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31일
아버지가 오늘 퇴원하셨다. 병원 근무하면서 댁에 전화 드리니 목소리에 힘이 있으시다. 기분이 좋으신 것 같다. 2차 항암치료라서
1차때 보다 회복도 더 빠르시다. 다행이 주위 벚꽃들도 좋으니 산책도 하시면서 기운 차리셨으면 좋겠다. 준식이가 와서 많은 도움을 준다.
저녁에 퇴근해서 아버지를 모시고 동생과 밤에 동네 공원을 산책 했다. 아버지는 몇 년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똑같이 지팡이 드시는 것을
싫어하신다. 아직까지는 체력이 있으셔서 뒷짐 지시고 잘 걸으신다. 밤마다 같이 산책을 할 수 있는 날이 아직 많이 남아있길 바란다.
여전히 '후회 없는 삶이었으니 무엇이든지 담대히 받아들이겠다' 하시면도 당신이 오래 못 갈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우리 집안이 암도 많지만 기적도 많은 집안이니 아직 멀었다고 위로 해드린다. 계속 이런 대화는 지속 될 것 이다. 아니 오히려 계속 지속되길 바란다. 타워 팰리스 야경은 야속하게 화려하다. 벌써 타워 팰리스로 이사오신 것도 10년이 넘으셨다. 경남 아파트에 살면서 타워 팰리스 터파기 공사를 보던 기억이 생생한데 말이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간다.
2014년 4월 1일
오늘은 만우절이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간 헛소리였으면 할 뿐이다. 그리고 보니 오늘이 내 친구 한석훈이가 저세상 간 날이다. 나와 전화 통화하고 1시간만에 심장 마비로 떠난 그날이다. 벌써 8년은 된 것 같다. 태어나는 것을 순서가 있어도 떠나는 것은 순서가 없다.
2014년 4월 2일
날이 화창하다. 완연한 봄이다.
오늘부터 병원일 시작한 오과장과 아침에 부모님을 병원으로 모시는 동선을 같이 확인했다. 이번 3차 항암 치료부터 오과장이 기사노릇을
하려는데 아마 부모님은 불편하다고 거부하실 것이다. 하지만 곧 필요성을 느끼실 정도로 기운이 쇠락해 지시겠지...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아버지도 조금씩 적응되실 것이라 믿는다. 제발 이번 항암 치료 잘 받으시고 원하시는 대로 다음 주에 보성 고향에 한번 다녀오실 수 있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운 그 고향 그 집으로...
4월3일
저녁에 집으로 많은 가족이 모였더니 아버지가 힘이 난다 하신다. 일본 바이어와 면담 후 준식이가 양복입고 귀가하고 내가 아버지 안마를
해드리고 있으니 학원 끝난 수진이가 엄마와 같이 왔다. 최근 개업한 현재의 병원에 들리시고 셋째 다섯째 숙부님도 오셨다. 이번에 보성
다녀온 이야기를 필두로 과거와 미래를 오고가는 대화를 많이 했다. 웃음소리도 터지곤 했다. 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시면서 건강하게 웃으신다. 내일 3차 항암 치료 잘 받으실 수 있을 것 같다.
4월 4일
아침 7시에 병원에 가서 피검사 하고 다시 9시경에 항암치료 받으러 가셨다. 이번 주부터 우리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한 처남이 기사노릇하기로 했다. 아버지도 흔쾌히 받아들이신다. 다행히 피검사 결과가 항암치료 받을 수준이라 무사히 100분짜리 항암치료를 다 받으셨다. 기분도 좋다하시면서 드라이브하고 싶어하신다한다. 그래도 피검사 수치가 자꾸 나빠지니 걱정이다.
이제 2주일간 항암치료는 쉬니 그 동안 체력을 보강시켜드려야겠다. Hb 9.0 RBC 256 WBC 5130 neutrophil 2440 BUN/Cr 61.6/2.22
신장이 참 문제다...
점심을 맛나게 드시고 오후에 남한산성을 드라이브 다녀오셨다. 오과장이 넷째 아들 노릇 하겠다고 넉살 스럽게 이야기했나보다. 아버지가
마음 편하다고 좋아하신다. 준식이도 얼떨결에 남한산성을 다녀왔다. 날씨는 아직 쌀쌀하다.
