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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야기

병상 일기 4 ( 4차 치료 -2번째 cycle- 시작)


4월 21일
약 2주일을 쉬고 오랜만에 병원에 다녀오셨다. 새벽에 나와 함께 가셔서 채혈을 하고 9시에 다시 종양내과 진료 및 치료를 위해 오과장이 운전하고 병원으로 가셨다. 언제나 씩씩하게 걸으시면서 환자티를 안내로 노력하셨다. 피 검사를 하고 병원에서 기다리는 잠시도 싫다고 집으로 가셔서 식사를 하고 다시 오시는 것이다.  모든 것은 다 순조로웠다. 백혈구 수치도 5000 이하에서 12000 까지 올라가셨다.(어제 야외에서 너무 많이 걸으셨나?) Hb은 8.2로 여전히 낮지만 그래도 아직은 항암치료 받으실 수 있는 체력과 여건이 되시기에 다행이다.


오후에 퇴근해서 들리니 아버지 표정이 좋았다. 약 2시간의 4차 항암치료를 받으시고 컨디션이 너무 좋다고 좋아하시면서 오후에는

은행일등 여러 일을 다 잘 처리하셨다한다. 이 정도면 몇 년이고 치료 받겠다 하시니 다행이다. 꼭 암 진단이 오진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실것 같다 하셨다. 일단 무조건 가는 거다. 앞으로...

4월 22일
오늘은 많이 힘들어 하신다. 이번이 네 번째로 반복 되는 일이니 경험상 내일이면 또 좋아지실 것이라 말씀 드렸지만 힘이 없으시다.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하지만 그냥 내일만 생각하자. 오늘 밤에 좋아하시는 동영상을 추가로 만들어 보여드려야겠다. 시간이 빨리 가도록.
이번에 구입한 에쿠스의 임시번호판을 떼고 새 번호판을 달았다. 62모 8699다. 아버지의 쾌유를 기원하면서 99번호를 달았다.

4월 23일
아침에 출근하면서 타워에 들리니 아버지는 잠을 거의 못 주무셨다한다. 어머니도 덩달아 못주무시고 두분다 표정은 힘들어 하시는데

혈색은 나빠보이지 않는다고 말씀 드리니 아버지는 그냥 허허 하고 웃으신다.
내가 아침을 같이 하니 억지로라도 공기 밥 한 공기를 다 드셨다. 저염식으로 같이 먹는 내가 왜 살이 안 빠지는지 참 모르겠다.
오늘 새벽까지 만든 동영상을 보시고 좋아하신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또 회복 되실 것이다. 아마 오늘 저녁이면 확실히 회복 되실 것이라 기대한다.

오후에도 힘은 든다 하시는데 그래도 어제보단 낫다 하신다. 일단 점점 좋아진다면 그것으로 된 거다. 오늘도 하루 종일 내가 만들어드린 과거 추억 동영상을 보셨다. 지금도 전화기 너머로 배경음악이 들린다. 그래도 그렇지 서울대 나오신 분이 책을 너무 안 보신다. ㅎㅎㅎ 나도 그렇게 되겠지? 하긴 나도 요즘은 눈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들이 더 잘 보인다. 그리고 나이 들어 좋은 것은 세밀하게 보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상대의 소소한 단점보다는 크게 보이는 장점만 더 보게 된다면 성숙된 사람이라 하겠지...
나도 오늘은 운동을 해야겠다. 이러다 내 체력이 더 떨어지겠다. 방전되기 전에...

4월 24일
이번에는 오늘 아침 까지도 컨디션이 안 좋으시다. 다른 때 보다 항암치료 후 합병증 반응 시간이 길다.
점점 체력이 떨어 지시나보다. 잘 견디셔야 할 텐데... 오늘은 약이 모자라서 오과장이 병원에 들려 추가분은 타서 갖다 드렸다. 빠른 컨디션 회복을 기원드린다.

4월 25일
어제 오후 늦게부터 조금씩 회복 되셔서 오늘은 많이 좋다 하신다.
점점 회복이 느려지신다. 그래도 항상 적극적으로 생활하시니 참 좋다. 여전히 동영상을 좋아하신다. upgrade 된 것을 빨리 만들어 드려야겠다. 마음이 급해진다.

