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동이야기

병상 일기 1 ( 항암 치료 전 )

2014년 3월 11일

 

오후 3시경 그 전화를 받았다.

내가 아는 하늘이 무너지는 데 주위는 너무나 고요했다. 모든일은 그렇게 갑자기 그러나 정말 야속할 정도로 소리없이 조용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약 3주일 전부터 시작된 소화장애와 신장 기능 저하 그리고 조절이 안되는 당뇨 현상으로 3월 3일 대학병원에 입원하셨다.

과거 수개월간 진찰받아온 신장내과 박형천 교수통해 입원하셨다. 검사상 아주 특별한 이상이 없고 증상이 호전되어 3일만에 퇴원 하셨는데
다시 증상 악화 되어 10일에 재입원하시고 바로 내시경 검사와 복부 CT를 하셨다. 신장기능이 나빠서 조영제는 사용 못했지만

내시경이 다 깨끗해서 걱정은 안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평범하게 지나고 있었다.
5일전 내가 검사받은 갑상선 혹의 조직검사 결과가  양성이라는 진단을 오전에 들을 후 기분이 좋아 저녁에 와인 한잔 할 생각 중이었다.

그렇게 그냥 많은 날 중 지극히 평범한 하루중의 하루였다.

 

평소처럼 오후에 환자를 보는데 세브란스 박교수님께서 직접 전화를 하셨다. 순간 아차 싶은 기분이 들었는데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말을 꺼내신다. 'CT 상에서 전이된 췌장암 보인다'고... 본인도 황당한 듯 아버지가 간 전이까지 보인다 했다.

모든 것이 정지되는 순간이었다. 조영제를 사용 못해서 100%는 아니지만 거의 확실하다 하셨다.
결국 내게도 이런 일이 생겼다.
하지만 왜 하필 그 많은 암중에 가장 고통스럽다는 췌장암인가... 불쌍한 아버지...

3월 12일


모든 것을 다시 복기해본다. 의사로서 또한 아들로서 5년 전 배탈나서 삼성의료원 입원했을 그 시기부터 다시 생각해본다. 그 동안 매년

정기 검진 받으셨고 기본적인 치료 다 받으셨다. 당뇨 혈압 조절도 잘 하셨다. 평소 식사량이 많아서 체중이 느시고 보행거리가 짧아지는 것 말고는 잘 지내셨다. 작년 7월 세브란스 병원의 건강 검진에도 정상으로 나왔었다.
의료진에게 부탁해서 과거 사진을 영상의학과 의사인 아내가 다시 봤다. 특별히 이상 소견을 발견할 수 없었다. 사실 있으면 이제와서 무엇

하겠는가? 올해 초 정기 검진 결과지를 보여주시면서 이상 수치들을 물어보셨다.  얼핏 보니 그 중에 CA19-9 수치가 높은데 신경 쓰지 못하고 내과 전문의와 상의하시라고 퉁명스럽게 말한 내가 원망스럽다. (당시 나는 별것 아닌 일로 아버지께 삐져있었다.) 결국 세브란스의 내과 전문의와 진료 받으면서 모든 과정은 정석대로 받으셨지만 장남인 나는 내 가족들을 위한 중요한 일처리에 정신이 팔려 아버지의 상황을

내 전공이 아니라는 핑계로 다른 전문 의사에게 미뤘다.

이것을 좀더 신경썼으면 대세에는 변화가 없더라도 한달 정도 더 일찍 알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결과론적인 것일 뿐 원래 그 검사 수치에 대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내과 전문의사들의 의견들이 간사하게도 내게는 위로가 되었다.

담당 내과 교수도 그 수치를 알고도 한달 이상 췌장암 쪽으로 생각을 못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것은 평생 내 마음의 앙금으로 남을 것이다. 

 

 ( 아버지는 그 점에 대해 딱 한번 내게 말씀 하시고 그 이상 아무 말씀 안하셨다.

   환자인 이상 내게 그 점은 서운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한번도 거론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남아있는 가족을 신경쓰셨다.

    내 마음 아플까봐 말씀 안하신것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더 아프다.)  

