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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창피한 불평

월요일은 항상 바쁘긴 하지만 어제는 너무했다. 든든하게 생각했던 개업 원년 멤버 물리치료사가 소식도 없이 떠나버렸다.
그럴 친구가 아닌데 급한 일이 있겠거니 이해하려 해도 용납이 안될 어처구니 없는 무책임함으로 혈압이 또 오른다.
30대 직장인이면 객기부리지말고 사표를 내더라도 후속 직원을 뽑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줘야하는 것이 상식이다.
물리치료 실장에게 남긴 한 장의 편지를 보면 급한 사정이 있는 듯 하지만 그래도 내게 아무 연락도 없이 사표도 없이
그냥 떠나 버렸다는 것이 황당할 뿐이다.
정말 직원들에게는 마음 많이 주면서 잘 해줄 필요 없다는 말이 맞나 싶다.
남자가 혼자 산다고 먹을 것 따로 자주 챙겨주곤 했었는데...
하필 어제가 서울 이전 개업하고 환자내원 수로는 최고 기록 갱신하면서 혼을 뺀 하루였다.

모든 스트레스를 풀려고 저녁밥도 안먹고 운동하러 왔다. 일단 땀을 푹 빼고 싶었다.
항상 그렇듯 아줌마들이 떡 하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통은 30분 하고 자리를 양보하라 하지만 사실 한타임 더 정도는 할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런데 뻔히 뒤에 사람이 기다리는 것을 보고도
1시간 넘어 다시 30분 시작을 교양있게 꾹 누른다. 그러면서 히히덕 거리며 TV 드라마를 계속 보며 걷는다.
뒤에서 기다리는 회원 ( 나를 포함해서 아마 직장인일 듯)들은 허탈하고 화도 나지만 이곳 분위기상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운 좋게 기회가 생겨서 바로 뛴다. 곧 있을 마라톤을 위해서도 뛰지만 땀을 흠뻑 흘려야 오늘의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았다. 처음 뛰고 힘든 20분을 잘 넘기고 달리는데 30분이 넘어서자 직원이 와서 뒷사람을 위해 그만 내려오란다.
내가 내려오는 40분시점까지 4번을 와서 나를 화나게해 왜 갑자기 그러야 항의하니 오늘부터 그렇게 하기로 했단다.
(공고도 없이) 부장님 지시란다.
힘없는 젊은 직원이 뭘 알까 싶지만 그래도 생각이 있으면 요령것 지시를 따라야지 참...회원관리 수준도 회비 수준에 맞게 참 비천하다.

화를 어설프게 내고 이왕 시작했으니 제발 계속 이렇게 유지하라 하고 씩씩 거리면서 나오는데

주위에서 나를 처다보는 회원들의 피하는  눈빛을 보니 뒤늦게 좀 창피했다.
결국 퇴근해 버린 부장과 전화 연결해서 무책임하면서 교양있는 말을 나누고 나왔다.
참고 그냥 ‘그러려니’ ‘어짜피 이렇게 하다 또 흐지부지 되려니’ 하고 내려와 근력운동 하면 되는데
기어히 화를 냈다는 자체가 참 창피한 일이었다.
그동안 쌓인 생각없는 아줌마들에 대한 분노가 치솟은 결과 였고 또한 30분 갓넘어서 달리는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어느 나서기 좋아하는 연장자 중년회원에 대한 항의 뜻도 있었다.

‘기어히 옆의 헬스장으로 옮기리라’ 결심하고 하루를 보낸후 병원 출근해서 아침 9시가 되자마자
환자를 기다리게 두고 가입 문의를 하는데 참 친절하고 좋긴 하지만 보증금이 너무 비싸다.
나 혼자 가기도 미안하니 부인과 같이 가게 된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액수다.
‘ 내가 50인 이 나이에도 가고싶은 곳에 가서 운동하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야하나’ 싶은 자괴감이드는 순간이다.

아~~! 이 하우스 푸어의 괴로움 ~~!!
내 신조인 ‘권리를 만끽하려면 책임을 다해야하한다’는데 맞춘다면 이곳의 책임은 거액의 보증금 납부이고
그것이 불가능하면 권리를 포기하고 그 수준에 맞춰서 조용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잔머리 굴리는 정치인들처럼 위화감 조성한다고 회비를 싸게하라 억지 시위할 수도 없다.

할 수 없이 새 마음으로 다시 그 싸구려 도떼기 시장같은 헬스장에 가서 그냥 운좋게 자리나길 기다리면서 싸이클링이나 해야겠다.
참 한심하고 답답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가보다. 그냥 웃으면서 넘기자. 조금만 더 이번 기회에 나를 다듬어 보자.
얼마나 (아이들 교육땜에?) 집에서 TV를 못봤으면 여기서 그렇게 악착같이 보겠는가 생각하자. 그러려니 하자.
세상은 온갖가지 상황들의 용광로니까 그러려니 하자.
내가 화낸다고 신경써줄 사람 단 한사람도 없다. 집사람도 이해는 하지만 결론은 창피하다 한다.
내가 내 발에 가죽 신발을 신고말자.

참고)
도떼기시장 이란 말은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고 분주하며 시끄러운 곳'을 의미하는데 부산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인
'국제시장'의 전 이름이 바로 <도떼기시장>입니다.    국제시장이 시장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45년 광복과 함께였습니다.   
광복이 되자 일본인들이 철수하면서, 이른바 전시통제물자가 한꺼번에 나와서 돈이 돌기 시작했다.
부평동 공설시장 일대에 각종 물자가 쏟아져 나오니 넓은 빈터가 시장터로써 상설시장이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1948년에는 1층 목조건물 12동을 지어 '자유시장'으로 개명하였습니다.   
8.15광복 후 자유민주주의의 물결이 범람하는 시대적 풍조인지라 자유시장이라 한 듯 합니다. ( 네이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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