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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야기

병상 일기 7 ( 입원후 )

6월 1일
관장을 하루 두 번을 하는데 정상 수치 가까이 갔다가 다시 두 배로 올라가면서 컨디션이 안 좋으시다. 발전했다는 21세기에도

체내 암모니아 수치를 내리는 데는 관장이 최고라니 할 말이 없다. 몸에 염증 수치도 장내 독성 가스로 인한 것으로 의료진들은 보고있다.

일단 가스를 차지 않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오늘도 막내 이숙과 외숙부가 오셨는데 헛소리를 하셨다. ‘다들 나를 죽이려고 뭔가 꾸미고 있다’는 말씀을 듣고 문병오신 친척 분들이

놀라면서 당황해하셨다. 화장실 걸어가시는 것도 균형 조절을 못해 자꾸 넘어지시려 한다. 아무래도 간병인을 구해야겠다. 내가 있을 때는

상관 없지만 어머니가 간병하실 때 화장실에서 넘어지면 골절상까지 입으실 것 같다. 그럼 일이 너무 커진다.
아버지가 많이 서운해 하시겠지만 어쩔 수 없다. 어머니도 많이 힘들어하신다.

막내 준식이가 자꾸 찬송가를 틀어드리라 해서 아버지가 집에서 듣던 것을 어머니가 가져오셨다. 시끄러워서 싫어하실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아무말씀 안하신다. 더욱이 적막하던 병실에 은은히 퍼지는 찬송가 소리가 오히려 참 좋다. 새벽에 퍼지는

절의 복고 소리처럼 은은하다. 아버지는 하루종일 눈감고 주무시다가 점점 이상한 소리를 하신다.

어제 치료 연장 거부 서약 서류에 싸인 하실 때 어느 정도는 의사 표현을 잘 하셨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아버지는 존경스러울 정도로 정말 모든 것을 철두철미하게 일처리 해 가신다.

 

 

                                                                     ( 하루 종일 이렇게 계시거나 누워게셨다. )
6월 2일
오늘 아침에 우측 가슴에 키모포트(암환자가 편하게 혈관주사를 맞기 위해 몸에 심는 기구) 설치 시술을 받았다. 이제는 팔뚝 혈관에

주사를 안 맞으셔도 되니 훨씬 편하실 것이다. 오전 중에 관장하고 화장실 가시다가 쏟아버리셔서 어머니와 해두 숙부님이 고생하셨다 한다. 본인은 기분이 어떻셨을까 생각하니 참 안타깝다. 이럴 때는 아예 정신이 없으시면 덜 자괴감이 드실 것 같다. 관장을 해도 암모니아 수치는 자꾸 50을 넘어 100으로 치닫는다. 대변을 본다는 것이 이렇게 귀한 일 인 줄 몰랐다. 기존의 당뇨와 신장 기능의 저하가 병을 더 악화 시키고 있다. 힘도 없으신데 그 멋졌던 아버지가 자꾸 화장실로 끌려가시듯 반복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신이 조금 혼미해지신 것이 오히려 다행일지 모르겠다.

오후에 약속된 간병인이 왔는데 아주 인상이 좋다한다. 아버지도 별 말씀 없으시단다. 은근히 근무하면서 걱정했는데 이런 전화를 받으니

마음이 놓인다. 다행이다. 말씀하시는 것도 믿음생활하는 중국 교포 분이다. 퇴근 후 찾아뵈니 아버지 얼굴도 좋고 분위기도 좋다.

어머니도 간병의 노동에서 벗어난 오늘 표정이 좋으시다. 첫날이라 그런지 간병인이 너무 적극적으로 운동시키고 말도 걸고 해서 아버지는

귀찮아하실 것 같은데 잘 따르신다. 심지어 조금 미소까지 보이신다.
오늘은 컨디션이 참 좋아 보인다. 암모니아 수치도 47로 정상 수준이다.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신 듯 아버지께서 나와 어머니에게 집으로 돌아가라 하신다.(간혹 이렇게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신다.) 객관적으로

봐도 내가 곁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아버지에게 병간호 면에서는 좋을 것이라 보인다. 심적으로는 좀 서운하실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하루 종일 눈 감고 계시니 언제가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면 하루 종일 모든 것을 다 듣고 계실까?
주위 어른들 말씀으로는 ‘사람은 듣는 기능이 마지막 까지 열려있다’ 한다.

6월 3일
어제는 간병인 덕분에 1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가 막내 수진이를 껴안고 집에서 푹 잠을 잤다. 개운하게 일어나서 아침 회진을 위해

일찍 병원을 찾았더니 병실이 가관이다. 어제의 6시 30분이라면 나는 옆에서 잠에 취해서 가만히 무념무상으로 멍 하게 쳐다보고 앉아있을

것이고 아버지는 침대에서 뒤척이고 있을 것인데 오늘의 그 시간은 벌써 아버지는 깔끔하게 목욕하신 모습으로 보호자 침대에 앉아 계시고

간병인은 아버지 발을 안마해드리면서 로션을 바르고 있다. 발바닥도 너무나 깨끗하게 되셨다.