3월 14일
아버지의 정밀검사 PET 까지 한 결과가 췌장암의 간 전이가 된 4기로 판정 났다.
오전 11시경 담당 교수의 연락을 받고 LA 동생과 셋째 숙부님이 외래로 가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듣고 나와 교수가 준 메모지를 동생이

사진 찍어 내게 보내줬다. 기대수명 3~6개월. 항암치료 하면 조금 더 늘어나며 1년 생존 가능성 20%...
어떻게 말씀 드려야할 지 모르겠다.
참 황당하다. 평소 건강하시다가 그냥 소화 장애와 당뇨 조절 그리고 신장 치료를 위해 입원한 것 뿐인데 10일 만에 이런 황당한 결과를 만났다. 지금은 더 좋아지셔서 전혀 이상 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퇴원 생각만 하고 계신데 말이다.

내과 전문의인 친구들의 조언에 따르면 췌장암의 항암제 효과는 10% 정도 밖에 안 된다고 굳이 항암치료 받으시려할 것 없다 한다. 오히려

남은 시간 아깝게 허비하게 된다고.
내가 생각했던 인생의 최악의 순간이 아버지에게 발생했다. 하필 고통이 심하다는 췌장암...
우리 집안에는 암환자가 많다.. 하지만 그 만큼 기적도 많았다. 거의 한분 빼고 다 완치 되셨고 병원에서 포기했는데 수 십 년 째 사시는

분이 두분이나 계신다.

항암 치료를 해야하는가.....환자 보호자와 의사로서의 현명한 역할 분담이 중요하게 되었다.

일단은 어머니께도 상의해야겠지만 제일 중요한것은 아버지의 의지다.  

                                ( 대구에서 의과대학 다니는 손자가 오니 기분이 좋으신것 같다. 손주 7명중 유일한 손자이다. )


3월 15일 토요일
형규가 대구에서 올라와서 할아버지를 모시니 든든하다. 아버지도 힘이 나시는지 아침을 맛있게 드신다.

어머니가 해주신 싱거운 장조림이 맛있다 하신다. 아내도 이것 저것 밑반찬을 준비해서 공수한다. 병원에서도 이제는 신장 장애에 제한

받지 말고 항암제 치료는 위한 체력 보강을 위해서도 잘 드시도록 권유한다. 장 운동은 많이 회복 되어서 식욕이 생겼다면서 웃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 밝다. 식사하는 할아버지를 옆에서 간병하면서 지켜보는 형규의 모습에서 삶의 윤회를 본다.

아버지는 궁굼해 하시면서도 내게 직접 물어보질 않으신다. 뭔가 느낌을 파악 하셨을텐데 말이다.

어떻게 말씀 드려야 준비도 잘 하시면서 충격을 덜 받으실까 계속 고민중이다.

아버지도 가족들에게 피햬 안주기위해 최대한으로 자제하고 계시는것 같다. 전혀 흔들리지 않고 계시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저녁부터 내가 같이 병실에서 자기로했다. 오후에 암 병동으로 옮기니 마음이 착찹하다. 주치의사도 암 전문 정희철 교수로 바뀌었다. 병동 담당 의료인들이 암환자를 많이 대해봐서 참 능숙하다. 특히 그 동안 입원실에서 소변 배출양 체크에 무관심하던 아버지를 한 번에 성실한 환자로 만들어버리는 간호사의 친절한 설명과 적절한 경고는 참 세련되었다 싶다. 남편이 고생 좀 하게 똑똑하게 생겼다.

이제 모든 가족들이 아버지를 위해 올 인 한다.

밤에 아버지와 단둘이 있게 되니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진지하게 물어보신다.

'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주라'고... '얼마나 남았냐'고....

(순간 가슴이 덜컹 하면서 목까지 치고 오르는 진한 고통을 느꼈다 )

'3년 이상도 당연히 가능하니 지금부터라도 당뇨와 신장 장애를 조절하면서 열심히 항암치료 받으면 되신다'고 말씀 드렸다.

도저히 몇 달 밖에 안남았다고 말씀 드릴 수 없었다. 그래도 안 피곤하시게 정리할 것은 빨리 정리 해버리시고 직책 맡으신 것도

다 이젠 다 내려놓으시고 편한 생각만 하시라 했다. 최근 맡은 좋은 직책을 놓는다는것이 조금 아쉬운듯 하시면서도 쉽게 수긍하셨다.

바로 전 달에 일본 골프여행까지 가셨던 분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변화된 환경에 부딪히게 되니 얼마나 황당하실까 싶어 더욱 안타깝지만

정말 의연하게 적응하고 계셨다.

어느 환자에게나 있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분노의 표출도 어두운 얼굴도 가족들에게 보이지시 않으셨다.

