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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우의 동서남북
우리가 醫師에게 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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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2년 반 전 폐암 수술을 하셨다. 종양은 1㎝ 미만 작은 크기였지만 왼쪽 폐 3분의 2를 잘라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잘 부탁드립니다"밖에 없었다. 의사는 왜 작은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폐의 3분의 2를 잘라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내과 개업의인 고교 동창한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자세히 말해주었다. "야, 너 같으면 문제가 있는 데만 도려내겠냐? 당연히 그 주변을 왕창 떼어내는 거다." 어쨌든 수술은 잘됐고 경과도 좋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완치(完治)를 기대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폐암은 2년 뒤 뇌로 전이됐다. 폐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는 "이럴 수가!"라고 말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의외의 결과였던 것 같다. 그 의사는 곧이어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신경외과 의사에게 넘기겠습니다."
신경외과 의사는 뇌 수술을 하자고 했다. 수술하면 가능성이 있고, 안 하면 곧 돌아가신다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머니 좌뇌(左腦)에 길게 칼을 찔러 종양을 떼어냈고, 스테이플러로 봉합했다. 여든 살 어머니가 로보캅이 되었다.
뇌 수술을 한 뒤 5개월 만에 뇌종양이 재발했다.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는 "수술은 잘됐지만 재발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우리 집 음식은 맛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식당 주인의 말처럼 들렸다.
의사가 하는 일은 무엇이고, 의사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 최고 수준의 병원에서 일하는 그는 "항암제를 투여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안 먹으면 죽어. 죽는다고." 나보다 어린 그가 우리 어머니한테 말했다. "○○○씨! 괜찮아요? 항암제 먹을 수 있어요?" 어머니는 "네" 하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 의사라는 직업인이 내 어머니의 생사(生死)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의 뺨을 때리거나 종아리를 걷어차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의사에 대한 마지막 신뢰를 걷어차 버렸다. 의사인 친구에게 물었다. "의사들은 환자들을 막 대하라고 가르치냐?" 그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아마도 병(病)과 환자를 객관적으로 대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해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의사 진료실 문 앞에는 10분당 5명씩 환자 명단이 적혀 있었다. 누가 누구를 원망할 수 있으랴.
의사 친구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는 내과 전문의여서 어머니의 모든 증상을 설명해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왜 그 병원에서 그렇게 처방했는지, 왜 그렇게 말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환자와 환자 가족이 원하는 것은 의사가 어떻게 치료하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이다.
어머니는 지난 12일 돌아가셨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모든 것이 잘되었고, 이제 나는 간다. 잘 살았고, 너희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했다. 나는 어머니의 죽음과 그 의사를 떠올리며 직업(職業)에 대해 생각해 본다. 왜 나는 이 직업을 선택했는가. 나는 과연 이 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정말로 한 점 부끄럽지 않은가.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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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사에 대한 반론
우리가 전문가에게 바라는 것
나는 현직 의사이자 암투병중이신 부친이 입원치료 받고 있는 환자의 보호자이다. 담당 교수를 만나 충분한 설명 듣기 힘들어도,
생업에 종사하면서 간신히 내어 간 면담 약속시간이 늦어져도, 입원중 마음이 불편한 일이 있어도 가능한 참고 환자를 위한 치료에만
전념을 하고있다. 그것은 내가 약자라서가 아니라 현재 열악한 한국 의료 시스템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들의 고충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그들의 눈높이로 가능한 이해하려 하고 있어서다.
기자님께서 쓰신 글을 보니 -나는 그의 뺨을 때리거나 종아리를 걷어차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의사에 대한 마지막 신뢰를 걷어차 버렸다.-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의료직업을 생사여탈권을 쥔 거대한 권럭으로 착각하고 거들먹 거리던 의사들도 요즘은 많이 정화되었다. 물론 사회 지도층 분들이
자신들의 눈 높이에 맞추어 대접 받고자 하면 한없이 불만이 생길 것이다. 환자 치료에 100% 장담하는 의사는 치기와 만용일 뿐이다.
아무리 권력을 갖은 사람이라 해도 상대에게 친절을 건의할 수는 있어도 강요할 수는 없다. 상대에게 문제점을 제시하려면 그 못지 않게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려는 성의가 있어야한다. 문제가 있으면 절차를 거쳐 항의를 하면 되지 폭력을 참은 것이 자랑은 아니다. 특히
메스컴의 칼자루를 쥔 전문가일 수록 객관성이 필요하다.
담당 교수 만이 의사가 아니기에 설명이 필요하면 따로 수련의사 면담을 요구하면 된다. 그들은 시간을 내서 충분히 설명해주고 간호사들
역시 의료인으로서 기본적인 것은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다. 무조건 배의 선장에게만 모든 설명을 듣고자하면 곤란하다. 물론 의료인중에도 도덕적 소양이 부족한 이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솔직히 의료실력은 그것과 무관하기에 일반 의료인들도 어쩔 수 없이 참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
어느 전문 직업군이나 다 마찬가지 일 것이다. 거대 일간지에 실릴만한 한점 부끄럼 없는 기사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하루였다.
우리 정형외과 박 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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