저녁에 뵌 아버지는 건강하시고 의욕이 넘치셨다. 이렇게 계속 가는데 까지 가면 되는거다.
우리 집안에는 기적이 원래 많으니까.
4월 6일
항암치료 후 이번에는 발열도 별로 없이 잘 견디신다. 봄 날씨가 싸늘해서 집안에서 계속 걸으시면서 운동하신다. 나도 걸어보니 꽤 운동이 된다. 아버지 좀 편하게 해드리려고 차를 살 생각이다. 어짜피 살 것이니 좀 일찍 살 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벤츠로 모시고 싶은데 여러 여건상 힘들다. 부모님도 그것은 싫어하실 것 같다. 뒷자리도 편하기는 에쿠스가 더 편하다. 뒷자리 의자가 12cm 나 앞으로 나와서 편하게 타실 수 있다. 전시장 가서 확인해보니 벤츠는 기껏 4cm 다. 그래도 외형은 확실히 멋지다.
하여간 우리나라도 차는 참 잘 만든다. 2%가 꼭 부족해서 그렇지 대부분은 양호하다.
4월 7일
요즘 만사가 의욕이 없다. 꼭 아버지때문은 아니다. 그냥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문다. 산다는 것이 별것 없다. 내가 의사로 개업해서 병원을 운영하니까 현재의 내 위치가 인정 되는 것이다. 가장으로서 아들로서 사위로서 또한 사회인으로서 대접을 받는 것이다. 마음대로 모든 것으 놔 버린다면 아마 내 위치는 많이 곤두박질 쳐질 것이다. 그게 그냥 지금의 내 위치다.
가족을 부양하고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지금의 위치를 위해 내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별것 없는 내게 와서 치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분들이 얼마나 귀한 분들인가? 현재의 나를 버티게 해주는 분들이다. 아끼고 감사하면서 잘 진료를 하자. 이들이 없으면 난 바로 대접 못 받을 어정쩡한 인간으로 떨어진다. 열심히 일하는 동시에 내 삶의 즐거움도 같이 찾아보자. 일단 다른 생각 말고 이 자리를 고수하면서 그냥 가자. 지금은 그게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저녁에 현대 자동차 대리점에 가서 에쿠스는 계약했다. 수준급으로 사려했는데 아내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제일 아래 급으로 샀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것 없는 첨단 시설로 천만원씩 턱턱 올라가는 찻값이 아깝긴 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면 평생 좋은 차 못 탈것이다. 하여간 에쿠스의 뒷자리의 편안함은 벤츠보다 낫다.
아버지를 모시고 시간 나는 대로 드라이브를 다녀봐야겠다. 번호판도 무조건 ‘9’가 많이 들어간 것 으로 뽑아달라고 했다. 아버지의 기나긴
여명을 기원하면서...
4월 8일
아침에 출근하면서 들렸다. 아버지는 열심히 식사중이셨다. 맛은 없어도 치료를 위해 건강을 위해 기력을 위해 최선으로 식사를 하고 계셨다. 어깨를 주물러드리니 아직도 기력이 왕성하시다. 오늘도 열심히 운동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출근길에 오른다. 준식이가 와 있어서 너무나 다행인데 덩달아 맛없는 저염식을 같이 하고 있는 준식이가 안쓰럽다.
이번 기회에 다이어트 확실히 하게 생겼다.
4월 9일
저녁에 준식이와 전 전문집에서 저녁 겸 술 한잔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과거를 둘러봤다. 아버지는 정말 강하게 잘 견디실 것이다.
오늘도 그러셨듯이 내일도 그러실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밤 벚꽃을 보면서 양재천을 같이 걸어왔다. 멋진 위용을 보이는 타워 팰리스를 바라보면서 처음 아버지가 입주 하셨을 때를 생각했다.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다. 정들은 여의도에서 떠나오시길 한참 망설이셨는데 정말 이사오시길 잘하셨다. 이곳에서 자치회 회장님으로도 멋지게 지내시고 귀한 대접을 받으시면서 화려한 말년을 보낸 멋진 10년이셨다.