그저 계속  미소를 보이시면서 당신은 '후회없는 멋진 삶을 살았기에 괜찮다고' 하셨다.
눕자마자 바로 코를 고시면서 주무시는 아버지를 옆에서 나의 옆모습을 본다. 누워 바라보이는  얼굴의 실루엣이 애잔하다. 침대 씨트 밖으로 나온 듬직한 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리면서 다짐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의사 아들로서 꼭 안 아프게 해드리겠다고...
‘아버지가 가시는 길 제가 최대한 편하게 해드릴께요.’


2014년 3월 16일 일요일
오늘은 수개월 전부터 계획된 동아 마라톤 참가하는 날이다. 이번에 5번째 완주하면 철인경기로 넘어가려했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와 병실에서 같이 TV를 보고 있다. 날씨는 따듯하나 황사가 있고 준비도 잘 안했으니 아쉽지는 않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가능한 아버지 곁에

붙어있고 싶다. 얼굴 직접 뵙고 같이 있으니 오히려 마음도 편하다. 병실 화장실 샤워장에서 아버지를 목욕 시켜드렸다. 훈근이가 회사일 마치고 마침 들려서 다행히 편하게 샤워 시켜 드렸다. 아버지 몸 구석구석 다 씻어 드리는 것은 내가 태어나 처음 해본 것 같다. 항문까지 깨끗하게 닦아드렸다. 내가 아들 형규를 씻겼듯이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해주셨을 것이다. 일인실 샤워실의 좌변기에 앉아 편하게 샤워하셨다. 일인실 병실료가 특급 호텔의 하루 방값이니 돈이 좋긴 좋다. 다인실에서는 이렇게 샤워도 못할테니까 말이다. 나도 기분이 이상한데 당하는 아버지의 기분은 오죽할 까 싶다.
아버지는 본인의 치료를 위한 돈은 충분하니 할 수 있는데 까지 모든것을 다 해 보겠다 하셔서 나는 당연하다 답해드렸다. 아버지는 이렇듯 끝까지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부담주지 않으시고 자신이 다 해결하려 하셨다. 내가 병원비 중간계산 해드렸던 것도 취소 시키고 본인 카드로 다시 하신 분이다. 이런 정신으로 앞으로의 모든 과정을 잘 이겨 나가시리라 믿는다.

일요일인데도 오전에 일찍 회진하는 담당 교수에게 항암 치료의 계획을 자세히 들었다.
12cycle 까지 할 생각이라는데... 그럼 일 년인데.... 아버지가 다 잘 버티실까 모르겠다.
하여간 환자 본인은 모든 것을 다 해볼 각오가 단단히 되어계시니 다행이다.

 

                          ( 10일만에 외출하셔서 훈근이와 목욕하시고 기분 좋아지신 아버지
                                                                                              그 동안 밀린 일들을 찾아다니거나 전화로 해결하고 계신다. )

2014년 3월 17일
오늘은 아버지가 잠시 외출 허가를 받고 훈근이와 목욕을 같이 하셨다. 거의 10일 만의 온탕 목욕을 둘째 아들과 같이 하셨다. 오후에는

은행 주식등 처리할 것을 하신다 하셨다. ‘손해 보고도 전부 다 해약해야하냐’는 아버지 질문에 ‘그냥 신경 쓰일 것 만 해약하시라’ 말씀 드렸다. 무엇이든지 다 해약하시라면 더 놀라실 것 같았다. 인생의 정리는 이렇게 아버지께서 직접 시작 하셨다.

 

오후까지 같이 있던 훈근이는 저녁 비행기로 미국에 돌아간다. 몇 년만에 회사일로 귀국해서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같이 뵐 수 있어서 다행이다. 건강한 모습을 뵐 수 있으니 말이다.

벌써 미국 간 것이 과서 한국 생활과 비슷한 세월이 되었다니 이젠 미국사람 다 되었다.


3월 18일
어머니가 만드신 고깃국을 더 갖다드리러 아침에 일찍 갔다. 아버지는 내가 일찍 온다고 깨끗하게 세수 하시고 TV 보고 계셨다. 아무리 뵈어도 얼굴은 천하의 회장님 상이다. 오히려 내가 환자 같다. 덕분에 담당 교수님 회진을 같이 받았고 조직 검사 결과가 곧 나온다 하셨다. 사실 결과는 별 의미 없지만 일단 과정이 중요하니 기다려본다. 곧 항암치료에 들어가실 것 같다. 아침 식사 후 복도를 걸었다. 환한 얼굴에 닝겔

없이 걸으시니 환자로 안 보인다.

