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친구의 멋진 공방생활을 보고 부러웠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주말마다 3년 가까이 지방에가서 공방수업을 듣고 이렇게 혼자 자립해서 제자를 두고 가르칠 수 있는 위치까지 오길 10여년. 집의 지하를 공방으로 만들어서 여가생활 ( 곧 주업이 될 수준 )을 하는 성실함과 예술적 감각이 부러웠다. 작품 하나하나가 다 예술적이었다. 부인도 보자기 접기나 켈리그래피를 교육한다니 부부가 다 예술적 감각이 있는듯 하다. ( 이친구 같은 아파트주민으로서 학창시절에는 얼렁뚱땅이었는데? ㅎㅎㅎ )
귀국하자마자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공방을 찾아 시작했다. 서울 시내는 기대도 안하고 주변 도시로 물색을 했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친구에게 추천 받은 그분의 용인시에 있는 공방으로 정했다. 이러면 도로에서 주말을 완전히 반납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서울 시내에 공방이 있을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최근에 강남구 논현동 소재 공방을 또 차렸다는게 아닌가? 이것 저것 재지않고 그냥 저질렀다. 최소한 내가 오가는 시간이 절약되니 너무나 반가운 일이었다. 바로 문자로 몇번 오가고 찾아뵙고 초급반을 시작했는데 수업비보다 ( 초급 12회 수업 ) 준비물 구입하는 비용이 더 비싸다.( 100만원을 훌쩍넘는다. 이 돈이 아까와서라도 좀 오랫동안 배워야할듯하다.) 구입하는 과정중에 목공 재품은 아직도 일본것이 우리것보다 좋다니 역시 원조의 가치는 불변인가보다.
( 참고로 일본 대패는 당기면서 사용하는데 그 이외의 세계 모든 지역 대패는 밀어내면서 작동한다. 물론 우리것은 일본것과 같다. 일재시대 상황이 여전히 유지되는것을 보니 조금은 한심하다.)
첫날와서 일정 간격으로 톱질만 하루종일 하는 과정을 시작으로 꾸준히 단계를 밟았다. dove tail 만들어 조립하고 어느정도 수준이되니 보석상자를 만들었는데 oil 바른 후 신데렐라처럼 멋지게 변하는 나무의 모습에 만하게 되었다. 철물과 다르게 약간의 실수도 왠만하면 수정 과정으로 깔끔하게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이 가능한 나무의 매력이 좋았다. (그래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최선을 다 해서 수정하면 결국에 보기 좋은 작품이 되는거다.) 무서운 톱날들의 기계소음과 두려움도 많이 적응되었다. (그래도 그동안 손가락 절단 환자들을 많이 봐왔으니 절대로 방심은 금물 )
그러던것이 바로 몇일전 같은데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금요일 저녁마다 가기 싫은 몸을 이끌고 이곳에 와서 아무 생각없이 나무를 다듬다 보면 정신이 맑아진다. 일종의 불멍 효과이다. 10시 넘어 집으로 갈때는 온몸이 근육통이지만 정신은 참 맑았다. (역시 난 육체노동 스타일인가보다.) 더럽게 보이던 창고에 먼지 쌓인 나무 판들을 기계로 손질하다보면 화사하게 드러나는 이쁜 속살과 향긋한 냄새가 나를 놀라게 한다.(아니 이런것이 먼지와 떼 속에 숨어있었다니...) 사람도 다듬으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나도 다듬어보면 이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녹슨 쇠도 다듬으니 숨겨졌던 광채가 드러나던데 말이다.
이제 초급반 12주과정 마무리하고 다음주부터 중급반 12주과정시작. 중급에는 두가지 타잎의 의자를 만든단다.
한번 갈데까지 가보자. 나중에 다시 하더라도 일단 경험은 가치있으니까. 그래 무조건 시작해보는거다.
나무는 계절따라 수축 팽창을 하기에 나사로 고정하더라도 팽창하는 쪽은 ( 나이테의 폭 방향) 여유를 둬야한다. 이것이 나무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