새벽에 또 설사소동이 있었나 했는데 다행이 아니었다. 아버지 표정이 너무 좋다. 침대 씨트도 환자복도 다 새것으로 갈았다. 간병인이

전문적으로 도와준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병원의 생리를 알아서 참다가 옷을 갈아드리는데 이 아줌마는 매일 갈아버리려 한다. 간호원들과 마찰이 있을 것 같은데 하여간

아버지에겐 좋은 일이니 두고 보자. 직원들도 ‘여사님’ 이란 호칭으로 간병인을 부르는 것 보면 이곳 간호사들에게도 업무에 중요한

사람들인 것 같다. 나도 과거에 내 병원에서 매일 이렇게 옷 갈아입겠다는 환자는 참 곤란했었다.

인슐린 용량도 정해져서 달고 다녔던 큰 인슐린 타이터 기계도 떼어냈다. 혈관 주사도 팔이 아닌 키모포트에 하니 아버지도 양팔을

다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훨씬 편하신 듯 하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 이런 상태로 가다가 갑자기 떠날 수 있으니 어머니와 너랑 같이 이야기 좀 하자’ 하신다.

나는 모든 상황이 다 잘 되어가고 있으니 가스 조절만 되면 집에 가서 키모포트로 영양제 맞고 변비약 먹으면 되고 정 안되면 집에서

관장하면 되니 갑자기 떠나실 일 없다고 말씀 드렸다. 아버지는 그 말에 얼굴이 편해지시고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이 말이 맞는 줄 알았다. ) 이젠 통증만 잘 조절되면 될 것 같다. 그거야 약 을 바꿔가면서 용량만 늘리면 되겠지.
아버지는 가능한 진통제를 안 드시려 하는데 나는 그럴 필요 전혀 없다고 말씀 드린다.
하여간 간병인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간혹 반말에 ‘아빠’라고 호칭을 하면서 시골 노인 대하듯 하는 간병인에게 내가 기분이 상해서 주의를 주고 아버지께 예를 갖추라고 했다.

아버지는 3개월 전만해도 타워 팰리스의 회장을 맡고 활동적인 사회생활을 하신 대기업 사장님 출신인데 갑작스런 변화에 본인도 적응이

안 되신 상태니 공손하게 신경써달라고 했다. 그래야 아버지도 기분이 좀 좋아지실 것 같다. 지금도 환자복만 벗으면 아버지인상은

영락없는 대기업 회장님이다. 병실의 찬송가는 오늘도 은은하게 방안에 울려퍼진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종교인 다운 종교인을

보지 못해서 종교에 약간은 저항적이지만 그래도 찬송가가 확실히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은 인정하겠다.

 

 


6월4일
오늘은 지방 선거 날 이기에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에 들렸다. 간병인이 오고 나서 아버지가 외형적으로는 많이 좋으시다. 벌써 두 분이

많이 친해지신 것 같다. 밝은 표정과 마음이 신앙인인 간병인이 우리 가족의 기분을 참 편하게 해준다. 아버지에게 ‘아빠’라는 호칭을

쓰면서 수시로 환자복을 갈아입히고 로션을 발라드리니 외형적으로는 정말 환자같지 않으시다. 발바닥도 자주 마사지한다.

그런데 피검사 수치는 여전히 안 좋다. 염증 수치가 (CRP)가 90으로 정상의 수십배인 상태여서 할 수 없이 계속 항생제가 들어간다. 간과

신장 기능이 안 좋으신데 약이 안 들어갈 수도 없고... 간헐적으로 2시간마다 검사하는 당 수치도 400을 넘나든다.

 

힘이 없으시니 말씀도 없다. 지금 많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별 말씀은 없으시다. 곁에 간병인을 두게 된 현재의 상황이 아직 적응이

안 되실 것 같다. 오전에 햇살이 좋아 어머니가 아버지를 휠체어로 모시고 병원 밖으로 나가셔서 사진을 찍어 우리 삼형제 카톡 방으로

보내주셨다. 하늘은 참 맑은 오늘이다.

간병인의 반말투와 호칭은 우리말이 서툴러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아버지도 그럴 것이고 나도 적응되었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눈만 감고 계신다. 간혹 말씀 하시는 것을 잘 못 알아 듣겠다. 언제가 정신이 맑으실 때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하면 이때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어야했다. 끝이 얼마 안남은줄 전혀 몰랐다.) 아버지 복통도 약으로 조절은 되지만 그래도

그 통증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시는 것 같다. 닝겔로 진통제가 계속 들어가고 복용 약도 정기적으로 드셔도 침대에서 자세를 바꿔드리는데

통증을 갈 수록 더 호소하신다. 불길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것 같다. 호전의 기미가 안보인다.

이러다가 hepatorenal syndrome (간기능의 장애로 급박한 신장 장애 유발) 으로 갑자기 악화될 수 도 있겠다 싶다.

 

                                                    ( 결국 이날의 병원 산책이 아버지에게는 마지막 산책이 되셨다.)

 

==============  to be continued  ===============