4월 10일
오늘 아침 아버지 공복시 당뇨는 149이다. 많이 적응 되시는 것 같다. 오늘도 귀한 하루가 시작된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내게도 정말 귀한 하루다. 헛되게 보내지 말아야하겠다. 황사가 있어 외출시 마스크 쓰시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안 쓰실 것이다. 약한 모습 보이기 싫으시니까.
준식이가 사준 좋은 지팡이도 절대 안 쓰신다. 남자들은 다 그런지 아니면 성공한 남자들의 특징일까? 난 그냥 마스크 쓰고 다닐 것 같은데
말이다.
저녁 늦게 부탁했던 가족 기록 동영상이 도착했다. 아버지 어머니의 출생부터 최근까지의 모든 과정을 수백장의 사진을 모아 동영상을 만들었다. 우리 가족의 기록물로 그 전부터 만들고자 했는데 미루다가 만든것이 우연히 아버지 투병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병원에서 잠시 보니 눈물이 날 것 같다. 정말 한 사람의 인생이 씨디 한 장으로 정리되는 것이 허망했지만 아버지는 멋지게 사신 인생인 것은 사실이다. 바로 가서 보여드리려 했는데 음악이 나오질 않아 동영상만 보셨다. 그래도 부모님께서는 이것저것 다 회상하시면서 재미있게 보셨다.
내일은 전자제품 손을 봐서 음악과 같이 보시도록 해야겠다.
오늘 컨디션은 최상이라고 하신다. 갈 수 록 최상이 되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4월 11일
음악과 함께 가족 기록 동영상을 거실 TV로 보셨다. 아주 좋아하신다. 나도 병원에서 다시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 내 인생도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리라. 누구나 그렇듯이.
4월 12일
아버지는 내가 만들어드린 동영상을 하루 종일 즐겁게 보신다한다. 생각 밖의 좋은 반응이라 나도 기분이 좋다. 2탄을 추가로 만들기 위해 다시 사진을 모으기 시작했다.
2탄은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만들어야겠다. 나도 나중에 이번 동영상을 보면 옛 생각이 많이 날것이다. 그때 내 기분이 어떨까? 미국에 있는 동생들에게도 각자 가족 사진을 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이번 기회에 우리 가족들의 기록 영상물을 확실하게 만들어저 보관해야겠다.
그 동영상을 보면 세계각지에 떨어져있는(LA, 뉴욕, 서울) 조카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느끼고 배울 수도 있을것 같다.
4월 13일 (일)
요즘 봄 날씨가 중국 발 황사로 흐릿했는데 오후 하늘이 좋아 부모님을 모시고 팔당부근으로 무작정 갔다. 곧 미국으로 돌아갈 준식이도 합석했다. 평소 그렇듯이 (길치) 내가 또 길을 좀 헤맺지만 결국 원하던 곳으로 생각보단 일찍 막히지 않고 도착했다.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 팔당 수자원 관리사무소 건물이다. 7층 꼭대기에 무료로 팔당호 홍보관과 전망대를 만들어놨다. 일단 무료라는데 부모님은 흠족해 하신다. 몇 달전 막내 이숙의 안내로 겨울에 와보시고 멋졌다 하시면서 오늘도 이곳을 추천하셨다. 경치는 참 좋았다. 우리는 가지고간 과일을 펼치고 전망을 보면서 맛나게 먹었다.(나중에 보니 음식물 반입이 금지된 곳이다.) 부모님도 기분이 좋으신지 사진도 많이 찍었다. 아기자기한 경치는 참 동양적이었다. 물론 준식이 말마따나 미국 경치에 비하면 정말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지금 이 순간에 최고이면 최고인 것이다.
1층 로비도 그림을 입체적으로 잘 만들어서 관광객들이 재미나게 사진 찍도록 해 놨다. 하지만 안내를 안해 놔서 관광객들이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우리만 우연히 알고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우리나라 참 좋아지고 있다. 강변도로를 달리니 아직 남은 벚꽃의 자욱이 꽃 눈보라를
일으키며 드라이브의 기분을 up 시켜 준다. 나중에 또 올 때는 멋진 에쿠스 타고 오리라. 간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온 드라이브는 참 좋았다. 다행히 돌아오는 길도 많이 막히지 않아서 부모님의 타워 목욕도 다 가능했으니 알찬 여행이었다.