항상 많은 닝겔 달고 인상쓰면서 걸으시던 노인은 간병인 아주머니가 미인이라 그런지 오늘은 얼굴이 밝으시다. 남자는 역시 남자다.

미국 손녀들의 (수현이와 효진) 전화를 활기차게 받으셨다. 우리집안에서 가장 똑똑한 수현이의 전화를 받으시면서 참 든든해 하신다. 씨크한 효진이는 할아버지와 통화 하면서 운다. 정을 표현 할 줄 모르는 것일 뿐 참 착한 아이다. 효진이가 두통을 자주 호소하는데 이번 여름에

한번 더 검사해봐야겠다. 모든 과정이 하나씩 이루어져간다. 앞으로 계속 아침밥도 아버지와 같이 먹어야겠다.

3월 19일
전라도 보성의 아버지 땅 중에 만평을 문중에 기증하기로 하고 전화 드리셨다. 시골 산이라 값으로 치면 얼마 되지도 않지만 원하시는대로

하시라했다. 지금까지 저 멀리 시골의 문중 일에 장손인 내가 관심 없었는데 가져야하나 싶지만 솔직히 아직은 별로다.
조상과 후손의 관계는 자연 발생적인 것이지 절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도 조상이 잘 되어야 후손도 잘 되는 법이니 무시할 수도 없다. 임야에 정부 지원금으로 나무 수백 그루 심도록 하셨다고 만족해 하신다. 30년 후면 손자 형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하시니 참 대단한 정열이시다. 비록 연 세금이 만원도 안하는 값싼 시골 임야이지만 아버지의 유지니 가능한 잘 가꿔봐야겠다.

오늘 아침 회진 때 오전 중에 조직 검사 결과 나오니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이제 항암 치료 곧 시작하겠구나...

조직 검사가 나와야 항암치료 약이 결정되고 또한 보험이 되는 것 같다.

하여간 모든 것 다 세브란스 의료진들에게 일임하고 믿고 의지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병원 생리를 이해하니 가능한 불편한것을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 의료는 정말 서비스 산업이라기 보다 노동산업같다. 적은수의 의료인들이 많은 환자를 보느라 정말 고생한다. 하지말 결국 고생은 환자의 몫이다. 사람은 원래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희생하시는 않기 때문이다.

3월 20일
담당교수의 호출로 아침에 외래로 가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아버지와 함께 앉아있는데 갑자기 간 전체에 전이된 PET사진을 모니터로 보여줘서 아버지가 놀래실까봐 내가 깜짝 놀랬다. 하지만 아버지는 담대하게 다 설명을 듣고 항암치료를 열심히 받겠다고 하셨다. 내일 조직 검사 나오면 바로 항암제 투약 시작한다. 중간 점검 상 조직은 악성 암으로 나왔다한다. 항암치료를 위한 체력 유지를 위해 영양사와 종양 담당 간호사와의 미팅을 주선 받았다.

모니터를 보시고도 놀라지 않으신 것 보고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아마 안경을 안쓰셔서 노랗게 퍼져있는 상황을 잘 못 보신 것 같다.

노안이 다행인지 마음은 찹찹하다. 이제 내일이면 시작이다. 아버지가 잘 견디셔야할텐데...
같은 병으로 항암치료 받다가 돌아가신 친구 아버님의 과거를 들어보니 통증으로 고생 많이 하셨다한다. 힘들지 않게 사시다 돌아가셔야 할텐데... 지금은 의사인 내가 해드릴 것이 없고 다만 아들로서 해드릴 것 밖에 없다.

                                                                                  ( 향후 치료 계획 )

오후 4시에 가족들에게 면담이 있었다. 어머니과 항암치료 경험이 있는 정옥이모가 가셨다. 큰 며느리인 아내도 병원일을 중간에 중지하고

상담받으로 갔다. 종양 담당 간호사가 전반적인 치료시 주의 사항을 설명했고 영양사가 체력 보강을 위한 식단을 설명해줬다. 끝까지 같이

모든것을 다 들으신 아버지의 의지가 대단하시다. 이제 시작을 위한 준비는 다 끝난것 같다.
다 잘 될것이다. 잘 될것이다. 전부 다 잘 되어야한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