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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야기

병상일기 6 ( 재입원 )


 

( 입원 하시기전 어머니가 염색을 해드렸다. 여전히 잘생기셨다.)

 

5월 27일
드디어 다시 입원하시는 날이다. 처음에는 아버지도 싫어하셨지만 지금의 상황은 입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은

아버지도 인정 하신다. 병원 가시기 전에 집에서 목욕 시켜드리는데 자꾸 ‘병원 가는 것이 죽으러 가는 것 같다’ 걱정 하신다. 마지막인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마음도 몸도 많이 야위셨다. 나는 정색을 하고 ‘관장만 하고 컨디션 좋아지면 금방 퇴원 하실 건데

무슨 말씀이냐’고 일언지하에 막아버렸다. (당시에 나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기다리던 담당 교수님과의 면담 후 입원 했다. 그 과정은 간단했다. 교수의 설명도 직원들의 안내도 간단하다. 우리 가족의 마음에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데 바깥 세상은 그냥  단순한 고요함이다. 아버지는 걷기 힘들어 하셔서 휠체어를 갔다 드렸다. 마무 말씀 없이

그냥 타셨다. 처음이다. 자존심 강해서 보호자의 부축도 안 받으시던 분이 이젠 체력의 한계인가 싶다.

일인실의 퇴원이 늦어져서 입원까지 시간이 2시간이나 남았는데 그냥 병원에서 기다린다 하셨다. 30분도 못 기다려서 집에 갔다 오셨던

분인데 이젠 많이 힘드신가보다. 나는 일단 직장으로 가고 해두 삼촌께서 말동무 해주시고 오과장이 같이 옆에서 사무적일을 도와 드렸다.

 

다시 배정 받은 병실은 다행히 그 전 보다 더 좋다. 8층인데 전체가 다 1인실이라서 조용하고 쾌적했다. 복도를 오가는 환자도 적고 조용했다. ( 나중에 보니 말기 환자가 편하게 거치는 장소인 것 같이 간혹 병실에서 곡소리가 나왔다.) 입원하시자마자 병실에서 관장을 확실하게 하시고 많이 좋아 지셨다 한다. ( 나중에 보니 병원의 관장 약은 내가 약국에서 사서 한 것 과는 비교도 안되게 용량이 많다. 세브란스는 관장만 해주는 기사가 따로 있다. 아주 젠틀하게 잘 한다.) 변비의 회복으로 통증도 소실되어 가는데 추가로 진통제인 코데인을 시작하셔서 복통도

호전 되신 것 같다.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하는 것이 확실히 좋은 것 같다. 일단 경과를 봐야겠다.

 

단순히 변비 때문에 그렇게 아파하실 수 있나 궁굼 하지만 이곳 의료진들은 전이된 간의 상태가 나쁘니 암모니아 수치 상승으로 인한 간성

혼수를 걱정하고 있다. 관장을 하루에도 여러 번 할 수 있다 한다. 심지어는 30분마다 하기도 한다니 21세기의 현대의학에도 암모니아 수치를 낮추는 것은 관장밖에 없다는 것이 참 답답할 노릇이다. 하여간 그렇게 입원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저녁에 퇴근해서 뵈니 아버지는 많이 좋아 보였다.

 


5월 28일
어제는 병원에서 같이 잤다. 앞으로도 내가 계속 밤에는 자야할 것 같다. 낮에는 어머니와 숙부님들이 번갈아가면서 간병하시기로 했다. 아버지는 비교적 편하게 주무셨다. 새벽에 닝겔이 막혀서 다시 찔렀는데 (세 번이나) 아침에 기억이 없다 하실 정도로 깊이 주무셨다. 물론 약기운도 있을 것이다. 어쩐히 새벽에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셔서 적잖게 놀랬었다. 기가 강한 아버지의 눈빛이 아니라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초점 없는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진통제의 효과였던 것 같다. 복통도 사라지시고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 회진을 맞았다.

수혈을 권하는데 아버지는 거부하셨다. Hb 수치가 7.0이다. 그동안은 그 나마 8.0 이상이었는데 더 내려갔다. 식욕도 없어서 공기 밥도 반 정도 남기셨다. 일부는 내가 먹었는데 나 역시 식욕이 나질 않는다. 영양제로 커버하기 힘든 상황인 것 같다. 숙부님과 교대하고 병원으로 출근한다. 이런 생활이 반복 되어도 아버지가 좀 호전되셨으면 좋겠다.

