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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기억의 잔상

내 삶의 잔상
누구에게나 한때는 있다

정형외과 전문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한때가 있었다. 레지던트 마치고  정형외과 전문의사가 된후 전임의 과정까지 다 마치고 내가 주치의가 되어 보란듯이 수많은 환자들을 내 책임하에 내가 수술치료를했다. 수많은 골절 환자 뼈 잘 붙도록 치료 해주고, 한쪽 다리 짧아 잘 못걷는 소아마비 환자 뼈를 잘라서 다리길이 늘려주기도 하고,  하지 마비로 걷기 힘들어하는 뇌성마비 환자의 인대를 보강 전이 수술해서 걷게 해주기도하고, 관절염으로 통증 심한 사람 인공관절 수술로 허리 펴고 등산까지 하게 잘 걷게 해주고, 다쳐서 인대 끊어진 사람 관절경으로 수술해줘서 다시 힘차게 뛰게도 해주곤 하던 십년 가까운 시절이 있었다.
수술후 나와서 땀에 젖은 수술복 입은채로(TV의 한 장면처럼) 보호자에게 잘 된 수술 설명해주고 감사의 인사를 당연하게 받았으며
회진하면서 만족해하는 환자와 기쁜 미소를 주고받곤 하던 멋진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그분들의 감사의 진심어린 표정이 얼마나 내 삶에
귀한 것이었는지 뒤늦게 깨달으면서 살아왔다. (뇌성마비 환아의 보호자가 걷게되는 아들을 보면서 내게 눈물로 감사했는데 난 수많은 수술로 피곤에 찌들어 싸늘하게 대했던 것은 아마 평생 죄송할 것이다 ) 내게 편지 선물도 보내던 착한 소아환자 보호자들은 이미 한참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젊은 환자 뿐 아니라 연세 지긋한 보호자들에게도 좋은 선물도 받곤 했는데 지금은 다 60이 훨씬 넘은 노인들이 되어계시거나 돌아가신 분들도 많을 것 같다.   
                                                       ( 어느 화장품 회사의 광고판. 세월 좋은 의사다.^_^)


그렇게 살아오던 내가 경영적 신체적 관리적등 여러 여건으로 조금씩 수술을 줄여가다가 5년 전부터는 완전히 수술 없이 외래만 보는
정형내과 의사가 되었다. 물론 상처를 봉합하거나 골절환자를 다시 정복해서(뼈를 맞춰서) 석고 치료하면서 수술 없이 치료되도록 하는등
정형외과 전문의사로서 기본적인 치료는 내 연륜으로 잘하고 있긴 하지만 이제는 허리 굽히는 감동의 감사를 받지 못하고 그냥 가려운 곳
긁어주고 나서 눈웃음 정도의 감사를 받는다.

한때는 내 현실에 불만족하여 심적인 갈등이 심했으나 이제는 (이제야) 속이 편하다. 퇴근하면서 병원 불끄고 문닫으니 병원의 새벽전화
없어 편히 잘 수 있고 상식없는 (교통사고 보상에 혈안된) 환자의 입원 요구를 받지 않아서 좋고 환자 수술 후 사소한 합병증으로도
맘고생 안해서 속이 편하다. 비록 배운 것 제대로 써먹지 못해서 정형외과 스승님께 죄송하고 의사가 곧 될 아들에게 외과의사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이것도 내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내 미천한 의술을 믿고 나를 찾아주시는 환자분들이 있고 지척의 대학 병원에 수술 환자를 전원 보내면 전문 교수님들께서 뛰어난
실력과 좋은 설비로 잘 치료해주시니 내 병원 환자에게도 좋은 일이다. 이제는 수술 기구도 잘 모를 정도로 모든 수준이 내 전성기때보다
발전했으니 그것들은 그분들에게 맡기자. 나는 내 길을 가면 되는거다. 과거에 내가 보던 그 노땅이 이제는 내가 되어있다.

내세울 것이 없어 아픈 사람 앞에서 목에 힘주지 말자. 나도 언제 아픈 사람이 될지 모르는 법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내 운명의 삶을 보면 뭔가 내가 앞으로 가야할 새로운 길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아직은 그 실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그저 그것이 보일 때까지 오늘도 어제처럼 꾸준히 그 자리에서 잔머리 굴리지 말고 내 수준의 덕을 쌓아간다. 언제나 그랬듯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근거없는 동경을 오늘도 해본다.


                                                                                 ( 기억의 잔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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