4월 14일
어제 그것 운전했다고 아침부터 허리가 뻐근하다. 오전에 운동한 것도 있긴 했지만 나도 체력을 자신하던 그런 시절이 전설이 되어간다. 세월이 야속하다.
미국의 동생들은 보내라는 사진이 다 자신들 아이들 단독 사진뿐이다. 단독 사진을 안받을테니 편하게 찍은 가족 사진으로 보내라 했다. 다들 지 새끼만 이쁜줄 안다. 아마 아버지도 같은 생각이실 것이다. 어른들 얼굴과 아이들 얼굴이 같이 있어야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볼 때 덩달아 끼어서 우리를 기억해 줄 것이다.
4월 15일
오늘은 신장내과 외진 날이다. 피검사가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아버지는 원하셔서 어제 담당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피검사 오더를 받았다. 이 나이에 부탁한다는 것이 참 불편하다.
오늘 아침에 ‘환자가 왕인데 내가 검사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무슨 말이냐‘면서 화를 내신다. 그 똑똑한 정숙 이모도 파킨슨 치료 위해 지방의 엉터리 치과에 가서 발치를 여러 개 하지 않았던가? 사람이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면 점점 어떻게 변할지 나도 겁이난다. 일단은 가능한 그대로 해드리려 한다. 정말 어떻게 변하실까? 그래도 화내시는 아버지의 기력을 보니 기분은 좋다.
준식이는 아침에 미국 집으로 떠났다. 한동안 타워집이 썰렁할 것 같다. 그래도 준식이가 삼시세끼마다 식탁에 동석해서 아버지와 같이 식사해드렸는데 말이다. (그덕에 3kg나 체중 불었다네)
그래도 5월 초에 훈근이가 다시 온다니 다행이다.
아버지가 신장 내과 교수의 외래를 보고 오셨는데 선지를 드시라 했다 한다. 대학 교수가 Hb 수치가 낮다고 선지를 먹으라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가서 확인해보니 항암치료 환자들은 약을 잘 먹을 수 없어서 그렇게 권유한단다. 특히 Hb을 위한 약은 위에 자극적이라니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지 비전문가가 함부로 나설 것은 아닌것 같다. 선지는 정육점에서 예약을 받아서 판다니 한번 구매해서 봐야겠다.
Cr은 2.2 인데 나머지 수치는 모르고 계신다. 부모님이 요즘 더 쇠약해지신다. 병원에 전화로 물어봐도 법률상 본인이 와야 가르쳐 줄 수 있단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법을 따랐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참고 넘겼다. 크레아티닌 수치가 저염식을 안하던 수년전부터 2.2 정도 였으니 굳이 이렇게 체력 떨어지게 저 염식 안 해도 될것 같은데 아버지는 자구 저 염식을 고집하신다. 그래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셔서 든든하다.
4월 16일
준신이가 떠나고 아침 식사를 부모님 두 분 만 조촐하게 하실 것 같아 출근길에 들렸다. 여전히 내가 드린 동영상을 틀고 즐기신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 몰랐다. 정말 다행이다. 아버지의 인생이 그만큼 당신이 보시기에도 자랑스러운 것이다. 남자가 한번 태어나서 이렇게 살면 정말
후회 없을듯 싶다. 물론 어느 선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아버지는 그 수준을 정확하게 인정하고 즐기신다.
참 대단하시다. 좀 더 많은 분량으로 음악 선곡도 좀 신경써서 빨리 2탄을 만들어 드려야겠다.준식이는 아직도 디트로이트 공항에 있단다. 한국 떠난지 거의 18시간이 되었는데도 집에 도착을 못했다. 참 이놈도 싼 비행기 타느라 고생한다.
