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외과 의사로서 한참 날릴때가 있었다.
정형외과 전문의 따고 전임의 거친후 종합 병원에서 분야 책임자로서 한 4~5년간 수술 참 많이 했다. 수술 건 수도 수술 시간도 수술후 환자의 회복 속도에도 자신감이 넘칠때였다. 일반 골절 뿐 아니라 소아마비나 뇌성마비 인대수술, 발 기형수술, 관절경 수술, 인공 관절 치환수술 등 척추 빼고는 비교적 다양하게 했다. 의료사고의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정말 겁 없이 수술 많이 했고 수술 실 안에서 괜한 객기로 험한 말도 간혹 했다. 그게 멋인줄 알았던 치기어린 때가 있었다.
그러다 개업하여 의사와 경영자 역할을 병행하면서 배 밖에 나왔던 간이 들어가고 기브스했던 목은 잘익은 벼이삭처럼 숙여지고
조용히 큰 수술 없이 그냥 국소 마취로 가능한 것만 한지 수년째다.
이젠 피 냄새도 기억이 없고 큰 수술 환자가 오면 환자에 대한 치료 방법보다는 경영인으로서의 머리 회전이 더빠르게 돌아간다.
큰 병원으로 후송 전원 시키는 것이 사실 환자에게도 이로운 행위이기도 하다. 요즘같은 낮은 의료 수가에 굳이 시설 좋은 종합 병원에서 수술 안받을 이유가 없다.
어제는 양측 무릎 수술 했다는 환자가 walker라는 보조기 짚고 진료실을 걸어왔다.
난 얼핏보고 관절경 수술 한 사람이 참 엄살 피우면서 걸어온다 싶었는데 이야기들어보니 양측 무릎 주위 뼈를 자르고 쇠판 고정하는
큰 수술을(open wedge ostotomy) 한 환자이다. 내가 수술 했으면 1주일 입원, 3주는 부목 고정 그리고 보조기 착용하에 보행시작일텐데
이해가 안갈 정도로 수술 상처가 작고 수술후 1주일도 안됐는데도 담당 교수의 허락하에 직접 걸어왔다.
주치의도 내가 과거 십수년전 간혹 그 병원 들릴 때 레지던트였던 젊은친구다.
상처 소독 해주면서 너무나 궁굼해서 방사선 확인해보자 하고 찍었다.
피부의 상처는 3cm인데 속에 들어있는 쇄판은 10cm가 넘는다. 코끼리를 냉장고 넣는 기술이 실현됐다.
좋은 각도로 단단히 고정되었고 모든 금속판과 나사의 위치와 길이 모두가 다 정확하다.
수술 상처도 좋다. 수술 시간이 어느정도였는지 모르지만 모든 상황이 완벽한 진정한 예술 작품이었다.
간혹 이런 신기한 수술후 사진을 볼때마다 내가 의사로서 과거 인물이 (한마디로 퇴물)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의료 수준과 젊은 의학도들의 눈부신 향상이 나를 돈만 내면 되는 상석으로 조금씩 밀어올린다.
내가 그 나이때 수술을 기피하는 중년 정형외과 선배의사들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나의 미래와 동일하게 추호도 생각안해봤다.
그런데 그 자리에 내가 어느새 얌전히 앉아있다.
그래도 난 지금의 내 위치가 좋다. 물론 전문 병원을 세워 외과 의사로서 지금도 멋지게 수술하면서 살고 있는 내 또래도 많으나
의료에 관한한 내 달란트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경영자이자 의사로서 어쩌다 하는 수술에 대한 욕심보다 자주 하는 의사를 소개해주는 것이 환자에게도 좋다는 믿음이 강하다.
솔직히 내 수준을 떠났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척추 변형 교정 학회를 잠시 둘러봤다.
미국에서 오신 김용정 선배를 만나기 위함이었는데 척추 외과의 수술 수준이 정말 눈부시게 발전했고 토론하는 많은 의사들이 거의다
나보다 젊은 분들이다. 외국에서 초대받아 오신 척추의사는 미국 서부의 유명한 분이라는데 내 또래의 키 작은 동양 여자다.
과거 애양병원에서 조금만 더 참고 견뎠으면 어땠을까 싶은 후회도 사실 하지만
지금의 내 위치를 만들어준 모든 지나온 과거에 그저 군말 없이 감사한다.
내가 하고싶은 일을 마음 고통 없이 편한 마음으로 하고 사는 지금의 내 자리에 감사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우리나라의 의료 미래를 짊어진 젊은 의사들을 위해서
장례식장 운영이나 기타 비급여 고가 검사로써 병원 적자를 매우는 세상이 아닌
상식적인 의료 행위가 제대로 대접을 받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길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석유가 나오거나 혹은 형편없는 의료 수가의 의료체계에 길들여진 국민들이 정신 차려야 하는데
어느것이 더 가능성이 클지 알 수가 없다.
2012.1.31
나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