 젊은이들과 함께 간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단장으로서 긴장되는 출발이었다.
인도 첸나이를 거점으로 많은 곳을 순회 하면서 젊은이들과 진료봉사를 했다. 지금까지 가본 곳 중에서 가장 열악했다. 또한 진료 이외 봉사 활동으로 ( 주민들 위생교육, 화장실 공사, 대한민국 전통 공연 등) 바쁘고 힘들게 지내면서도 그곳에서 기쁨을 찾는 많은 젊은이들을 보고 나 역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이런 멋진 젊은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니 기뻤다. 그리고 헤어질때 그들이 의료진들에게 전해준 편지는 많은 감동을 주었고 여성 의료인들은 눈물을 많이 보이곤했다. 집에 돌아와 내가 보여준 그 편지를 본 아들은 나보다 더 자극을 받고 공부에 정진한 끝에 결국 원하는 대로 의대로 진학하고 다음해 아들도 인도로 ‘Happy Move" 에 동참하고 왔다.

 

                                                               ( 학교에서 보건 교육 중인 해피 무브 학생들 )


그곳에서 현대 자동차와 같은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체가 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사업상 수익을 내는 경제활동일 뿐이겠지만 그또한 대한민국을 드높이는 엄청난 애국 행위를 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말만 화려한 정치꾼들보다 소리없이 일하는 수많은 그들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믿는다. 최소한 인도 남부 첸나이 지역의 수천만의 인도인들은 한국을 영원히 희망과 감사의 나라로 기억할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행복한 삶의 자극을 줄 수 있는 의료행위를 하는 내 자신에게 해외 진료 봉사에서의

각인된 목표를 갖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진료 대기중인 아이들 . 저들은 대부분 영양제 비타민 사탕때문에 줄서있다 )


의료 행위는 단 몇 일만에 효과를 걷을 수는 당연히 없다. 극히 예외적으로 뼈를 다루지 않고 합병증 요소가 적은 피부를 다루는 성형수술로 구순열( 언챙이 ) 수술해주는 것은 아주 좋은 경우이나 대부분은 나쁘게 보면 단순히 자기 만족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 자신들이 혜택 받고있는 ( 공기처럼 느낌도 없이 ) 우리나라 기준으로 색안경을 끼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 뿐이다. 해외에서 진료봉사 혜택받는 이들은 평생 처음 의사 만난 사람도 많고 또한 자신이 갖고 있는 병을 알고 대한민국 봉사자와 의료진들의 친절을 평생 기억할 것이다. 또한 이일에 동참한 자원 봉사자들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 국민의 희망인 젊은이로서 엄청난 가치의 자극과 감동을 받는 체험이었다고 본다. 절대 자신의 상황만을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면 안된다.

 

                                                          ( 사진찍기 엄청 좋아하는 인도의 아이들과 )

 

                                                           ( 진료 빨리 봐달라는 떼쓰는 사람. 세상 어디나 다 같다.)


이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의료 봉사이다. 단순히 치료하고 약 몇 주일 치 주는 것만이 해외 진료가 아닌 것이다. 아직은 다른 조건으로 열악한 타국에 들어가 젊은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시킬 만한 것이 없다. 의료 봉사 행위가 그런 감동울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인도는 한번 더 젊은이들과 다녀왔고 그 이후에는 라오스를 다녀왔다.

 

                                                     ( 철다리로 등교하는 라오스 학생들, 저 다리 통행료를 받는다 )


 

내일이면 스리랑카로 떠난다. 7번째 해외 진료다.
그곳에서 왕복 시간을 제외하고 6일간 진료하는데 여전히 한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준이 아닌 그들의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결코 폄하 될 수 없는 행위라고 자부한다.
이번에도 같이 가는 자원 봉사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나역시 사소한 일상의 반복에서 사치하게 지쳐가는 내 마음을 다시 추스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직 필리핀이나 태국 이디오피아등 가야할 곳이 많지만 의료업에 종사하면서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사실 7년 전에 비해서는 해외 진료 봉사를 받아주는 나라 입장에서 갈 수록 까탈 스러워 진다. 몇 년 안에 갈 수 있는 나라는 아프리카 밖에 안남을 것 같다. 그만큼 다들 잘 살게 되어간다는 것이니 다행이다. 아무튼 더 강화되어 진료행위를 위해 입국도 못하게 되기 전에 체력 안배와 생업을 잘 조절해서 가능한 많이 다녀와야겠다.
이번 스리랑카는 왠지 고생 좀 할 것 같은 느낌인데 이것도 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잘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가는데 3번 오는데 4번 비행기를 갈아타니 녹초될듯하지만 같은 돈내고 비행기 많이 탄다 생각하자.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주는 나의 가족과 내 병원의 환자분들 그리고 나를 아끼는 모든 지인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에 최선을 투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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