아버지 수의를 맞췄다고 토요일에 찾으러 가자 하신다. 참 기분이 묘하다. 부모님이 쓰실 수의를 자식이 찾으러 간다. 나는 평소 입단 옷 입고 그냥 화장할거다. 내가 땅을 수 십 년간 차지할 만한 인물이 아니니까 말이다.
4월 18일
하루하루 열심히 운동하시고 식사 하신다.
항암치료의 휴식 기간이라 체력도 많이 좋아지신다. 이것저것 처리할 것을 많이 해결했다 하시는데 뭐가 그렇게 많으신지 모르겠다. ***문제는 피해자 단체의 과도한 요구와 관계없이 그냥 회사와 합의하겠다고 하셨다한다. 잘 하셨다했다. 주위에서 일 처리하는 사람들 보니 돈 앞에서는 하이에나처럼 더 많이 뜯어먹으려고 추해지는 꼴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는 듯 싶다. 요즘은 이성을 잃은 사람들 뿐이다.
계속 방송에는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이야기 뿐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선장 개인의 실수가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의 시스템 문제다. 바닥부터 다 고쳐야하는데 ( 기본적인 정기적인 훈련 학습과 상식적인 공무행정 ) 아마 또 곧 잊어버릴것이다. 항상 예산이 따르는 일들은 곧 무시되고 공짜 복지만 혈안되어있다.
대한민국의 한심함 현 주소다. 하지만 이런 과감한 무모함이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양날의 칼이다.
4월 19일
타워 집에 공기 청정기를 두 대 보내드렸다. 성격상 지나치게 절약하는 어머니의 고집을 꺾고 거실과 침실에서 하루종일 트시도록 했다. 왜 이렇게 비 정상적으로 절약하면서 몸 피곤한 것을 짜증 내시는지 이해가 안 간다. 집에 오는 도우미도 매주 도시도록 했다. 그나마 그것도 오전만 오시게 한단다.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상황이다. 아버지를 간병하시는 어머니 체력이 중요한데 아직도 몸 편한 것 보다 돈을 더 생각하신다. 결국 몸 때문에 드는 치료비가 더 비싼데 말이다. 요즘도 내 병원에 오실때는 택시비 기본요금이 아까와서 걸어오신다. 그리고 무릎 아프다고 하신다. 도저히 그 고집을 이길 수 없다.
4월 20일
길 가다 우연히 공원 산책하러 신호등 앞에 서 계시는 아버지 뒷 모습으로 보고 뒤따라 갔다. 몰래 따라가서 깜짝 놀라게 해드리니 아버지는 무척 반가와 하셨다. 동네 놀이터에는 가족 동반 야유회 온 분들과 동호회 단위 족구 하는 사람들로 북적 거린다. 우리는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면서 양재천으로 갔다.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이다. 아버지는 자주 쉬시면서도 많이 걸으셨다. 내가 피곤할 정도다. 그래도 기대는 모습을 타인들에게 안보이려고 내 손은 잘 안 잡으신다.
아버지는 봄 꽃이 이렇게 좋은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하셨다. 그동안 수많은 좋은 장소에서 수없이 꽃을 보셨을텐데 이제야 집 앞의 야생화에 감탄하신다니 내 마음이 짠하다. 우리는 내 주위의 귀한 보배를 모르고 성공을 향한 허망한 욕망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살아야할 시기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어느정도의 선을 넘어서면 좀 비우려는 노력도 필요할것 같다.
아버지의 손힘은 아직 정정하시다. 내일이면 다시 항암치료 시작하신다. 체력은 많이 보강되셨다. 잘 이겨나가고 계시니 다행이다.
이렇게 무조건 go go 다.
( 똑 같은 폼으로 자는 부자. 신기한 유전이다.)
============= to be continued ====================
'감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병상 일기 5 ( 항암 치료 중단 ) (0) | 2014.06.26 |
---|---|
병상 일기 4 ( 4차 치료 -2번째 cycle- 시작) (0) | 2014.06.26 |
병상일기 2 ( 항암 치료 시작 ) (0) | 2014.06.25 |
병상 일기 1 ( 항암 치료 전 ) (0) | 2014.06.24 |
아버지의 병상 일기를 남기면서 (0) | 2014.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