4월 26일
아버지도 많이 회복 되셨으니 나도 오늘은 좀 운동도 하고 생활 관리도 해야겠다.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회복된 듯 하다. 잠시지만...
동영상을 오늘 마무리 하고...

4월 27일 (일)
오늘 새벽까지 동영상 작업을 했다. 아버지 과거 사진들을 배경음악과 함께 만든 일탄을 너무 좋아하셔서 욕심을 내어 보다 더 광범위하게

자료를 모아서 만들어보자 했다. 첫 작품은 한 시간 짜리 였는데 이것 저것 모아보니 1시간씩 세편으로 총 3시간의 분량으로 늘었다.

다 만들고 재확인해보면 꼭 마음에 안 드는 곳이 있어서 다시 작업하기를 몇 번 반복하다보니 밖은 이미 해가 떠서 환하다.
그래도 재확인하면서 만족할 수 있어 좋았다. 총 3편으로 전체 3시간짜리 작품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붙이고 떠 보니 오전 11시가 넘었다.

오후3시에 라오스 해외 진료를 같이 갔던 지인 결혼식에 참석하고 바로 동영상을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너무 길다면서도 만족하시니 다행이다. 내일 항암 치료 후 소일거리가 또 생겨서 다행이다.

4월 28일
오늘 5차 항암 치료 받으셨다. 항상 그렇듯이 항암치료 받는 날은 오히려 컨디션이 더 좋으시다. 오후에서 막내이숙 부부와 정약용 생가로

드라이브 다녀오셨다.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참 좋은 여행이었다 하신다.
이런 컨디션만 유지되면 주말에 예약한 강원도 콘도에 가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말에는 LA 동생 훈근이가 미국에서 온다.

                                                                                 ( 정약용 생가에서 )
4월 29일
오늘은 신장내과 진찰을 받으셨다. 저염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 하셨단다.
나도 동감이다. 하지만 이미 아버지는 저염식에 적응이 되셨다. 식욕은 당연히 없다.

5월 1일
이번에는 항암 치료 부작용이 오래 간다.
오늘은 노동절이기에 오전 근무하고 최근 개업한 현제 병원에서 간단히 치과 치료 받고 오후 3시경 부모님과 야외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한강을 곁에 끼고 춘천방향으로 달렸다. 봉주르 라는 커피숖인데 정말 사람도 많고 운치도 좋았다. 자전거를 빌려서 노는 가족들도 많고 분위기는 거의 외국 수준이었다. 아버지는 컨디션이 여전히 안 좋으신데 사진찍을때는 꼭 얼짱 각도를 정확하게 유지 하신다. 언제 봐도 참 잘생긴 얼굴이시다. 돌아가는 길에 차가 막혀 속이 불편하다 하시면서 이번 연휴 때 강원도는 못가겠다 하신다.
무리할 것은 없을 것 같다.

                                                                                        (봉쥬르에서 )
5월 3일
훈근이가 미국에서 왔다. 언제나 든든한 동생이다.
우여곡절 끝에 강원도는 나를 제외하고 집사람과 형규 수진이만 갔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향락객들로 10분 거리를 3시간이나 걸려 지나고 있다고 연락왔다. 아버지 가셨으면 큰일 날 뻔 했다. 결국 강원도 도착은 6시간 30분 후인 저녁 9시 넘어서였다.
서울에 남은 우리들은 편하게 이야기 나누면서 하루를 보냈다. 훈근이가 미리 준비한 간장 게장 집으로 가서 외식을 했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것이라 찾아갔다. 비교적 다른 곳과는 달리 덜 짰지만 여전히 드시는 데는 불편함이 있었다.
하루 종일 세끼를 준비하시던 어머니도 편하게 식사 하셨다. 아버지께도 지나치게 저염식을 고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것은 한입이라도 맛 보시라 했다.
훈근이와는 간단히 동네 톨릭스에서 맥주 한잔했다. 얼마전에 준식이과 같이한 코스다.
이제 환상적인 연휴의 시작이다. 오너인 나도 이렇게 일하기 싫으니 월급 장이들은 오죽하겠나? 하여간 나는 일중독자는 절대 아니다.


