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복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지만 사실 알고보면 공짜가 참 많다. 그저 자기의 처신에 따른 결과가 다를 뿐 성실하고 현명한 사람은 공짜로 큰 혜택을 많이 본다. 상술의 하나로 결국 이득을 취하는 경영 기법이겠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는 기분 좋게 받아간다.
백화점에서 이벤트 공짜 준다고 호객행위하고(분위기에 절대빈손으로 귀가안한다), 박람회 와서 공짜로 건강검진 받고(유료 입장료), 핸폰 공짜로 받고(월일정요금제가입), 수능생을 위한 공짜 피부관리( 옵션 왕창 추가), 전자 기기 수입후 가족 사진 공짜 촬영권( 결국 앨범하나 만든다) 대형 할인점에 공짜 선물 줄서서 기다리다 추가로 더 사는 꼴이지만 아무튼 사람은 누구나 공짜를 좋아한다. 공짜차량 준다는 행사에 자신의 신상 명세 적어 넣으면 결국 그 정보를 타 회사에 팔거나 사용해서 더 큰 이득을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하면서 추점상자에 적어 넣는다. 결국 자기의 시간 낭비와 정력 낭비 인데도 좀 싼 가격의 것을 사고자 많은 출혈을 감수한다. 그게 평범한 사람이고 그런 부류를 노리는 기업가는 사방에 널려있다. 21세기식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나 역시도 공짜를 무척 좋아하는 부류이다. 특히 대형할인점 가서는 하나 더 공짜로 준다는 말에 필요없는 이유를 만들어가면서 구입하고 아내에게 혼난다. 하지만 로또는 잘 안산다. 그 많은 숫자중에 기껏 1~2개 맞추는 내 특유의 불운 때문이다. 남들은 한줄에서 2~3개 맞춘다는데 난 기껏 전체 30개 숫자중에 1~2개 맞춘다.솔직히 이렇게 운 없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연말 지역의사회 송년회는 가능한 꼭 가게 된다. 과거 성남시 의사회 회원으로 근무하면서 송년회에 참가해서 제일 비싼 대상을 한번도 아닌 두 번이나 탔던 경험 때문이다. 그날도 모든 추첨이 다 끝나고 대상만 남아 그냥 집에 가려는데 마지막으로 호명된 번호가 내것이었다. 그 순간 깊숙한 곳의 교감 신경이 자극되면서 온 몸의 감각 기능이 화산 폭발을 일으키듯이 나를 자극했다. 잠시의 혼미상태이후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그런 행운이 내게 온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태연한 척 하면서 약간의 감사 멘트를 하고 표정관리 하다 차 안에서 환호성을 지르면서 신나게 돌아왔다. 구입하려했던 큰 모니터를 집에 허리 펴고 가져가니 가족들이 다 엄청나게 신나했다. 그래서 아이들도 의사 송년회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이후엔 별 운이 없다가 3년전 서울 강남으로 병원을 옮겨 소속이 강남의사회로 바뀌니 달라진 것이 몇 가지 있다. 일단 평균 의사 연령대가 높다. 성남에서는 주로 회원 연령대가 내 나이나 젊은 사람들로 평소의 모임도 아주 많지만 무엇보다 모였다 하면 활기차고 시끄러웠다. 그리고 선물도 약간은 조촐한 수준에서 서로 소주 나누면서 왁자지껄 즐거웠다. 그런데 이곳은 내가 젊은 축에 속하고 분위기도 조용하며 술은 맥주도 먹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저 분위기를 위해 와인 한잔 정도이고 대신 선물 수준은 정말 강남 답게 엄청나다. 그래서 더더욱 집사람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참가하는데 세 번째인 올해도 꽝이다.
참가 회원 가족들은 호텔의 큰 홀에 경품 추첨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다가 끝나는 순간에 바로 우루루 빠져나간다. 집행부의 단체 인사가 있다고 해도 신경 안쓰고 우아하게 홀 밖으로 나가버리는 멤버들을 보면서 참 수준 낮다 싶으면서도 나처럼 경품 보고 오는 부류가 꽤 된다는 동질감에 조금은 위안이었다.
올해는 똑똑한 막내 수진이까지 합류에서 퀴즈를 맞추는데 도저히 넌센스 퀴즈는 모르겠고 일반 순준 높은 상식 퀴즈도 손 들 수 없었다. 그나마 손 들 수 있는 것은 기회가 다른 테이블에 있었다. 일종의 상스런 ‘욕‘이 답인 상황이 왔는데 하필 마이크들고 있는 요원이 내 옆에 있어서 오직 선물을 받기 위해 내 입으로 창피를 무릎쓰고 답을 말했는데 참 처량하더군.
정확한 발음으로 해주셨다고 칭찬아닌 칭찬을 하는 사회자가 미웠다. “씹쉐끼~” 그래도 열쇠고리 하나 받아 수진이 좋아하니 그것으로 됐다.
참 수진이도 하나 발표해서 우산을 받았다. 선물에 대한 집념은 부모 닮아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 잡고 답을 말한다.
오페라 부부 관람권, 골프 가방, 화장품, PMP, 영화 가족 관람권등 좋은 선물들이 넘쳐났는데 다른 주인 찾아가는것을 우리는 올해도 그저 눈앞에서 처다보기만 하고 왔다. 올해로 세 번째의 참가인데 항상 연쇄고리,우산, 체중계, 썬블럭 등 골라서 기본만 받는 우리를 집사람도 한심하다 한다. 그래도 다 끝나고 같은 장소에 장식되어있는 트리 앞에서 사진 찍는 매년의 행사 속에 우리가 건강하게 참가할 수 있는 것에 깊이 감사하며 내년을 또 기약한다.
영화 ‘말 할 수 없는 비밀’의 주인공 두사람이 다정하게 연주하는 장면을 수 없이 봤는데 그런 연주 곡 형태를 ‘연탄곡’ 이라 하는줄 누가 알았나. 수없이 영화 봤으면서 그걸 못맞췄다고 혼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 공짜 기운도 이젠 거의 사라지려나 보다.
하긴 내게 그런 복까지 있으면 그건 세상 불공평한 것이지.
이렇게 귀한 가족들이 내옆에 건강하게 있는데 말이다.
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