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버릇이 되어 성탄절이면 카드를 보낸다. 몇 번 보냈는데 답장이나 반응이 없는 경우는 내 주소록에서 지운다.
성탄 카드 준비는 나의 내면을 정화하면서 한해를 마무리하는 엄숙한 과정이면서도 불필요한 대인관계를 정리하는 숭고한 절차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그냥 값에 비해 양호한 카드를 보내거나 평소 장애인 단체에서 보내는 한지의 수묵화를 잘 보관 했다가 연말에 쓰곤 했는데
좀 지나서는 가족사진 잘나온 것을 여러장 뽑아서 성탄 카드에 붙여서 보냈다.
그러다가 약 4년전 우연히 태국에서 지인이 보내준 사진 카드가 너무 좋아서 우리가족도 그 디자인을 무단 도용해서(^_^)
가족 사진 카드 메일로 만들어 보낸지가 4년째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4장을 연달아 만들어보니 우리가족의 변천사를 알수 있어 좋다.
아이들이 성숙해 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비교된다. 아직 우리 부부의 변화는 잘 모르겠지만 곧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나타날 것을
각오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서 30여장 되면(운좋아서) 내 관에 넣어달라고 해야겠다. 아니면 화장후 유골함에 같이 넣어달라하던지. 내 얼굴만 나오면 자식들이 신경 안쓸 것이나 기어히 가족사진으로 만들어서 관심갖게 해야겠다.
이번에도 가족들의 1년간 찍어온 사진들을 각자에게 받아서 투표로 사진을 골라 추려본 것이 총 15장이다.
서로 다 실물보다 자기가 잘못 나왔다고 하소연하지만 솔직히 내가 보기엔 있는 그대로 나왔다. 내가 좀 늙어 보이게 나온것만 빼고....
이렇게 만들어 또 메일로 카드를 보냈다.
이번에도 파악해서 몇 년째 반응이 없는 지인은 주소록에서 제외 시킬 생각이지만 성격상 확실하게 조사할 꼼꼼함도 없긴 하다.
하여간 귀한 내 가족들의 안부를 무안하게 하는 분들은 굳이 나와 관계할 필요가 없고 또 그런분들에게 내가 무조건 보내는 것도
오히려 실례일 수 있다. 사회 골든벨까지 치신 막내 삼촌께서 핸드폰에 저장된 1200여명의 지인들중에서도
막상 당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100명도 안됐다 하셨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다.
법정 스님께서도 새해마다 수첩의 주소록 정리하면서 불필요한 인연을 줄여가며 삶을 간소화 시키셨다 하니
나와 닮은 점이 있으셔서 영광이다.
아내는 내가 고려시대의 고리타분한 사람이라 하는데 유전이니 어쩔 수 없다. 내가 정말 싫은 것 몇가지가 있다.
이 나이에도 공짜로 먹는 나이 앞세워 함부로 반말 하는 것, 문자 메시지 씹는 것, 받기만하고 보답할 줄 모르는 것, 조폭 의리를 강조하는 것, 기득권을 가지고 무조건 상대를 무시하는 부류등 이다.
이번에도 메일 보낸후 수신 확인을 했는데 열어보고도 반복적으로 답장이 없는 분이있다.
확인 메시지를 보내면 바빠서 답장 못했다 한다. 나도 바쁘니 내년부턴 제외다. 나도 많이 변했고 또 변해야 할 것 같다.
일방적인 성의는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자. 내가 내 최선을 다하고 기다려보자는 것은 결국 내 이기심일 뿐
상대를 진정 배려하는 마음이 아니다 싶다. 모든 관계에는 시절 인연이 있는 법이다.
억지로 이어갈 것 없다.
내년에는 좀더 홀가분하게 세상을 살아가자.
바람이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자.
결국 세상은 나 혼자다.
그래도 신을 섬기는 마음은 어설프더라도 감히 절대 잊지는 않을 것이다.
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