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의 ‘아름다운 동행’을 읽어보니 참 아프고 아름다운 인간사를 느낄수 있는 감동이 전해졌다.
게슴치레한 눈에 말도 어눌해서 그냥 문학풍의 내과적인 내또래 (준)의사로 봤는데 이제보니 정말 제대로 된 大 일반외과 의사였다.
그를 다시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군데군데 비어있는 어설픈 나의 과거를 생각하게 된다.
나도 흰가운 입은 이후 20여년 동안 많은 환자들을 겪으면서 그에따른 추억 또한 적잖게 생겼다.
내가 정형외과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응급 상황이 적기 때문이다. 사람따라 성격 차이겠지만 그런 응급 상황 속의
원초적인 자극에 취미가 없었다. 사람의 직접적인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 평생을 긴장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금전적인 이득의 시대적인 경향을 따라 선호도가 높은 곳으로 간 것 또한 사실이다.
교과서상 수술의 순서는 가슴 ->머리 -> 배-> 팔 -> 다리 순서라고 되어있다.
심장이나 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머리 문제가 의미가 없고 다음의 배 문제가 해결되어야 사람은 살아간다.
그 다음은 삶의 질 문제로 넘어간다. 그래서 GNP 2만불이 넘어가면서 인기를 끄는 것이 정형외과이고 그 이상이 될수록
성형, 피부과가 각광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는 이것도 좀 빨리빨리 나타나긴 한다)
인체가 생존하는데(vital organ) 중요한 순서라고 봐도 될 것이다. 모든 응급 상황이 처리 된후 정형외과적인 치료를 하면 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단순하지만 생과 사의 갈림길을 지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에서는 최고의 전문 과목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서 과거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은것에 많은 후회를 하게 된다.
분명히 의사로 살아가면서 나를 감동 시킨 경험도 있었고 나를 사회인으로 단련시킨 고통도 있었다.
그런데 잘 생각이 안난다. 이것이 내 삶의 자욱인데 내가 기억 못하면 누가 하겠나 싶다.
밤마다 응급 수술 하면서 피곤에 쩔어 환자의 고통보다 인간적인 짜증이 앞서기도 했고 나를 울리는 수많은 감동의 순간들도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기억을 더듬어 과거 속으로 들어가 잠시 추억을 둘러봤다.
가장 기억나는 것이 이O애 학생이다. 너무 내가 고생해서 이 친구만 이름이 기억난다.
자동차 사고로 우측 다리가 거의 절단 된 상태로 왔다. 다른 대학병원에서 절단을 권유 했지만 기어히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부모님때문에
정형외과 과장님의 엄명이 있었다.
‘ 무조건 다리를 살려내라’ 그 한마디로 나는 수개월간 반 죽게됐다.
밤마다 1시간여의 소독 치료를 하는데 다른 환자의 열배의 시간과 힘이든다. 동료와 같이 해도 마찬가지다.
항상 잠이 모자란 상태에 주어진일을 하면서도 그 학생 소독이 끝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수술이 늦게 끝난 날은 어쩔수 없이 밤 12시를 넘어 소독하게 되면 다음날 회진할 때 얄미울 정도로 확실히 과장님께 하소연한다.
“ 너무 늦게 소독하니 잠을 못자겠어요”
여학생의 어린 마음에 그랬겠지만 그럼 밥도 못먹고 치료했던 나는 바로 강한(?) 지적을 받고 결국 다른 일보다 먼저 해줘야 하는데
그게 말 만큼 쉽지 않아 속으로 많이 얄미웠다. 그것도 몇일 못가서 다시 새벽에 깨워 소독하기를 수개월.
뻔히 절단으로 끝날 것 같은 상처를(절단 수술하면 몇일도 안걸려 해결되는데) 희망도 없이 소독을 반복 하면서
여전히 뼈만 보이는 가는 새다리는 사용할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염증 없으면 뭣하나 어짜피 자를 다리인데 왜 고생을 서로 하나 싶었다.
그러다 금속으로 외부 쇠 고정한 상태에서 여러수술을 몇번 하고 퇴원하여 병원 외래로만 다녀서 내겐 저절로 잊혀졌다.
상처는 회복 되었지만 어짜피 가는 다리라 외부 쇠 고정 장치 없이는 사용 못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군대 마치고 여러 병원 거친 7년후 내가 다시 그 병원에서 근무하는데 그 아이가 반갑게 인사 왔다.
간호학과 학생으로 멀쩡히 목발 없이 걸어다니면서 간호학 실습 중이었다.
물론 조금은 불편해 했지만 절단을 안해서 목발이나 의족 없이 걸으니 참 신기하면서도 그 아이가 대견했다.
‘ 얼마나 힘든 수많은 나날을 견뎠을까?’
다리 상처를 보고 싶었지만 차마 보자는 말을 할 수 없이 그저 과거 많이 짜증냈던 감정들이 한없는 미안함으로 밀려왔다.
친구들과 웃으면서 복도를 뛰어가는 모습이 뿌듯했다.
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사실 좋은일도 많았지만 나를 강하게 만든 괴로운 일들도 적지 않았다.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