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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내 버릇

퇴근때 까지 한시간 남는 6시 이후는 한가하다. 나를 기다리는 모임도 별로 없다.
간혹 막판에 몰려서 환자가 오는 경우가 있는데 경영하는 입장에서도 별로 달갑지 않다.
급한 환자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만족스럽지만 서두르지 않다가 뒤늦게오는 경미한
환자는 치료후에 할증으로( 오후 6시 이후에는 30% 인상된다) 진료비 몇백원 더 내는 것을 불만 삼는다.
그럴땐 나의 인내를 시험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어제 해진 어두운 창밖을 보면서 퇴근후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문으로 편안한 분위기의 조용한 환아가 보호자와 같이 왔다.
다행히 응급 환자가 아니다. 어제밤 손에 연필이 찔렸었는데 혹시 조각이 남았나 해서 보호자가 데리고 왔다.
깨끗한 상처에 학생도 멀쩡하고 조각도 다 찾았다한다. 방사선 안찍어도 될 것 같은데 보호자가 원하여 찍었는데 큰 조각이 보인다.
나중에야 알아보니 보호자는 잘 모르는 상황으로 학생이 조각을 찾았다고 했단다.
아마 혼나는 것이 겁나서 그랬겠지만 하여간 역시 환자말은 다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됀다.
방사선 확인하길 잘했다 설명하고 간단한 수술 준비를 한다. 그나마 퇴근 30분 전이니 고맙기만 하다.
마취하고 편하게 5mm의 stab wound로 good morning appe처럼 머리 쏙 내밀고 나올 연필 조각을 찾는데 나타나질 않는다.
할 수 없이 1cm incision을 더 시행하고 찾는데 지방층을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
결국 방사선과 가서 방사선 촬영하면서 계속 위치를 확인하는데 방사선상 잘 보이는 것이 도대체 어대에 숨어있는지 점점 짜증이 난다.
학생은 겁먹고 시야확보는 잘 안돼고 직원들과 손발은 안맞고 참 참 참... 난 또 괜히 직원들에게 화풀이한다. ( 항상 미안혀 )
이러다 못찾고 큰 병원 보내면 말이 아닌데 처음에 찾을 수 없수도 있다는 말이라도 할걸
(원래 C-arm 없이 지방층의 이물질 찾지가 쉽지는 않다)하는 후회하면서 계속 찾는데 영 안나타난다.
별것 아닌 위치라 너무 방심했다.
잠시 딴 생각중 KO펀치 맞은꼴이 될 상황이다.
좀더 째고 집중을 하면서도 끝까지 참고 또 참고 안 하려다가 막판에 할 수 없이 기도를.... 했다.
참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일요일엔 늦잠만 자고 놀러만 다니다가 꼭 필요할땐 치사하게 찾게된다.
착한 보호자와 환자를 위해서도 여기서 내손으로 끝내길 바라면서 그냥 치사하게 굴었는데 이건 웬걸 쏙 ‘good morning’ 하면서
조각머리가 저 깊숙한 곳에서 내민다.
하늘에서는 자꾸 내 버릇을 잘못 길들이는 것 같다.
아무튼 이래저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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