5월 4일
우리는 점심 식사후 광릉 수목원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예약제로 출입을 시켜서 결국 못 들어갔으나 주변 경관이 좋았고 광릉 분재 공원이란 곳도 비교적 좋았다. 아버지는 주변을 산책 하시고 어머니는 멀리 둘러보셨다. 연휴인데도 펜션에는 인적이 없고 쇠락해가는 노년의 기운이 느껴지는 안쓰러운 공원이었다. 그래도 준비해 놓은 작품들은 참 귀한 것들이라
젊은 시절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하늘도 참 맑다.
강원도에서 보내온 사진들은 참 좋았다. 아버지는 특히 동해안을 배경으로 찍은 손주들의 사진을 보시면서 흐뭇해 하셨다.
돌아오는 길에 멀리 보이는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남기고 집으로 석양을 보며 돌아왔다. 짬을 내서 훈근이와 같이 지금 투병중이신 숙부님댁에 다녀왔다. 얼굴은 많이 좋아보이시는데 침대에서 나오질 못하고 대소변을 숙모님이 해결해주고 계신다. 뇌종양 진단 후 6개월 시한부 인생이 지금 2년째다. 지금 현재 암투명중인 형제가 5명중 세분이다.
경복궁 한식집에서 외식을 했다. 아버지가 아프시고 처음 하는 고기 외식이다.
비교적 고기를 잘 드셨다. 이렇게 간혹 외식을 해야 어머니도 컨디션을 유지하실 것이다.
내일은 훈근이가 예약한 호텔에서의 1박을 할 예정이다. 저녁 후 훈근이와 소주를 마셨다. 간만에 형제끼리 많은 대화를 나눴다.

                                                                                 ( 광릉 분재 공원에서 )
5월 5일
점심을 간단히 하시고 호텔로 향했다. 항상 집안에 계시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간병을 하시는 어머니에게도 변화가 있어야할 것 같아 1박2일 호텔 패키지 상품으로 휴가를 가자는 훈근이 아이디어다. 신라 호텔로 내가 예약을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맞지 않는 상황인것 같아 적당한 수준으로 가까운 역삼동 인터컨티넨털 호텔의 안마 패키지로 바꿨다. 체크인을 하고 싸우나 후 옆 건물로 이동하여 전신 안마를 받았다. 싸우나 실에서의 아버지는 많이 여위셨다. 오랜만에 보는 훈근이는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안마는 무척 고급 스러웠다. 이런 안마를 받고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신기하게도 몸에 바른 오일이 시간이 흐르니 하나도 남지 않고 흡수된다. 아버지도 몸이 개운하다 하셨다.
호텔로 돌아와 조금 쉬고 동네 한식집으로 향했다. 내일이 부처님 오신날이라 봉은사는
화려하고 수많은 인파로 붐볐다. 우리는 곰바위에서 식사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서울 야경을 드라이브 했다. 호텔 로비에서 그 비싼 커피까지 하며 호사를 누리면서 창피를 무릎 쓰고 인증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우리 가족이 제돈내고 호텔에서 비싼 커피 마신 것은 처음이다. 놀랍게도 그 검소한 어머니도 흔쾌히 수긍 하셨다.
저녁은 형제들이 각자 부모님과 따로 자기로 했다. 나는 어머니와 잤는데 10시 되니 바로 코를 고신다. 나도 정신없이 잤다. 항상 아버지 간병하시느라 피곤하실텐데 잘한 선택인 것 같다. 훈근이는 아버지와 좀 대화의 시간을 갖길 바랬는데 아버지도 피곤하신지 금방 주무셨다 한다. 간혹 이렇게 해드려야겠다. 아버지도 아버지이지만 어머니도 참 걱정이다.
멋쟁이 훈근이가 와서 외식도 하고 호텔에서 투숙도 하면서 분위기를 바꾸니 정말 좋다.
어머니도 이제는 좀 쉬실 후 있게 간혹 외식을 해야 할 것이고 아버지에게도 이런 변화가 필요할 듯 싶다. 아버지도 너무 저염식에 치중하지 않으시기로 했다.