다행히 정오까지도 복통은 없다 하신다. 통증 없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곳 의료진들은 아버지 복부 팽만의 원인이 복수가 아니라고 보고

추가 검사도  할 필요가 없다 한다. 하여간 복수가 아니면 됐다. 아버지 눈에 아직 황달 증상도 안 보인다. 얼굴은 여전히 잘 생기셨다.

환자복 입고 병실에 계시니 더더욱 다른 환자들과 비교되게 잘 생기셨다. 피검사 방사선 검사는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다 필요하니 하겠지...

5월 29일
어제는 잠을 설치셨다한다. 죄송하게도 나는 피곤해서 그것도 모르고 보호자 침대에서 잘 잤다. 아버지께서는 내게 엎드려 자는 것이 보기

싫다고 말씀 하시는데 난 이상하게 엎드려 자야 잠이 온다. 코를 골지 않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아직 혼자 걸어서 화장실을 가시지만 자꾸 휘청 거리신다. 오늘부터 24시간 소변을 모아 정밀 검사에 들어간다. 그런데 소변한번

보시는데 10분 이상 걸린다. 연세 드시면 전립선 때문에 잘 안 나온다 하더니 정말 답답할 노릇이다. 그 편한 소변 보기가 저렇게 힘드시니

얼마나 답답하실까 싶다. 정말 세월은 야속하고 병은 원망스럽다.

더부룩한 복부는 오늘 오전에 초음파를 하기로 했다. (어제는 필요 없다더니 오늘은 검사한다하고... 하여간 그냥 이곳 의료진들 하는대로 두고 믿고 기다린다.) 아버지 기력은 여전히 없으시다. 복도 걷는 운동도 싫어하신다. 도저히 엄두를 못 내신다. 화장실 가시기도 힘들어하신다. 2달 전 갑작스런 췌장암 진단받고 환자 같지 않는 환한 표정과 꼿꼿한 허리는 온데간데 없으시고 이제는 완연한 환자의 모습이다. 피부가

가려우신지 계속 긁으신다. 효자손으로 하시라 해도 그냥 벽에 등을 긁으신다.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벽에 긁으신다. 항상 눈 감고 깊은 생각에 계신 듯 말씀이 없으시다. 하긴 지금 이 순간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 피부에 상처 날까봐 옷 위로 긁어드리는데 아버지의 등은 여전히 넓다. 우리 가족을 지켜준 든든한 등이다. 하지만 점점 하나씩 무너져가는 것을 속절없이 옆에서 보고 있으니 정말 안타깝다. 희망이 없는 치료는 고문에 가깝다. 아버지의 고통이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다. 그냥 하루 종일 눈감고 계신다. 하루 종일...

5월 30일
어제 밤에 어머니와 간병을 교대하자마자 아버지가 설사를 하셨다. 순간 귀가중인 어머니께 전화할까 하다가 내가 해결 하기로 했다. 참 난감했다. 아버지도 조용하시다. 관장 후 반응이 없다가 갑자기 설사가 나왔다. 옷을 벗기고 샤워 시켜드린 후 새 옷으로 갈아입혀 드렸다. 침대 씨트도 다 갈아드리니 모든 것이 깨끗하다. 환자 복은 치우고 속옷은 잘 빨아 널었다. 큰 일을(?) 하고나니 아버지께서는 ‘엄마에게 전화 안하고 직접해줘서 고맙다’하셨다. 내심 개운했지만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직접 하시니 내 마음이 아팠다. 그 당당하시던 아버지가 내게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나를 만들어주고 키워주신 아버지로서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이신데...

하지만 약 30분후에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다시 변의를 느껴 화장실로 가시다가 또 설사를 하셨다. 행동이 느리시니 어쩔 수 없이 옷에 다 쏟아버리셨다.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버렸다. 다시 심호흡을 가다듬고 처음부터 다시 해드렸다. 이번에는 화장실 변기에 한참 앉아계신 후 해드렸다. 서로 침묵 속에서 침대로 돌아와 TV 를 켰다. 그 후로도 우리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도 남자로서 참 곤혹스러우실 거다. 내 아들이면 수 십 번 이렇게 해도 잘 할 것 같은데 아버지는 두 번째부터 벌써 힘든 것 보니 역시 내리 사랑인가보다. 대변 묻은 모든 것을 다 빨래를 하고 널어놓으니 마음이 답답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 가슴깊이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말 빈틈 없으신 아버지였는데...
지금 기분이 얼마나 괴로우실까?

