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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왕따 현상에 대한 낚서

왕따의 대비책
요즘 청소년들의 왕따로 인한 자살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면서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오늘 신문에는 가해자를 따로 가르치는(가두는?) 대안학교를 만든다는 것인데 참 한심한 발상이다.

전국의 학생들을 다 모아 기숙사 생활 시키는 예산은 어디서 나고 수용하는 법적 근거는 있는지 또 그런 상황에서 부모나 본인이 자퇴를하고 검정고시를 보던지 하겠지 과연 그 학교에 입학할 일이 있을까 싶다. 또 교사는 수급이 가능할까? 월급을 올려서? 교육자로서의 양심을 자극시켜서? 말만 잘하는 전교조 교사들도 안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 수준이 이정도밖에 안되는지 한심할 따름이다. 과거 청송 감호소와 다를 바가 뭐가 있겠나 싶다.

 그럼 과연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그 해결책을 찾기 전에 먼저 원인을 생각해봐야한다.
먼저 왕따라는 것은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특정인들 괴롭히면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사회 병리적인 퇴보 현상이다.

이런 행위는 국소적으로 과거에도 있었으나 현재와 같이 다수의 청소년들이 별 죄의식 없이 행하고 있다는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들이 성인이되면 더욱 심각한 사태가 발생되리라는 것은 뻔하다.

일단 그 원인은 가정에 있다고본다. 핵가족화이 되면서 가정 내에서 이루어져야하는 사회생활의 기초교육이 결핍되고 있는 것이다.

부모는 생업에 정신이 없고 자녀들은 폭력적인 오락에 빠져 사고를 굳게한다. 아니면 사교육에 허우적 거리면서 우정,사랑,정의 등의 사치스런 사색을할 여력이 없다. 배고픔 보다는 폼나게 살고자하는 착각을 일으키게하는 메스컴의 홍수속에서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과거보다 훨씬 조숙해지고 몸과 마음의 변화에서 나오는 열기를 해소할 방향을 못찾는 것이다. 또한 부모의 과거인생에서 뿜어 나오는 아지랑이 같은 업보에 전염되는 면도 강하다고 본다.

불행히 자살을 선택하는 학생도 시작은 비슷하다. 다만 운 나쁘게 그 다수에 포함 되지 못한 것 뿐이다. 사자에게 잡혀 먹히는 수천마리의 누루떼 중에서 단 하나로 선택되는 것은 이유가 없다. 뭔가 있어야할 것이 없는 그런 능력 부족이 아닌 그저 운이 나빴고 그것이 운명일 뿐이다. 개성을 인정 못하는 분위기가 문제이니 피해자에게는 절대 문제는 없다.
단순하게 당사자가 약해서 생긴 개인적인 일이라고 수이 넘기면 필연적인 결과가 다가온다.
독일 영화중에 착실한 대학생 남녀 20명을 일정한 장소에 가두어두고 교도관과 죄수역할을 분담한 후의 인간성 변화를 기록한 것이 있다.

권력을 갖은 부류는 갈수록 포악해지고 죄수역의 부류는 갈수록 비굴해지는 내용인데 인간 사회는 누구나 다 그렇다고 본다. 지역의 도둑 고양이를 없애기위해 죽이기만 하면 이웃에서 다시 몰려오니 성공할 수 없지만 정관수술 시켜 종족번식을 못하게 하면 서서히 일정하게 개체수가 줄어드는 법이다.

 

 이렇듯 왕따문제는 일방적으로 격리 시킨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일단 모든 구성원의 시작점인 가정부터 손을 봐야 한다.

결국 부모도 분명한 법적 죄값을 치루게 해서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한다.

그들의 무관심이(혹은 관심의 부족)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학교의 선생님 역할은 그 다음 문제다.

군대에서의 문제 역시 가정에서 시작되어한다. 절대 군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화살을 남에게 돌리지 말고 생업에 정신이 팔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탓하지 말고 자식을 둔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책임을 다 못하는

성인 부모에게 그에 맞는 죄값을 치루게 해야한다.
출산율 저하가 우려 되어도 그 수준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도 세금 한푼 안내는 경제활동인구가 39%나 된다. 그들은 사회에 대한 의무보다 혜택을 더 많이 받고 있는 부류다. 일시적인 혜택은 폐자부활을 위해 중요하나 만성적이 나태함에 빠진다면 문제가 다르다.
세계 최강의 나라라는 미국이 과연 그 시민 의식 수준도 그런가 의심스럽다.

비록 적은 인구라도 평균적인 사고 수준이 높은 시민 사회, 시민 국가가 앞으로 필요할 것이다.


 또한 학내에서 체육 활동을 강화시켜 호신술도 가르치면서 청소년 자신들의 방어능력과 체력 보강에 어른들은 신경 써야한다.

첫 시작이 중요한 것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이웃사랑에 대한 정신 교육 못지 않게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자신이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역설적으로 가해자를 줄이는 법이다.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를 다 같이 지킬 수 있다.
이 모든 상황이 근본적으로는 인간사회의 의식주가 어느정도 해결되어 생기는 선진국형 부작용이다. 그 기본이 흔들린다면 이런일도 없다.