5월 6일
아침 조식을 뷔페로 했는데. 식사 가지 수가 많아서 다행히 아버지께서 드실 만한 저염식이 꽤 있었다. 나 역시 푸짐하게 먹었다. 화려한 생활은 역시 즐거운 것이다. 물론 간혹 경험해야 그렇겠지. 식사 후 쉬시겠다는 아버지를 도와 훈근이가 한번 더 목욕을 같이해드렸다.
즐거운 마음으로 체크 아웃하고 우리 집으로 가셔서 며느리가 해드린 점심을 가볍게 드시고 집으로 모셔다 그렸다. 즐거운 여행이었으나 무리했는지 허리가 아파서 나는 다시 운동시설에 가서 운동하고 싸우나를 했다. 정말 부자같은 넉넉한 하루였다. 과거부터 멋쟁이였던 훈근이는 역시 생각이 멋지다. 내가 인정한다.

                                             ( 호텔 로비에서 비싼 커피 시켜 먹으면서 훈근이를 든든하게 보시는 아버지 )
5월 7일
오늘은 6차 항암치료 날이다.
언제나 처럼 아침에 일찍 피검사했다. 이번에는 훈근이도 동행했다. 항상 그렇듯이
항암 치료한 당일은 컨디션이 좋으시다. 저녁에는 훈근이의 주도로 청담동 복어집을 갔다. 집에서 저염식만 하시다가 약간의 조절로 외식을 하시니 부모님 두분 다 좋아하신다. 그런데 내 속이 좀 이상하다. 병원에서 먹은 땅콩 버터 빵 때문인 것 같다. 하여간 훈근이 덕에 평생 먹어보지도 못할 듯한 비싼 복어 요리를 먹었다. ( 내 기준에는 너무 과하게 비싸다.ㅠㅠ 맛도 일반 복어집과 크게 다를것이 없는데 말이다.) 그날 밤새 고생하고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조금 회복이 되었다. 내 평생 처음 있어본 속병이었다. 내겐 역시 서민적인 음식이 맞나보다.

5월 8일
오늘은 어버이날. 아침에 가서 식사를 같이 하려 했는데 밤새 체해서 고생한 덕에 갈 수가 없었다. 나도 나이들었나보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보는 소화 장애다. 항암치료 받는 환자들은 얼마나 힘들까? 오전에 환자 보면서도 메스꺼림과 나른함으로 밝게 대하기가 힘들다.
아버지는 오늘 오후 늦게나 내일부터 또 몇 일간은 이렇게 보내실 텐데 정말 힘드실 것 같다. 하권익 원장님도 진단 받고 항암 치료 중 8개월만에 돌아가셨다는데 ...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고생하셨다는데 ... 계속 이렇게 해야할까?
쓸쓸한 어버이 날인데 오늘 하늘은 참 맑다. 아버지께 꽃을 달아드리려고 샀는데 서로 기분이 이상할것 같아 포기하고 화분을 사서

갖다드렸다. 뭘 이런 것을 샀냐는 어머니의 말씀에 아버지는 한마디 또 하신다. 다행히 아직 그럴 힘은 있으시다.

5월 10일
어제는 훈근이와 진하게 술먹었다. 다음날 고생 좀 했지만 기분은 좋다.
훈근이는 친구 만난다고 또 장소를 옮기더니 새벽 4시에 들어왔단다. 그런 컨디션으로 평소처럼 오전부터 아버지 간병하고 오후에는 처가에 갔으니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저녁에 얼굴 보러 가니 이미 꿈나라 행이다. 내일이면 미국의 집으로 돌아간다.
다시 타워집이 쓸쓸해질 것 같다. 많이 쓸쓸해 질 것이다. 내가 더 자주 전화하고 찾아 뵈야할 것 같다. 그래도 어제 이야기 들어보니 훈근이가 어머니를 많이 편하게 해줬고 아버지에게도 많은 위로와 아주 필요한 강한 조언들을 드렸었다. 내가 못한 말들을 미국식으로 직설적으로

잘 말씀 드렸다. 정말 든든한 동생이다.