5월 31일
오늘 아침에는 기운도 나신듯 좀 더 호전 되셨다. 잠도 비교적 잘 주무시는 듯 하다. 식사를 잘 하신다는 약속을 받고 관장은 안하고 변비

약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아버지께서는 퇴원을 원하시는데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간혹 이상한 말씀도 혼자 중얼거리신다.

오전에 정신이 좀 맑으신 듯 하셔서 전부터 부모님과 상의한 대로 서약서를 쓰기로 했다. 환자 본인 의사에 의해서 중환자실에 가서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 안하겠다는 서약서가 병원 마다 다르다고해서 이곳 병원 양식으로 서류작성을 하려했다. 어머니가 계신 상태에서 주치의

입회하에 아버지가 싸인 하셨다. 주치 의사는 벌써 이럴 필요 없다 했는데 아버지는 평소 생각이라면서 싸인 하셨다. 아버지는 수혈을 포함해서 모든 인위적인 치료는 안하겠다고 하셨는데 주치의사가 혈압 상승 시키는 약 주입이라도 하자 설득해서 그것 하나만 체크 하셨다 한다. 아버지만 이런 서류에 싸인 하시는 것이 죄송스러워서 나도 개인적으로 <사전 의료 의향서> 서류를 만들어 직원 공증 후 싸인하고 형규와 아내에게 사진 찍어서 보냈다. 어짜피 나도 이 육신 모교 의대 해부학 교실에 기부할 것이고 미련 없이 화장으로 떠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는  점심경부터 다시 계속 주무신다.

암모니아 수치도 2배 이상이고 모든 간 기능이 정상이 아니다. 신장 기능도 많이 떨어져서 소변색이 짙고 양이 적다. 당도 400이상 올라가신다. 모든 기능이 점점 그 역할을 못하는 것 같다. 소변보시는 것도 10분 이상 걸리시는 것 보니 전립선도 많이 커진 것 같다. 그래도 아직은

병실 내 화장실에 혼자 걸어가실 수 있다. 아무튼 오늘도 무조건 최선을 다 해 보는 거다. 깊게 생각할 것 없다.

낮잠을 잠시 주무시다 목에 땀을 흘리며 눈뜨시더니 ‘ 내 주위에 죽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면서 놀래시면서 일어나셨다. 악몽일 뿐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이해 하셨나 모르겠다.

암모니아 수치가 계속 오른다. 입원 당시처럼 147 까지는 안 올라가지만 그래도 관장 후 바로 측정하면 50인데 몇 시간 지나면 또 100선까지 금방 올라간다. 관장을 하는 것도 서로가 참 힘든데 식사도 못하시면서 배에 가스가 차니 본인이 너무 불편해 하신다. 거기다 간혹 헛소리도 하시니 옆에 있는 우리가 괴롭다. 그런 모습을 아버지 자신이 아시면 참 암담하실 것 같다. 화풀이는 괜히 어머니에게 주로 하신다. 내게는 그렇게 못하시면서 말이다.
‘주위에서 작당해서 나를 죽이려한다’ ‘일본 사람들은 음식을 맛나게 먹는다’ ‘강릉에는 까치가 많다‘는 등 이상한 말씀을 하시면서 간성 혼수의 초기 증상을 보이신다. 닝겔 꼽은 혈관도 약해서 자꾸 터져서 곤란하다. 일단 가슴에 혈관 삽입 기구를 넣기 위해 키모포트를 신청했다. 당뇨도 300~500으로 조절이 안 되어 먹는 약을 다 끊고 인슐린 만으로 조절하기 위해 타이터 기계를 달고 인슐린 주사 양을 정하기 시작했다.

손끝 당 검사는 24시간 동안 2시간마다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곁에서 울기만 하신다.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 유일한 손자인 형규 돌사진때의 아버지 )

                                                 ( 이제는 의대 본과 2학년생인 형규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신 아버지 )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