자연 환경이 아름다운 곳일수록 자살율이 높은 법이다. 그러니 막을 수 없는 것은 막으려하지만 말고 받아들이되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자신의 주위부터 고쳐나가야한다.

그리고 책임을 각자 질만큼은 져야 한다.


청소년들 사이의 가해자를 격리 시키는 우매한 발상을 하는 분들은 정말 이젠 뒤로 물러나서 연금타고 손주들을 정신적으로 보살피면 좋겠다. 그것이 그들의 책임이다.


2012.1.5

 


+++ 신문 기고용 멘트 ++

 

왕따의 대비책

요즘 청소년들의 왕따로 인한 자살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면서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오늘 신문에는 가해자를 따로 가르치는(가두는?) 대안학교를 만든다는 것인데 참 특이한 발상이다.

전국의 학생들을 다 모아 기숙사 생활 시키는 예산은 어디서 나고 수용하는 법적 근거는 있는지 또 그런 상황에서 부모나 본인이 자퇴를하고 검정고시를 보던지 하겠지 과연 그 학교에 입학할 일이 있을까 싶다.

또 교사는 수급이 가능할까? 월급을 올려서? 교육자로서의 양심을 자극시켜서?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무리한 방법이라 생각이든다.

 

그럼 과연 원인과 해결책은 어떤것이 있을 까? 먼저 왕따라는 것은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특정인들 괴롭히면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사회 병리적인 퇴보 현상이다.

이런 행위는 국소적으로 과거에도 있었으나 현재와 같이 다수의 청소년들이 별 죄의식 없이 행하고 있다는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들이 성인이되면 더욱 심각한 사태가 발생되리라는 것은 뻔하다.

일단 그 원인은 가정에 있다고본다. 핵가족화이 되면서 가정 내에서 이루어져야하는 사회생활의 기초교육이 결핍되고 있는 것이다.

부모는 생업에 정신이 없고 자녀들은 폭력적인 오락에 빠져 사고를 굳게한다. 혹은 사교육에 허우적 거리면서 우정,사랑,정의 등의 사치스런 (?) 사색을할 여력이 없다.

배고픔 보다는 폼나게 살고자하는 착각을 일으키게하는 메스컴의 홍수속에서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과거보다 훨씬 조숙해지는데도 몸과 마음의 변화에서 나오는 열기를 해소할 방향을 주위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불행히 자살을 선택하는 학생도 시작은 비슷하다. 다만 운 나쁘게 그 다수에 포함 되지 못한 것 뿐이다.

개성을 인정 못하는 분위기가 문제지 피해 학생에게는 절대 문제 없다.

독일 영화중에 착실한 대학생 남녀 20명을 일정한 장소에 가두어두고 교도관과 죄수역할을 분담한 후의 인간성 변화를 기록한 것이 있다.

권력을 갖은 부류는 갈수록 포악해지고 죄수역의 부류는 갈수록 비굴해지는 내용인데 인간 사회는 누구나 다 그렇다고 본다. 

 

 이렇듯 왕따문제는 일방적으로 격리 시킨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일단 모든 구성원의 시작점인 가정부터 살펴 봐야 한다.

결국 불행을 유발하는 학생의 부모도 분명한 법적 책임을 물어서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한다.

그들의 무관심이(혹은 관심의 부족) 이런 사태의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학교의 선생님 역할은 그 다음 문제다.

군대에서의 문제 해결 방법 역시 가정에서 시작되어한다. 절대 군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화살을 남에게 돌리지 말고 생업에 정신이 팔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탓하지 말고 자식을 둔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책임을 다 못하는

성인 부모에게 그에 맞는 죄값을 치루게 해야한다. 그래야 그 과정에서 자라는 청소년이 진정한 성인으로 성숙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라면 국가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고 성숙시켜 나라의 큰 재목으로 키워야한다.

국가의 미래 생활인을 무조건 부모들에게 떠넘길 일이 아니다. 어설픈 사상이나 복지 운운하지말고  실속있는 정책을 시행하길 바란다.

 

 또한 학내에서 체육 활동을 강화시켜 호신술도 가르치면서 청소년 자신들의 방어능력과 체력 보강에 어른들은 신경 써야한다.

첫 시작이 중요한 것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이웃사랑에 대한 정신 교육 못지 않게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역설적으로 가해자를 줄이는 법이다. 자신을 지키면 우리를 지킬수 있다.

 

이 모든 상황이 근본적으로는 우리사회의 의식주가 어느정도 해결되어 생기는 선진국형 부작용이다.

그 기본이 흔들린다면 이런일도 없다.

그러니 막을 수 없는 것은 막으려하지만 말고 받아들이되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자신의 주위부터 고쳐나가야한다.

그리고 책임을 각자 질만큼은 져야 한다.

 

아름답게 피지 못하고 가슴아프게 떠난 어린 영혼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마음 깊이 기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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