5월 11일
점심을 막내 숙부님부부과 같이 하고 오후에 훈근이는 친구 영훈이의 배웅으로 떠났다. 어머니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결국 눈물을 보이신다. 집에서 떠나 보내는 아버지의 표정도 안 좋다. 우리 마음도 아프다.
언제나 헤어짐은 마음을 우울 하게 한다. 특히 미래가 암울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하여간 훈근이는 1주일간 와서 많을 일들을 진하게 벌려놓고 갔다. 아주 잘했다.
저녁 기분이 우울 할 듯 하여 다시 들렸다. 아버지는 내게 말씀 하신다. “ 넌 스팩 쌓을것 다 쌓았으니까 집에 자주 와라” 강한 아버지께서 하시는 참 애잔한 말씀이다.
후회 없이 가능한 자주 집에 들려 아버지와의 추억을 더 쌓아야겠다. 황송하게도 아버지가 나를 필요로 할 때가 있으시니 말이다.

                                            ( 훈근이 귀국하는 날 막내 동생 부부와 같이 점심 식사하신 아버지 )
5월 12일
오늘 아버지가 화를 내실 때 훈근이가 미국에서 안부 전화 하는 통에 어머니가 바로 일러버렸다. 어머니께 화내지 않겠다고 훈근이에게 약속한 아버지만 뻘쭘해지셨다. 아버지는 분노의 화살을 간혹 어머니께 돌리신다. 많은 자제력 속에서도 간혹 분출 되시는데 어머니도 정도가

넘어서면 많이 힘들어 하신다. 내가 도와드릴 수도 없다. 나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니 말이다.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이 어떻게 마음이 우아해질 수 있겠나. 당연하다.

나도 많은 욕과 분노를 표출 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하루 종일 들으실 어머니가 참 안쓰럽다. 그래도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자제력으로

마음을 다스리신다. 결국 모든것은 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어쩔 수 없다.

훈근이가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말씀 드렸다한다. 아버지가 그 말씀 하시면서 좋아하신다. 그 말없는 쑥맥이 참 큰 용기를 냈다 싶다. 하여간 잘했다. 누가 그러더라. 부모님 보내드리고 가장 후회되는 것이 사랑한다는 말 많이 안했던 것이라고...

5월 14일
요즘은 병원 근무 끝나면 저녁 식사를 아버지와 함께 하기위해 타워로 간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아버지 간병으로 힘들어 하시고 아버지도

홀로 투병하시면서 기운이 빠지신 상태다. 나 역시 병원일로 지친 상태로 가서 침울한 분위기를 up 시켜드려야 하는데 성격상 그것도 힘들다. 결국 서로가 소화 안 되는 저녁식사가 될 뿐이다. 이런 분위기가 반복되면 나 역시 우울증에 걸릴 것 같은데 환자인 아버지나 간병하시는 어머니는 오죽하시겠나 싶다.
갑작스런 뇌출혈이나 큰 사고가 아니라서 시간을 두고 생을 마감할 수 있으니 복이라 하겠지만 그래도 결국 환자의 몸과 마음이 말라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야하니 참 괴롭다. 희망이 안보여도 희망이 보이는 듯 해야하니 힘들다.

 

5월 16일

너무 힘들어하신다. 뭔가 많이 달라지신것 같다. 회복이 잘 안되신다. 식사도 너무 힘들어하신다. 친구 내과 의사의 말에 의하면 항암치료제는 계속 몸에 축적 되기때문에 갈 수 록 더 힘들어지실 것이라 한다.
아버지의 고틍을 나눠드릴 수 없어 곁에 있기에도 힘들다.


5월 19일
항암치료 2 cycle을 마치고 그 결과를 보기 위해 오늘 PET 검사를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점점 건강이 안 좋아지니 그 결과가 뻔할 것 같다 하셨다. 사실 나도 느낌이 안좋다. 아내를 통해 지인 의사에게 미리 알아보니 예상대로 결과가 더 악화 되셨다한다.

내일은 나 혼자 교수를 만나야할 것 같다. 항암치료의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점점 끝이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고 괴롭다. 과연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는것일까?  과연 후회없는 과정을 견디고 있는 것일까?

 

                                                               ( 훈근이와 목욕하신후 타워 공원 벤치에서  )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